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제46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조 바이든의 첫 업무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었다. 미국이 자국에 불리하다고 탈퇴하면서 빛을 잃을 뻔했던 파리기후변화협약은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국제사회에서 큰 힘을 받게 됐다.
2015년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미래의 기후 대재앙을 막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고 있는 조약이다. 이산화탄소로 대표되는 온실가스는 인류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한 결과 급격히 증가했는데,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기상이변이 나타나는 지구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환경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기준으로 무려 37%나 감축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부문별 세부 목표를 정한 국가 로드맵이 작성됐는데,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많이 줄여야 하는 감축률 1위인 부문이 바로 건축물이다. 건축물에서는 배출 전망치보다 32.7%를 줄여야하는데, 이는 전체 온실가스 감축량의 20.5%를 차지한다.
2025년부터 아파트에 제로에너지 의무화
생명체는 생명 유지활동을 위해 에너지가 필요한 데, 이 말은 건축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건축물은 에너지를 공급받아 어둠을 밝히고 추위와 더위에 맞서 실내온도를 조절하며 엘리베이터나 환기장치 등 내부 설비를 가동한다. 그런데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약 5분의 1을,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약 4분의 1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그 양이 상당히 많다.
건축물의 온실가스 발생을 줄이기 위해, 다시 말해 에너지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도’가 도입됐다. 제로에너지 건축물(ZEB, Zero Energy Building)이란 말 그대로 에너지 소비량이 제로인,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건축물이다. 관계 법령인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에서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모량을 최소화한 녹색건축물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바뀔 예정이어서 향후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2020년 신축 공공건축물에 제로에너지가 의무화된 데 이어 2025년부터 민간으로 의무화가 확대 적용된다. 1,000㎡ 이상 민간건축물과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모두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받아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물 에너지 효율등급 평가에서 1++ 이상 등급을 받아야 한다. 1++이상은 주거용 건축물의 경우 연간 에너지 사용량이 90kWh/㎡보다 적어야 하는데, 이는 일반 건축물 대비 3분의 1로 허리띠를 졸라맨 수준이다.
에너지를 적게 쓸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에너지의 일정 부분을 건축물 스스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 중 생산하는 에너지가 차지 비율을 ‘에너지 자급률’이라 하는데,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최소 20%(5등급 기준)는 넘겨야 한다. 이 외에 효율적인 에너지 관리를 위해 건물에너지통합관리시스템(BEMS,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 또는 원격검친 전자식계량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건축물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20%만 생산해도 가장 낮은 등급이기는 하지만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인정해주는 까닭은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는 일은 상당한 비용이 있어야 하고 아직 기술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에다.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제로에너지 건축물이 주목받고 있지만, 국가마다 추구하는 목표 수준은 제각각이다. 기후 조건이나 주택, 건축 양식, 경제상황, 기술수준, 비용 등이 모두 달라 획일화는 쉽지 않다. 공통점이 있다면 선진국들이 추진하는 목표도 완전한 제로에너지가 아니라 사실상 제로에너지 건축물(nZEB, nearly Zero Energy Building)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는 줄이고 유출을 막는 패시브 하우스
불과 4년 뒤부터 우리나라에서 건설되는 모두 아파트들은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피해갈 수 없다. 아파트에서 제로에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비 자체를 줄이는 일이다.
건축물에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는 것을 패시브(Passive) 전략이라 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집을 패시브 하우스라 부른다. 패시브 전략은 건축물의 자연적인 실내환경 조절 능력을 최대화하고 설비는 최소한으로 필요 용량만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파트에서 에너지 사용이 많은 냉·난방과 환기, 조명 등의 부하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후와 대지 상태 등 입주조건을 분석한 후 태양의 방위각과 고도, 바람길 등을 고려해 아파트 주동의 향과 배치 등을 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파트에서 각 동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배치하는지는 생명으로 치자면 기초대사량을 결정하는 일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에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구현하기 위한 첫 번째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아파트의 주동 배치를 끝낸 다음 생각해야 할 일은 건축물 내부에서 에너지를 들여 생산된 열을 잘 보존하고 바깥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잘 붙잡아 두는 것이다. 예전 추운 겨울날 출입문에 문풍지를 바르고 창문에 뽁뽁이를 붙여 외부 냉기를 막고 내부 온기가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보호한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19세기 말 노르웨이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북극을 탐험할 때 자신의 탐사선에서 자연채광을 최대화하고, 고단열 외피를 두른 후, 바람이 새지 않도록 기밀화 하고 삼중유리를 사용해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만들었데, 덕분에 난센의 탐사선은 북극을 탐험할 때 난방을 하지 않고도 22℃의 기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날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 기술은 난센의 탐사선과 큰 차이는 없다. 우선 열이 빠져나가기 쉬운 창과 벽체, 지붕의 단열을 강화한다. 외벽에는 두꺼운 단열재를 사용하고, 단열 성능이 취약한 창은 이중 창호로 만들거나 아르곤 가스를 유리창 사이에 주입해 단열 성능을 대폭 향상시킨다. 창과 문, 벽체 사이 등 틈새를 통해 열이 세지 않기 위해서는 기밀성을 향상한 시공과 빈틈없는 마감이 중요하다.
의무화를 위해 경제적인 기술 개발 필요
제로에너지건축물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건축물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거나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액티브(Active) 전략도 필요하다. 엑티브 전략은 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설비나 기기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건축물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별난방 아파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고효율 보일러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수증기의 열을 재사용하는 콘덴싱 열교환과 폐열 회수 등을 이용해 보일러의 에너지효율을 높인 기술이다. LED 조명은 전력이 일반 조명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수명은 무려 15배나 길어 에너지 절약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아파트단지 전체에 LED 조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아파트에서 쾌적한 실내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주기적인 환기가 필요한데, 환기할 때 공기를 바꿔야하기 때문에 열 손실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환기 때 실내로 들어오는 외부공기와 바깥으로 나가는 실내공기가 갖고 있는 열에너지를 서로 교환하는 전열교환 환기장치를 장착하면 열 손실을 줄여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는 데 필요한 건물에너지통합관리시스템(BEMS, Building Energy Management System)은 건축물에서 사용 중인 에너지량은 실시간으로 계측하고, 다양한 센서를 통해 건물의 실내외 환경과 각 설비의 효율 및 에너지 사용량을 분석한 후 쾌적한 실내환경을 조성하도록 최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환기장치와 냉난방의 효율적인 운영을 도와주기 때문에 에너지 사용량을 적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기술인데 태양광과 태양열, 지열, 풍력발전, 연료전지 등을 많이 사용한다. 이 중 선두주자는 단연 태양광으로, 햇빛에서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아파트 옥상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다. 태양광 패널을 통해 생산한 전력은 엘리베이터나 주차장 조명 등 공동시설에 사용된다.
최근 제로에너지건축물의 의무화로 인해 크게 주목받고 있는 연료전지는 수소를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태양광 발전과 달리 날씨나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지만, 아직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아파트를 제로에너지 건축물로 만들면 폭염이나 한파 속에서도 에너지 비용을 거의 내지 않고 쾌적한 실내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실현을 통해 온실가스 발생을 줄여 환경보호에 이바지하는 동시에 각종 에너지 비용 부담은 줄어드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 완전한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만들려면 건축비가 40% 이상 상승하기 때문에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세대당 연간 에너지 비용을 대략 150만원이라고 가정한 후 15년 동안 사용하는 금액인 약 2,500만원을 제로에너지 초기 설지비용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향후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를 끌어올리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적이면서 효율적인 제로에너지기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 김홍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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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3-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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