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한산도대첩이 펼쳐진 경남 통영시 앞바다에서 ‘제15회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가 11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간 펼쳐졌다. 통영시 도남항과 한산해역 일대에서 매년 열리는 이 대회는 아시아 3대 요트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대회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러시아 등 10개국에서 총 40척, 400여 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다.
대회는 한산도대첩 장소인 화도 해역에서 열리는 거북선코스, 한산도와 소지도를 왕복하는 학익진코스, 오곡도와 비진도 사이 해역에서 진행되는 이순신코스에서 펼쳐졌다. 바다를 가르는 치열한 레이스 결과 ORCⅠ(크루저) 종목에서는 우리나라의 팀 비키라가, ORCⅡ(크루저) 종목에서는 러시아의 써던브리즈Ⅲ가 우승을 차지했다.
부호 스포츠 이미지 벗고 대중화 나서
요트(Yacht)는 사냥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야흐트(Jacht)에서 유래된 말로 네덜란드 해군이 수심이 얕은 근해에서 해적을 추격하기 위한 선박을 만들며 시작됐다. 배에 돛을 달고 넓은 대양을 달리는 세일링 스포츠를 가리키는데, 가까운 해안을 풍력만 이용하여 항해하는 ‘딩기 요트’와 대양을 가로지르는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크루즈 요트’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요트는 자체가 비싸기도 하지만 정박장인 마리나에 계류만 시켜놓아도 비용을 계속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흔히 부호들을 위한 스포츠라 불린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요트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며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소득수준의 향상도 있지만, 공동으로 요트를 사서 함께 즐기는 동호회가 활발해진 덕분인데, 국토의 삼면이 바다와 인접한 우리나라는 긴 해안선과 연안별로 독특한 해양관광 자원을 보유해 요트를 즐기기에 상당한 이점을 갖고 있다.

지구 상에 요트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선체 크기와 형태, 탑승자 수에 따라 급(Class)이 나뉘는데, 세계적인 요트대회는 크루저급 중형 요트대회가 많고 올림픽은 소형 요트경기가 주류를 이룬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자(470급, RS:X급, 49er급, 레이저급, 핀급), 여자(470급, RS:X급, 49er FX급, 레이저 레이디얼급), 혼성(나크라 17급) 등 10종목이 진행됐는데, 우리나라의 하지민 선수는 레이저급에서 메달레이스 5위, 종합 7위라는 한국 요트 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다.
요트경기는 바다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다양한 특성이 있다. 바다 위에서는 육상 달리기처럼 출발선을 그어놓고 정지해 있다가 출발할 수 없으므로 경기는 양쪽 마크 또는 본부선을 잇는 가상선을 스타트라인으로 정하여 그곳을 통과하며 시작된다. 출발 전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선수들끼리 견제하다가 출발신호에 맞춰서 속도를 충분히 올리며 출발선을 통과한다.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나가거나 신호 후 4분 안에 통과하지 못했을 때 실격 처리된다.
레이스가 시작되면 범주지시서에서 정해놓은 방향과 순서를 따라 바다 위에 설치한 마크를 돌아서 골인선을 통과해야 한다. 코스를 가장 빨리 완주한 1위는 1점, 2위는 2점 등 하위로 갈수록 높은 벌점을 부과하여 여러 번 레이스를 거친 다음 종합점수가 낮은 순서로 순위를 정한다. 대회 마지막 날에는 상위 10척의 요트만 참여하는 메달레이스를 실시해 1위 2점, 2위 4점 등 벌점을 2배로 부과해 최종 메달 색깔을 정한다.
맞바람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원리
요트는 다른 선수와의 경쟁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도의 높이, 조수의 차, 바람 같은 주변 환경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여기서 경기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요트를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인 바람을 잘 다루는 것이다. 바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요트는 목표만 보고 똑바로 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고려하고 변화를 미리 예측해 코스를 항해하는 최적의 동선을 찾아내야 한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하지민 선수는 이와 같은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요트를 바다 위 체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돛대에 매단 세일(Sail)이 바람의 힘을 요트에 전달해주는데, 세일은 얇은 천이면서 바람에 늘어나지 않고 풍압과 인장력에 잘 견딜 수 있는 강한 소재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요트에 주로 사용하는 소재는 다크론(Dacron)인데, 경주용 레이싱 요트의 경우는 폴리에스테르 필름에 케블라(Kevlar)와 카본(Carbon)을 적층한 복합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크루즈용 요트의 경우는 오랜 기간 사용이 가능한 내구성과 UV에 대한 안전성을 가진 고강도 폴리에스터를 많이 사용한다.

돛대에는 세일을 2개 다는데, 두 세일을 잘 조정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돛대 뒤쪽에는 배의 추진력을 담당하는 삼각형 모양의 메인세일(Main Sail)을 달고, 앞쪽에는 제네커(Gennaker)나 지브세일(Jib Sail) 중 하나를 단다. 뒤에서 배를 앞으로 밀어주는 순풍이 불 때는 바람을 풍성하게 맞는 제네커를 달아 최대한 자연에 순응해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문제는 목표지점에서 요트를 향해 역풍이 불 때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는 것이다. 이때는 돛대 앞쪽에 지브세일을 달아 역풍인 바람이 지브세일 옆으로 들어오도록 방향을 잘 조정한다. 옆에서 바람을 맞은 지브세일은 둥글게 곡선 모양을 이루는데, 바깥쪽에서는 공기가 곡면을 따라 빠르게 흐르면서 압력이 낮아지지만 안쪽에서는 공기가 느리게 흘러 압력이 높아진다. 결국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방향으로 힘, 즉 비행기가 붕 뜨는 것과 같은 양력을 얻게 된다.
지브세일을 통해 양력을 발생시키면 요트는 맞바람 정면으로부터 좌우 각각 45도인 노고존(No-Go-Zone)을 제외하고는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역풍일 때는 노고존을 피해 좌우 45도 바깥으로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며 앞으로 전진할 수 있게 된다.
요트 중앙 아래에는 용골 또는 킬(Keel)이라 불리는 기다란 날개가 수중으로 뻗어 있고 그 끝에는 무거운 추가 달려있다. 용골은 맞바람이 불 때 배가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아줌으로써 바람을 거슬러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요트의 무게중심이 여기에 쏠려 있어서 넘어질 듯한 각도에서도 오뚜기가 균형을 잡는 똑같은 원리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바다 위 첨단 과학기술의 경연장
요트경기에서 바람을 잘 읽는 일도 중요하고 이에 따라 적절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요트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다루고 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보통 소형 요트경기의 경우 1~2명이 탑승하며, 크루저급 중형 요트경기의 경우에는 선장 역할을 하는 스키퍼(Skipper)를 중심으로 4~5명이 탑승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요트경기 시 한 번의 레이스를 위해서는 바다 위에서 3~4시간 동안 끊임없이 요트를 조정해야 하며, 이런 레이스가 5~6일간 계속 펼쳐진다. 2인승 요트의 경우 경기 중 초속 6~7m의 풍속에서 메인세일에 평균 9.5kg의 힘이 가해지며, 메인세일을 끌어당길 때는 25kg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근력과 지구력 등 신체적인 능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요트를 완전하게 조정하기 불가능하다.
요트에 탑승한 선수들이 하는 중노동의 상당수가 지브세일과 관련이 된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지브세일을 풀었다가 감았다 하기 때문이다. 경기 중 몸을 선체 밖으로 내어 균형을 유지하는 하이킹 동작은 높은 근력과 지구력이 있어야 하는데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현상에 빠르게 대처하여 좁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에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민첩성이 필요하다.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선수들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경기력을 높인다.

과학기술도 요트의 경기력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 된다. 요트를 제작할 때는 무엇보다 디자인이 중요한데, 파도를 부드럽게 가르면서 타고 넘어갈 수 있는 형상이 파도를 부수면서 전진하는 형상보다 더 빠른 속도를 올릴 수 있다. 항해할 해역의 해상조건을 잘 고려해서 적합하게 설계해야 거친 해양에서 만족스러운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물이 침투하지 않는 수밀성과 안전성은 기본이다.
요트에 적용되는 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는 아메리카스컵 대회(America’s Cup Challenge)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대회는 바다 위의 포뮬러1(F1)이라 불리는데, 1851년 시작돼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다. 참가팀은 자국에서 제작한 요트를 사용해야 하므로 세계 각국은 가장 빠른 요트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미 항공우주국(NASA) 등의 기술력을 앞세운 미국이 30차례나 우승컵을 가져간 상황. 하지만 올해 3월 열린 제35회 대회에서 뉴질랜드가 지난 대회에 이어 왕좌를 지키면서 신흥 요트 강국으로서 입지를 확실히 했다.
- 김홍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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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11-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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