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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21-05-31

기생충에 감염되면 더 오래 사는 동물 유럽 도토리개미, 여왕개미 대접받으며 장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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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은 숙주의 몸에 들어가 영양분을 몰래 훔쳐 가는 생물이다. 따라서 기생충이 있으면 성장이나 건강에 나쁜 영향이 있으며 여러 가지 질병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기생충이 있는 개체 중 그렇지 않은 동료 개체보다 더 오래 사는 동물이 발견됐다. 중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토리개미 ‘Temnothorax Nylanderi’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도토리개미 ‘Temnothorax Nylanderi’의 머리를 확대한 모습. ©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antweb.org)

몸길이가 2~3㎜에 불과한 이 개미들은 도토리 안이나 나뭇가지, 혹은 숲의 바닥에 작은 군락을 형성한다. 이처럼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이 개미들의 몸에는 촌충의 한 종류인 ‘Anomotaenia brevis’라는 기생충이 최대 70마리나 기생한다.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마인츠대학의 곤충학자 수잔 포이츠크(Susanne Foitzik)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마인츠 주변의 숲에서 도토리개미 군락 58개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관찰했다. 즉, 기생충에 감염된 개체와 감염되지 않은 개체, 그리고 여왕개미의 생존율을 3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것이다.

그 결과 감염되지 않은 개미들은 95% 이상 사망했지만,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들은 53%가 살아남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살아남은 기생충 감염 개미들의 최종 수명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왕개미의 수명에 근접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개미들의 수명은 보통 2년이 채 되지 않지만, 여왕개미들은 20년까지 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상태 그대로 유지하며 장수해

더구나 감염된 개미들은 3년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젊음의 특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개미들은 처음에 밝은 노란색이었다가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하는데, 감염된 개미는 어린 개미처럼 노란색을 계속 유지한 것이다. 또한 감염된 개미는 어린 개미와 비슷한 신진대사율과 지질 수준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일꾼개미보다 덜 활동적이었으며, 집단 서식지 안에서만 머물며 다른 개미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즉, 먹이와 청소 서비스를 받으며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던 것. 심지어는 여왕개미보다 약간 더 많은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감염된 개미들의 큐티클(외피층)에 있는 화학적 신호가 동료 개미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미들의 집단 거주지는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정상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일꾼개미들은 계속 밖에서 먹이를 찾아왔으며, 여왕개미들은 계속해서 알을 낳았던 것이다.

노란색이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이며, 짙은색은 감염되지 않은 개미다. ©Susanne Foitzik

연구진이 자세히 관찰한 결과 그 같은 질서 유지의 비밀을 알아냈다. 기생충에 감염되지 않은 일꾼 개미들이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즉, 공동체 차원에서 비감염 개미들이 스트레스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과학자는 사회적 곤충을 하나의 곤충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거대한 초유기체로 생각한다. 한 개체가 행동하면 주변의 다른 개체들이 반응하므로 어떤 개미도 진정으로 단독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이는 촌충이 일꾼개미의 극히 일부만을 감염시켰지만, 집단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생충이 개미 집단을 조종하는 까닭은 Anomotaenia brevis라는 촌충의 특별한 생활사 때문이다. 이 촌충은 중간숙주인 개미가 최종숙주인 딱따구리에게 잡아먹히기 전까지는 성충으로 성숙할 수도 없고 알을 낳을 수도 없다.

딱따구리에 잡아먹힐 때까지 생존

일꾼개미처럼 집단 거주지 밖을 어슬렁거리면 다른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거주지 안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오래 사는 숙주 개미들은 딱따구리에게 잡아먹힐 때까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 기생충의 기막힌 조종 능력은 숙주 개미들이 딱따구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 실력을 발휘한다. 연구진은 도토리 개미의 거주지를 개봉했을 때 일꾼개미는 애벌레를 데리고 도망가는 데 비해 숙주 개미는 그저 하늘을 응시한 채 가만히 처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생충에 감염된 개미가 왜 장수하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기생충이 숙주 개미에 대해 생리학적 변화를 유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왕개미들처럼 지극한 보살핌을 받기 때문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진은 분자 및 후생유전학적 수준에서 감염된 개미들의 수명 연장 뒤에 숨겨진 요인을 알아내기 위해 추가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영국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1-05-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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