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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송창현 KIST 미래전략팀 연구원
2022-02-16

노벨과학상에 관한 사소한 사실들 Inno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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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10월 초가 되면 전 세계인의 이목은 노벨과학상이 발표되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집중된다. 올해도 과학기술을 통해 인류 문명을 발전시킨 연구자들에게 노벨과학상 수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노벨화학상은 비대칭 유기촉매반응 분야를 개척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베냐민 리스트(Benjamin List)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데이비드 맥밀런(David MacMillan)이 수상하였고, 노벨생리의학상은 온도와 촉각에 관여하는 수용체를 발견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데이비드 줄리어스(David Julius)와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언(Ardem Patapoutian)에게 주어졌다. 노벨물리학상의 경우, 기후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분석모델을 최초로 제시한 이탈리아 로마 사피엔자대학교의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마나베 슈쿠로(Syukuro Manabe),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이 공동 수상하였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평생에 걸친 연구 활동 동기이자 일생의 목표이기도 한 노벨과학상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대표하는 척도로도 간주된다. GDP 대비 연구개발비 투자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매번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상을 국가의 위상과 연결 짓는 우리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도 이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특히 산업 기술 영역에서는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이끌고 있을 정도로 그 수준이 매우 높다. 상대적으로 기초과학 부문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자연과학 분야의 주요 저널들을 기준으로 저자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Nature Index 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 8위에 해당할 정도로 활발히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벨과학상 수상에 있어 국가의 과학기술 역량은 단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그 누구도 내딛지 못한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자적 연구를 수행하는 것, 이것이 노벨과학상에 가까워지기 위한 제1 고려사항이다.

연구의 우수성보다는 최초성

노벨과학상의 수상 기준 등에 관한 정보는 50년이 지나 공개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선정 결과의 타당성에 관해 당장 논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는 연구 주제의 독창성과 기술, 사회적 파급성 등의 요인이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고, 선정 결과에 대해서는 받았어야 할 사람이 못 받았다고 아쉬워하긴 해도, 받는 사람이 받을만 하다는 데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올해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연구자들은, 연구의 질적 수준은 물론 연구 성과의 양적 측면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논문의 수나 인용 횟수, 그리고 h-인덱스(h-index) 등으로 나타나는 영향력 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처럼 정량화되어 나타나는 수치들이 노벨과학상의 직접적인 선정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역대 수상자들의 논문 수나 피인용 수, h-인덱스보다 더 높은 수치를 가진 연구자들도 많다. 이러한 지표는 연구자와 주요 연구 성과의 우수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표> 2021년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성과 지표 ⓒKIST TePRI Report

오히려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개척자(pioneer)의 역할을 한 공로를 높이 인정받았다. 높은 피인용 수와 h-인덱스, 그리고 학자로서의 명망은 이에 뒤따르는 결과물이다.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연구자들에게 더 우수한 저널과 높은 피인용 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미개척 분야에 도전하는 연구를 장려해야 한다. 우수한 연구는 최초인 연구를 수행하면서 부수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지만, 우수한 성과만을 추구하다 보면 최초인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 수상자들은 대체로 30대 후반에 시작하여 50대 초반에 완성한 연구를 가지고 노벨과학상을 수상한다고 알려져 있다. 독립된 학자로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할 때 구상한 아이디어가 노벨과학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인데, 각종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우리 과학기술계 실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상자보다는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

노벨과학상의 트렌드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수상이 시작된 1901년부터 반세기가 넘는 시기까지는 유럽의 독무대였지만 이후 미국 국적의 연구자들이 주류를 차지했고 최근 들어서는 일본 등의 국가에서도 수상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수상자들의 국적이 보다 다양해지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노벨과학상과 인연이 없던 국가들도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노벨과학상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 학자들이 최근 들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야 하는 것은 사실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아니라,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것이다. 노벨과학상의 공식 기록에서는 편의상 출생지를 표기하지만, 실제로 수상자들 가운데는 이민 등을 통해 중간에 국적이 바뀐 경우도 더러 있고, 복수국적을 가진 경우도 있다. 또한 노벨과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구가 수행된 곳이, 태어나고 자란 곳 혹은 학위까지 마친 곳과 다른 경우도 많다. 금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마나베 슈쿠로 역시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으나,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 활동을 수행하면서 그때의 연구 성과로 수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해외의 연구소에서 줄곧 연구한 연구자가 노벨과학상을 받는다면, 이는 진정한 우리의 성과일까?

물론 1명의 선구자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스포츠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는 해당 분야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뿐 아니라, 선구자를 보고 꿈을 키운 후속 세대에서 그를 능가하는 영웅이 탄생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출신의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노벨과학상 수상자급의 연구자들이 끊임없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노벨과학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수상자 배출의 여부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언제 수상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과학기술의 저변을 두텁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의 과학기술

노벨과학상이 반드시 국가 과학기술의 최우선 목표일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오랜 투자가 필요한 기초과학 대신 빠르게 뒤따라 잡을 수 있는 응용기술 중심으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왔고, 이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수단으로서 과학기술의 쓰임새를 중시한다면, 지금까지의 전략도 결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UN에서 분류하는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더이상 선두그룹을 뒤쫓아가는 후발국이 아니라, 후발국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개척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 대비 압도적인 R&D 투자에 안심할 것이 아니라, 인류 지식의 진보를 위해 올바른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할 시기다. 우리 사회에 과학기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지 못한다면, R&D 투자를 아무리 늘려도 노벨과학상은 다른 나라 이야기로 남을 공산이 크다.

노벨과학상은 도달해야 할 종착지가 아니라,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향하는 여정 중 스쳐 지나가는 멋진 풍경과도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노벨과학상 수상 여부에 집착하는 대신 우리 과학기술계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겨울호’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송창현 KIST 미래전략팀 연구원
ch.song@kist.re.kr
저작권자 2022-02-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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