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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준래 객원기자
2021-10-15

기생충도 생존 위해 '환승 전략'을 짠다 최종 숙주로 가기 위해 중간 숙주 노화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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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transfer)이란 다른 노선이나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방법이다. 목적지까지 더 빠르게 가야 하거나 보다 편하게 가기 위해 선택하는 경우에 환승을 선택한다. 다시 말해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중간 과정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경하는 것이 바로 환승의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환승의 지혜를 기생충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기생충의 목표가 최종 숙주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가정했을 때, 최종 숙주에 바로 기생하는 것이 어려우면 중간 숙주에 우선 기생하다가 최종 숙주로 가는 방법을 유도하거나 기다리는 것이다.

6주에서 12주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식물은 번식보다 성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 John Innes Centre

대표적 사례로는 기생충의 하나인 간디스토마를 들 수 있다. 간디스토마는 쇠우렁을 중간숙주로 삼고, 붕어나 납자루 등의 민물고기를 최종숙주로 삼는다. 여기서 간디스토마는 붕어 같은 최종 숙주로 가기 위해 쇠우렁을 중간 숙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간디스토마 외에도 중간숙주를 거쳐 최종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나 기생성 미생물들은 숱하게 많은데,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숙주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숙주가 생명을 잃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피해를 주는 것이 기생충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영국의 과학자들이 숙주에게 피해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주의 수명을 늘려주는 것 같은 이로운 행동을 하는 기생충과 기생성 미생물을 발견하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식물에서 다른 식물로 건너가기 위한 기생 미생물의 전략

숙주의 수명을 늘려주는 유익한 기생성 미생물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영국의 식물 및 미생물 관련 연구소인 ‘존이네스 센터(John Innes Centre)’의 연구진이다.

‘사스키아 호겐하우트(Saskia Hogenhout)’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는 희귀한 기생성세균(parasitic bacteria)를 연구한 끝에 최근 이들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이 관찰 대상으로 삼은 기생성세균은 식물에 기생하여 다양한 질병을 일으키는 파이토플라즈마(Phytoplasma)라는 세균이다. 연구진은 이 세균에 감염된 식물이 더 이상 번식하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에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파이토플라즈마에 감염된 식물의 변화 기전 ⓒ researchgate

연구진은 파이토플라즈마가 SAP05라는 이름의 단백질로 식물을 감염시켜 좀비처럼 만든다는 점을 발견했다. 테스트 결과 SAP05 단백질은 식물의 노화를 막는 대신에 번식을 못 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파이토플라즈마에 감염된 식물은 씨앗이 없는 꽃을 피우지만, 다른 감염되지 않은 식물들보다 더 오래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잎과 줄기도 동종의 다른 식물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커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처럼 파이토플라즈마가 식물을 좀비로 만드는 이유에 대해 호겐하우트 박사는 “식물을 오래 살게 만들어서 식물의 수액을 먹으러 온 곤충이나 새를 통해 다른 식물로 옮겨가기 위한 전략”이라고 밝혔다.

식물이 정상적으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만들고 나면 잎이 다 떨어지고 시들기 때문에 곤충이나 새들이 찾지를 않는다. 하지만 노화를 막으면 모든 에너지를 성장에 쓰기 때문에 곤충이나 새들의 눈에 띄므로 파이토플라즈마도 다른 식물로 옮겨갈 수 있는 기회가 증가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의견이다.

최종 숙주에 기생하기 위해 중간 숙주를 감염

중간숙주를 이롭게 만들어 다른 최종숙주로 옮겨갈 수 있는 토대로 삼는 기생충으로는 개미를 숙주로 만드는 ‘아노모태니아 브리비스(Anomotaenia brevis)’라는 이름의 촌충도 있다.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마인츠대의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는 감염되지 않은 개미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해당 개미들을 3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관찰했는데, 그 결과 감염된 개미 중 53%가 살아남은 반면에 감염되지 않은 개미는 모두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염된 개미들의 생존율 외에도 특징적인 부분은 감염된 개미들의 피부색이 변한다는 점이다. 해당 개미들은 처음에는 노란색을 띠다가 시간이 갈수록 갈색을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감염된 개미들은 노란색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좌)는 감염되지 않은 개미의 색깔인 갈색과 달리 노란색을 유지했다 ⓒ researchgate

원래 해당 개미들 중에서 이처럼 피부색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여왕개미만이 유일했다. 여왕개미는 다른 개미들의 수명이 1~2년인 반면에 최대 20년 정도를 사는데, 연구진은 감염된 개미들이 비슷하게 사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감염되지 않은 개미들보다는 오래 산다는 사실은 입증된 셈이다.

연구진은 감염된 개미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다른 개미들처럼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고 개미굴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파악했다.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 않다 보니 위협을 당할 일도 없고, 편안하게 지내다 보니 수명이 연장된 것이다.

물론, 감염된 개미들이라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놀고먹은 것은 아니다. 이들은 대신에 다른 위험을 감수하게 되었다. 바로 외부에서 딱따구리가 침입했을 때 감염되지 않은 개미들을 대신해서 먹이가 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좀 더 연구를 진행한 끝에 연구진은 감염된 개미들이 일부러 놀고먹은 것이 아니라 기생충에 감염되면서 행동이 느려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놀라운 점은 기생충의 최종 숙주가 딱따구리였다는 점이다. 딱따구리에 기생하기 위해 기생충들은 개미들을 중간숙주로 삼아 치밀한 환승 전략을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21-10-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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