비만의 주범인 ‘백색지방’과는 반대로, 지방을 태워 에너지를 소모하는 ‘갈색지방’이 비만 치료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국내 연구진이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내 화제다. UNIST 생명과학과 고명곤 교수와 전북대 생명과학과 안정은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는 6월 23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공개되었다.
지방세포도 여러 가지? 백색지방세포와 갈색지방세포
지방세포는 에너지를 지방으로 비축하는 지방 조직을 이루는 세포들이다. 우리가 흔히 지방이라 말하는 것은 백색지방으로, 남은 열량이 저장되고 축적되면 비만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갈색지방세포는 지방을 태워 에너지와 열을 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본디 갈색지방은 열손실에 취약한 신생아일 때에만 활성화되었다가 이내 퇴화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일부 성인에게도 갈색지방세포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함께, 비만인 사람은 갈색지방세포의 활성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함께 알려지면서 갈색지방은 일약 비만 치료의 열쇠로 주목받았다.
UNIST와 전북대 연구진이 발표한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꾸는 방법’은 정확히 말하자면 ‘베이지색지방세포’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베이지색 지방은 백색지방과 갈색지방의 중간 형태로, 백색지방이 갈색화하며 변한 것이다. 베이지색지방은 갈색지방과는 달리 대부분의 성인이 보유하고 있으며, 운동 상황, 낮은 실내온도, 매운 음식 섭취 등의 요인에 따라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의 갈색화는 지방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요인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태워 열을 발생시키는 세포 소기관으로, 철이 풍부한 미토콘드리아를 많이 포함한 세포일수록 갈색을 띤다. 미토콘드리아는 호흡을 통해 포도당과 산소를 소모하고 ATP 에너지를 만들어내는데, 갈색지방세포의 미토콘드리아는 단백질 막이 있어 ATP 합성을 막고 심지어 모든 에너지를 열로 내보낸다.
고지방식을 먹인 쥐도 살이 찌지 않았다?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지방조직 내의 ‘TET 단백질(Ten-eleven translocation)’을 억제하면 베이지색지방이 활성화되며 백색지방세포가 갈색지방세포화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뿐만 아니라 기존 갈색지방세포는 더욱 활성화 되어 열량 소비를 촉진하고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비만 생쥐의 지방 조직에서 TET 단백질이 과다하게 발현되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이와 같은 실험 및 연구를 고안했다고 밝혔다.
TET 단백질 발현이 억제된 생쥐는 고지방식을 먹이며 비만을 유도해도 체중 증가와 지방세포의 크기 증가 모두 억제되었다. 또한 인슐린 저항성, 고지혈증, 지방간 등 대사질환 관련 지표가 모두 좋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연구팀은 TET 단백질의 발현이 지방세포의 에너지 대사 과정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지방세포 배양과 동물모델 활용을 통해 생체 내외에서 이를 검증했다.
갈색지방을 늘리는 비법? TET 단백질과 아드레날린 수용체
TET 단백질은 조직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단백질로, 각종 세포의 분화를 조절하며 혈액암 및 여러 고형암의 발달을 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안 TET 단백질이 지방세포의 분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에너지 대사에도 관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은 제기되어 왔으나 그 작용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TET 단백질의 구체적 역할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했을 뿐 아니라, 실제 생체 내의 TET 단백질을 조절하여 비만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 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교감신경계의 작용을 매개하는 아드레날린 수용체 중에서도 ‘베타3 아드레날린 수용체’는 뇌에서 내려온 신호를 전달해 지방세포가 에너지를 연소하고 열을 내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TET 단백질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효소(히스톤 탈 아세틸화 효소)와 결합하고, 이 억제효소를 베타3 아드레날린 수용체 유전자 영역까지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서 베타3 아드레날린 수용체 발현을 직접적으로 조절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TET 단백질을 억제하면 베타3 아드레날린 수용체의 발현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지방 조직의 열 생성과 지방분해, 에너지 소비가 촉진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비만, 당뇨 등 대사질환의 치료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이제껏 몰랐던 TET 단백질의 새로운 역할 뿐 아니라 그 원리와 활용 방향까지 함께 밝혀낸 것이다.
‘후성유전학’에 있어서도 큰 발견, 비만 뿐 아니라 암 치료로도 이어질까
‘유전’하면 유전자의 DNA 염기서열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염기서열 변화 없이도 유전자의 기능 변화에 따른 형질이 후대로 유전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 하는데, TET 단백질 역시 후성유전학적 효소이다.
세포의 핵 내부에는 실 형태의 DNA 염기가닥이 감긴 실패 역할을 하는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이 있다. 이 히스톤 단백질이 유전자 발현 및 기능 조절에 있어 핵심 인자이며, 후성유전 효소에 의해 히스톤 단백질의 화학적 변성이 조절된다. 히스톤 단백질의 DNA 염기가닥 중 시토신 기에 메틸 작용기가 붙어 ‘DNA 메틸화’되면 유전자 발현이 억제되고, 반대로 아세틸 작용기가 붙어 ‘DNA 아세틸화’되면 유전자 발현이 촉진된다. TET 단백질의 경우 ‘탈 아세틸화’에 작용하기에 유전자 발현 억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DNA 메틸화를 조절하는 TET 단백질이 히스톤 단백질 탈 아세틸화에도 관여하며, 효소와 결합함으로써 베타3 아드레날린 수용체 유전자 발현을 직접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힌 연구이다. 히스톤 단백질의 화학적 변성 조절 연구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암과도 연관이 깊어, 비정상적인 단백질 생성을 제어함으로써 암 등의 난치성 질환 치료기술로 이어질 수 있어 촉망받는 연구 분야이다.
연구팀에서는 TET 단백질의 발현과 활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조절물질을 발굴하는 연구를 수행 중에 있으며, 이는 비만이나 당뇨 등 대사질환과 암 치료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연구팀에서는 이제까지 소화 흡수를 방해하는 방식이었던 비만치료제를 대체할, 실질적으로 지방의 연소를 늘리는 방식의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를 주도한 UNIST의 고명곤 교수는 “TET 단백질의 작용원리를 이용해 신체 에너지 소비를 극대화할 수 있는 비만‧대사질환 등의 치료 전략을 제시한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라며 연구 의의를 설명했다. 또한 “뇌신경에 직접 작용해 식욕을 억제하거나, 소화 흡수를 방해하는 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비만치료제 개발의 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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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07-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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