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와 고래를 포함한 몇몇 포유류는 초음파 신호를 내보내고 이것이 근처 물체에 부딪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감지해 주변 물체의 형태나 거리를 파악한다. 밤이나 어두운 바닷속과 같이 빛이 충분치 않아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 환경에서 눈을 대신해 주변 환경을 살필 수 있는 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이는 ‘반향 위치 측정’ 또는 ‘에콜로케이션(echolocation)’이라고도 불린다. 심지어는 시력을 잃은 사람 중에서도 이 같은 능력이 보고된 바가 있다.
최근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은 나무 쥐의 일종인 soft-furred tree mouse(Typhlomys chapensis)를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이 같은 에콜로케이션 능력은 귀 뼈의 형태와 청력과 관련된 유전자들에 변화에 의해 생기는 것으로, 어두운 환경에 사는 다양한 포유류들에게서 ‘수렴 진화(convergence evolution)’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서로 계통이 다른 종들이 비슷한 환경에 유사한 방식으로 적응했다는 의미다.
나무 쥐들은 에콜로케이션으로 적응했을까?
연구에서 분석된 soft-furred tree mouse는 길을 찾을 때 초음파를 내고, 시력이 거의 없어 에콜로케이션 능력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어 오던 종이였다. 그러나 아직 증거가 확인된 바 없었다. 같은 속(genus)에 속한 몇몇 종들도 이들과 형태학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어쩌면 이 속에 속한 종들 모두에게 에콜로케이션 능력이 있을 것으로 제시된 바 있기도 하다.
연구진은 이를 연구하기 위해, T. chapensis와 함께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할 것으로 추측되는 다른 세 종(T. cinereus, T. daloushanensis, T. nanus)의 야생 soft-furred tree mice를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중국에서 포획했다. 이들에 대해 특수 마이크를 이용해 소리를 녹음하는 한편, 각 개체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한 마리씩 닫힌 우리에 넣은 채로 그냥 돌아다니는 움직임과 우리 안에 구조물을 넣고 그 주위를 다니는 움직임을 카메라와 녹음기로 함께 기록했다.
또한, 조직학적 관찰을 위해 이들 종 일부의 후두(larynx) 부위를 고정시켜 일반 실험실 쥐와 비교하고, 이들의 근육과 간 조직 등에서 DNA를 추출해 유전체(genome) 시퀀싱을 해 분석했다. 이 쥐들이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하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그와 연관된 행동학적, 형태학적, 유전체학적, 그리고 그 분자생물학 수준의 기능적 특징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초음파를 발산하는 양상과 형태학적 구조가 서로 유사해
분석 결과, 먼저 연구진은 이 네 종의 쥐가 모두 초음파를 발산하며, 그 광대역과 최고 주파수 등이 종마다 달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쥐들이 열린 공간에서 발산하는 초음파의 양상과 구조물이 있는 공간에서 길을 찾아 움직일 때 발산하는 초음파의 양상 사이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구조물이 있는 공간에서 길을 찾을 때 이들의 초음파 양상은 더 복잡해지고 빈도가 높아졌다. 흔히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하는 다른 육지동물들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실험 방식을 사용해도 결과는 같았다. 대조군인 실험실의 쥐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로, 이 나무 쥐들이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하도록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한편, 이들의 후두부에 있는 갑상연골을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는 실험실의 집쥐와는 달리 돌출된 부위가 모두에게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전 연구들에서 초음파를 내는 설치류들에게서 발견한 것과 같은 구조였다. 이것은 에콜로케이션이 수렴 진화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인데, 이를 다시 유전자 수준에서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나무 쥐들의 유전체 정보를 17종의 다른 포유류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이 쥐들에게서 특히 청력과 관련된 유전자에 다른 유전자들에 비해 공통적인 변이들이 더 많이 일어났음을 확인하고, 청력과 관련된 유전자에 생긴 변이가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종들에 비해 이 쥐들에게 더 많이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유전학적 변이도 수렴 진화를 암시해
이 같은 유전적 변이는 SLC26A5, PCDH15, OTOF와 같은 유전자상에 나타났는데, 특히, SLC26A5은 이전의 연구에서 작은 박쥐류(microbats)와 이빨고래(toothed whales) 등에서 공통으로 유전 변이가 확인된 유전자이기도 했다. 연구진은 실험을 통해 나무 쥐들에게서 확인한 이 유전자상의 변이가 실제로 기능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계통분류학적으로 서로 먼 동물들이 각자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에콜로케이션을 사용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 이들에게 매우 유사한 유전학적, 형태학적, 행동학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자연에서 같은 환경압이 복잡한 적응 기작을 여러 종에 걸쳐 반복으로 일으킨다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 한소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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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6-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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