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털 색과 색깔 패턴은 형태학적 다양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표적인 예는 우리에게 친숙한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된 진돗개이다. 진돗개는 털 색깔에 따라 황구, 백구, 재구, 흑구, 호구 등 10여 종으로 나뉘며, 이러한 색깔 패턴은 각각 단일 품종으로 보존·관리된다.
이처럼 같은 종의 개에게서 다른 색깔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달 과학저널 네이처 지(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는 개의 털 색깔 패턴의 새로운 양상과 밝은색 털이 멸종 늑대에서 유전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게재됐다. 이미 다수의 연구를 통해 개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유전적 요소가 발견되었지만, 여전히 여러 색깔의 패턴이 나타나는 유전 요인의 조절에 관한 연구는 논쟁 이슈였다.
이에 독일 베른대학교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수의과대학 유전학 연구소는 개의 털 색깔 패턴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조절되는지, 그리고 개의 밝은 색 털이 오래전에 멸종된 종에서 유래한 유전적 변이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해 관심을 끈다.
포유류의 특정 색깔을 조절하는 ASIP
개를 비롯한 포유류에서 특정 색깔을 나타내는 패턴은 ASIP의 조절에 의해 발생한다.
특히, 개 과의 포유류와 늑대는 검은색 색소인 유멜라닌과 노란색(누런색) 색소인 페오엘라닌이라는 두 가지 유형의 색소를 생성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색소는 신체의 적절한 시간과 위치에서 조절된 소위 ‘스위치’에 의해 다양한 색깔 패턴이 나타난다.
기존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개는 ASIP의 조절에 의해 4가지 다른 패턴이 인식되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수천 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 아구티(agouti) 신호전달 단백질이 개의 털 색을 결정하는 데 주요 스위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구티 신호전달 단백질이 존재하면 색소 생성 세포는 황색 페오멜라니을 합성한다. 따라서 만약 아구티 신호전달 단백질이 없는 개는 흑색 유멜라닌이 형성되어 황색 털의 발현이 적거나 없게 된다.
아구티는 개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데 유효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기존 연구가 밝혀낸 4가지 패턴에서 1가지 패턴이 더해지게 되었다. 즉, 개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패턴은 총 5가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5가지 색깔의 패턴이 발현되는 것은 ASIP의 변이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연구진들은 아구티 신호전달 단백질이 생성되는 개의 복부와 모발에서 각기 다른 유전 정보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먼저 개의 복부에서 발견된 유전정보로는 하나는 정상량의 아구티를 생산하고 전달하지만, 다른 변이체는 이상적 활성화로 인해 아구티의 과대 생산을 유발한다. 모발에서 발견된 유전정보도 역시 각기 다른 개의 털 색깔 패턴을 유발한다.
연구를 진행한 배너쉬(Danika L. Bannasch) 베른 대학 교수는 “개의 털 색깔에 영향을 주는 것은 5가지 패턴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전 연구들에서 밝혀진 4가지 다른 패턴과는 다른 발견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다시 작성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개의 밝은색 털은 멸종 늑대에서 유전
연구진들은 세계 각 지역에 서식하는 늑대의 게놈이 상당히 많이 공개됨에 따라 개에게서 발견된 유전적 변이가 늑대에게도 존재하는지에 대한 연구도 추가로 수행했다. 배너쉬 교수는 그 결과에 대해 “개의 털 색깔 패턴의 변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훨씬 이전에 일어났을 것이고, 개들 중 일부는 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즉, 약 4만여 년 전에 개의 가축화 이전 시기에 복부 및 모발 주기의 유전정보에 대한 변이체가 이미 늑대에게도 존재했다는 것이다.
현재 히말라야의 북극늑대(학명 Canis lupus arctos) 종과 밝은색 털을 가진 늑대는 여전히 이러한 유전적 변이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멸종된 늑대에게서 이러한 기원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연구진들은 늑대에게서 나타난 이러한 유전적 변이가 과거 빙하기 동안 눈이 많은 환경에서 밝은 색 털을 가진 늑대의 적응을 도왔을 것으로 추측했다.
또한, 밝은색 털의 개는 약 200만 년 전 지금은 멸종된 늑대의 친척에서 그 유전적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연구진이 들개 계통 유전자 서열을 비교한 결과 털 색깔 패턴의 변이체가 황금 자칼이나 코요테 등의 종과 더 많은 유사성을 나타냈다. 보통 늑대와 개의 털 색깔 패턴에 대한 유전정보는 유사종들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는데, 밝은색 털을 가진 개와 북극늑대에게서 멸종된 종의 DNA 조각이 발견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연구를 진행한 Leeb 박사는 “밝은색 털이 약 200만 년 전, 지금은 멸종된 늑대의 유전이라는 사실은 마치 현생 인류가 멸종된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의 DNA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연상할 만큼 놀라운 발견이다”라고 덧붙였다.
- 김현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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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8-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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