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독수리는 평소에 얼마나 높이 날아오를까? 국립생태원이 국내에서 월동하는 독수리에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해 분석한 결과, 비행 고도는 65.9%가 300m 이하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비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인도 북부까지 이동하는 철새인 줄기러기는 최고 7,290m 고도까지 올라가 비행한다. 주 서식지와 월동지를 2개월에 걸쳐 오가는 줄기러기가 히말라야 산맥을 넘을 때는 단 8시간 만에 주파한다.
그럼 독수리나 기러기보다 체격이 훨씬 작은 개개비들의 비행 고도는 얼마나 될까? 북유럽에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까지 이동하는 개개비들은 최고 6,300m 고도로 날아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골프공의 절반에 불과한 무게를 지닌 이 작은 새들이 그처럼 높이 올라가 비행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매년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수백만 마리의 명금류(songbird)들은 이동할 때 대부분 밤에만 비행하며 낮에는 쉬면서 먹이 활동을 한다. 하지만 바다나 사막처럼 쉬거나 먹이 활동을 할 수 없는 곳에서는 24시간 이상 연속으로 비행하기도 한다.
유럽의 개개비 역시 그런 명금류의 일종이다. 이 작은 철새는 1개월에 걸친 이동 기간 중 착륙 없이 최대 34시간 연속 비행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유럽에서 여름을 나는 개개비는 가을에 기온이 떨어지게 되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까지 약 7,000㎞를 이동한다.
무게 1.2g의 새로운 데이터 기록장치 개발
스웨덴 룬드대학의 생태학자 시셀 쇠베르크(Sissel Sjöberg)와 데니스 하셀퀴스트(Dennis Hasselquist)는 개개비들이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횡단할 때 어떻게 통과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기존의 위치 추적기는 기러기와 같은 큰 새들에게만 부착할 수 있고 개개비같이 작은 새들에게는 부착하기 어렵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무게 1.2g밖에 나가지 않는 새로운 데이터 기록장치를 개발해 스웨덴 중부 외레브로 부근에 있는 호수에서 여름 동안 포획한 개개비 63마리에 부착했다. 그 결과 1년 후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온 14마리의 개개비에게서 유용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데이터 기록장치에는 개개비들이 아프리카를 오갈 때의 고도 및 활동 등에 관한 정보가 지속적으로 저장돼 있었다. 고도 측정은 시간당 한 번 기록되며, 새들이 날고 있는지 땅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지 아니면 휴식을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활동 정보는 5분마다 기록된다.
데이터 분석 결과 개개비들은 밤에 평균 2,400m 고도로 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면 새들은 그보다 3,000m를 더 높이 올라가 낮 동안 평균 5,400m의 고도로 비행했다. 낮에도 비행한다는 것은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처럼 쉬지 못하는 지역을 건너는 중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이때 최고 비행 고도는 6,300m까지 기록되었으며, 한 마리의 개개비는 32시간 이상을 공중에 떠 있은 것으로 밝혀졌다. 개개비들은 해질녘까지 그 고도에서 순항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2,400m의 고도로 내려와 비행했다.
연구를 주도한 시셀 쇠베르크는 “우리는 명금류의 일종인 개개비들이 이렇게 높이 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스웨덴 룬드대학,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자연연구센터 등의 연구팀이 참여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됐다.
낮에는 밤보다 2배 이상 높은 고도로 비행
그럼 왜 개개비들은 낮에 비행할 때 밤보다 2배 이상 높은 고도로 올라가는 걸까. 이에 대한 확정적인 설명은 아직 없다. 그러나 연구진은 철새들의 고도 선택에 대한 이유 중 기존에 가장 유력하게 주장되고 있는 요소인 바람과 기온 때문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한 개개비들의 이동 경로에는 줄기러기들을 극한 고도까지 밀어붙이는 히말라야 산맥 같은 높은 산도 없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개개비들이 낮 동안 맹금류를 피하고자 높은 고도로 비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그보다 다른 가설을 제안했다. 낮이 되면 태양 복사열에 의해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은 피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개개비들은 비행할 때 날개를 초당 몇 번씩 움직여야 하므로 체온이 상승하게 된다. 그런데 태양이 없는 밤에는 상관없지만 낮에 비행하게 되면 태양의 복사열에 노출돼 체온이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를 피하기 위해 2,000m 고도보다 기온이 22℃ 더 낮은 5,400m 이상의 고도로 비행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평소에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는 대부분의 철새들이 장거리를 이동할 때는 왜 밤에 비행하고 낮에 쉬는지에 대한 유력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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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5-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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