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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한소정 객원기자
2021-03-30

기린이 긴 목으로 인한 고혈압을 극복한 방법 기린의 긴 목이 진화한 유전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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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기린(Giraffa)’은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기린과의 포유류로 4개 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긴 다리와 긴 목 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2미터 가량의 긴 목은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7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떻게 기린의 목이 이렇게 길어졌을까를 두고 다윈과 라마르크와 같은 진화학자들은 여러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높은 곳에 있는 먹이에 닿기 위해서거나, 높은 곳에서 멀리 보면서 포식자나 경쟁자를 경계하기 위해서거나,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했다는 설명이다.

진화의 원인이 어떤 경우이건 간에, 과학자들에게 이 긴 목이 가진 공학적 문제는 특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와 같았다. 긴 목을 통과해 뇌까지 산소를 보내기 위해서는 기린의 심장이 인간보다 2.5배가량 더 높은 압력으로 피를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린의 심혈관계의 벽이 두꺼워지게 하고, 기린이 목을 높이거나 내릴 때 갑자기 혈압이 변하는 것을 막도록 순환계가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길고 무거운 목을 지탱하기 위해 목덜미의 인대가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기린의 목이 길어진 것은 여러 생물학적, 생리학적 특징들이 함께 진화한 결과인 것이다.

최근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지에서 발표한 논문은 로스차일드 기린(Giraffa camelopardalis rothschildi)의 유전체를 염색체 단위의 어셈블리로 완성해 분석한 결과, 기린이 긴 목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고혈압 조건을 이겨낼 수 있는 ‘유전적 변이’가 무엇인지 특정할 수 있었고, 이 변이를 형질 전환한 쥐에 도입한 실험에서 이 쥐들이 고혈압을 유도해도 고혈압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먼저, 연구진은 기린의 유전체 서열 정보를 얻은 뒤에, 이것을 다른 포유류에서 단백질 서열을 지정하는 코딩 부분(coding region)과 비교 분석해 양성 선택(positive selection)의 시그니처를 보이는 101개 유전자와 빠르게 진화한 시그니처를 보이는 359개 유전자를 탐지했다. 이들은 기능상 성장과 발달, 신경과 시신경계, 일주기(circadian rhythm), 혈압조절에 연관된 유전자였다.

이 중에서 연구진은 이전에도 기린에게서 자연선택된 것으로 제시된 바 있고 이번 분석에서도 다른 유전자에 비해 두드러진 기린 특유의 변이가 확인된 유전자 FGFRL1에 주목했다. 이 유전자는 인간과 쥐에게서 심혈관계와 골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른 유제류, 포유류와 비교해 기린 특유의 아미노산 변이를 일으키는 염기가 일곱 개나 있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이 유전자의 변이가 긴 목으로 인해 혈압이 매우 높은데도 다른 동물들이 고혈압 조건에서 보이는 증상이 관찰되지 않는 기린의 특이적 심혈관 혈류학적 특징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확인하고자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쥐의 FGFRL1 유전자에 기린형 변이를 오려 넣었다. 그리고 야생형 쥐와 기린형 유전변이를 가진 쥐에게 각각 고혈압을 유도했는데, 이후 28일간 야생형 쥐는 고혈압으로 발전한데 비해 기린형 유전변이를 가진 쥐는 심박수나 혈압의 변화, 기타 심장질환 등이 관찰되지 않았다. 이것은 기린의 유전적 특징 실험을 통해 확인하는 동시에, 인간의 고혈압을 치료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는 발견이기도 하다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연구진은 FGFRL1에 기린형 유전변이를 가진 쥐의 경우 태어나자마자 발육부진 증상을 보였다고도 보고했다. 야생형 쥐보다 몸집이 작고 두개골과 안면의 발달이 더디고 척추의 길이도 더 짧았다. 다만, 성체가 되었을 때는 야생형 쥐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것은 FGFRL1이 기린에게서 고혈압 조건을 이겨내도록 도울 뿐 아니라 뼈의 형성에도 관여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러나 성체가 되어서는 야생형과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을 보아 FGFRL1만으로 기린 특이적 뼈 형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유전자들이 함께 연관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다른 반추동물과 비교해 기린은 혈관이나 심장, 신장과 같이 고혈압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세포조직과 연관된 기능에서 차이를 보였다고도 연구진은 보고했다. 많은 학자가 생각해왔던 것과 같이 기린의 긴 목이 진화하는 것에 여러 기능과 연관된 유전적 변이가 관여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기린의 진화에 연관된 유전적 변이 연구를 통해 인간의 질병에도 통찰을 제공하는 연구라고 연구진은 강조한다.

한소정 객원기자
sojungapril8@gmail.com
저작권자 2021-03-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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