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량이 거의 없는 뉴트리노(중성미자 neutrino)는 매 초 마다 무려 수조(兆) 개씩 사람의 몸을 통과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중성미자를 콕 집어내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먼 우주에서 날아온 희귀한 고에너지 중성미자 입자는 더욱더 집어내기가 힘들다.
이 우주 중성미자는 매년 약 12개 정도가 발견되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우주 중성미자 중에서 근원을 파악한 것은 단 한 개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남극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아이스큐브 중성미자 관측소'가 탐지한 중성미자의 출생지가 확인됐다. 길이 1Km에 달하는 아이스큐브 관측소가 검출한 중성미자의 고향은 7억 5천만 광년 떨어진 돌고래자리(Delphinus constellation)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이다.
독일 도이체 엘렉트로넨-싱크로트론(Deutsches Elektronen-Synchrotron DESY) 연구팀은 별을 집어삼킨 초거대 블랙홀 잔해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발견했다고 네이처 아스트로노미(Nature Astronomy) 저널에 발표했다.
이번에 발견된 우주 중성미자는 ‘조석 파괴 사건’(Tidal disruption event, TDE) 폭발을 통해서 태어났다. 조석파괴사건은 초거대 블랙홀이 강력한 중력의 힘으로 가까이 있는 별을 둘로 쪼개 집어삼키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같은 과정에서 중성미자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이번 연구로 밝혀졌다. 이는 천체의 충돌이 거대한 우주 입자 가속기 역할도 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남극 아이스큐브 관측소에서 처음 감지
이번 발견이 관심을 끄는 것은 이 희귀한 '조석 파괴 사건'이 고에너지 중성미자와 우주선의 주요 원천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뿐 아니라, 우주선의 기원도 지금까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중성미자를 감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중성미자가 어떤 것과 부딪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중성미자는 물질과 자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사람이나 벽도 그냥 통과해 버린다. 오죽하면 중성미자의 별명이 고스트 파티클, 유령입자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중성미자는 원자핵과 정면으로 충돌해서 파편 입자들이 쏟아지게 한다. 이 충돌로 중성미자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동시에 섬광을 일으킨다.
이 찰나의 충돌 순간을 탐지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장치가 필요하다. 아이스큐브 관측소는 5,000개 이상의 광자 탐지기를 줄지어 연결해서 남극 얼음 1㎦에 꽂아놓고 물고기를 기다리듯 중성미자를 낚으려 한다.
이를 통해 각 광자 탐지기에 중성미자가 검출되면, 과학자들은 도착 시간과 밝기를 근거로 계산해서 중성미자의 고향이 가까운 곳인지, 멀고 먼 우주 공간 깊은 곳인지 계산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10월 1일, 아이스큐브의 광자 탐지기에서 심우주에서 온 것 같은 중성미자 후보가 나타났다. 아이스큐브 연구원들은 중성미자가 온 우주 방향을 스캔할 수 있도록 천문학자들에게 경보를 울렸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천문 조사 장비인 ZTF(Zwicky Transient Facility)가 재빨리 중성미자의 고향으로 돌고래자리에 있는 초거대 블랙홀을 지목했다. 초거대 블랙홀이 주변에 있는 별을 산산조각내서 삼키는 조석 파괴 사건(TDE)가 발생하면서 중성미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100 테트라전자볼트 이상의 강력한 에너지로 남극 얼음에 충돌했다"고 공동 저자인 안나 프랑코비악(Anna Franckowiak)은 말한다. 이는 유럽 입자물리학 연구소(CERN)의 세계 최강의 입자가속기인 LHC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입자 에너지의 최소 10배에 해당한다.
논문의 주저자인 독일 DESY 입자물리학 실험실의 로버스 스타인(Robert Stein)은 "TDE가 중성미자의 근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즉시 '와우!'라고 말했다"고 사이언스매거진은 보도했다.
TDE 폭발로 뉴트리노 발생
물론 TDE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이 100번도 안 된다. 별이 초거대 블랙홀 근처를 공전할 때, 강렬한 중력이 별의 모양을 왜곡시킨다. 만약 별이 너무 가까이 초거대 블랙홀에 접근하면, 초거대 블랙홀의 중력이 별을 쪼개서 별의 절반은 블랙홀 원반 안으로 끌려 들어간다. 나머지는 긴 꼬리를 남기면서 블랙홀 바깥으로 흘러나간다. 이 무시무시한 우주쇼는 몇 달 동안 지속된다.
이번에 발견한 중성미자의 고향인 돌고래자리 TDE가 천문학자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9년 4월 9일 ZTF가 발견해서 AT2019dsg로 명명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150일 후에도 여전히 중성미자를 가득 담아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타인은 "중앙 엔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원을 공급하면서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천체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이 이 중성미자의 분출에 어떻게 동력을 공급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주 중성미자가 TDE에서 나온 것이 추적되면서, 우주 중성미자를 설명하는 주요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다.
AT2019dsg를 처음 발견한 수비 게자리(Suvi Gezari)는 입자 물리학자들이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중성미자를 만드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우주에서도 중성미자가 생성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게자리는 "TDE가 중성미자 생산의 유력한 현장으로 부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천체물리학자들에게 또 다른 수수께끼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고 에너지 우주선의 근원, 우주를 돌면서 매일 지구 대기에 내리 쬐는 양성자 입자 등의 근원일 수 있다. 중성미자를 만드는 것은 양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야 하기 때문에 TDE가 동시에 우주선을 생산할 수 있다.
- 심재율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1-03-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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