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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한소정 객원기자
2020-12-03

무화과나무와 말벌간 공진화 흔적을 찾다 유전체를 통해 열매 크기와 말벌종 크기간 상관관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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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속 나무들의 다양한 나뭇잎들. 왼쪽 위 F. hispida, 왼쪽 아래 F. auriculata, 오른쪽 F. semicordata ©위키커먼스

공진화(coevolution)는 한 생물 집단이 진화하면서 상호작용하는 다른 생물 집단도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포식자와 먹이가 되는 생물이나, 숙주와 기생 생물, 공생 관계에 있는 생물들과 같이 다양한 관계에 있는 동물과 식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어 형질 변화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기후 변화나 지각 변화와 같은 환경 요소에 의해 같은 조건에서 사는 서로 다른 종이 비슷하게 진화하는 것과 구별된다. 모든 생물종은 촘촘한 생태계 사슬에 얽혀있는 만큼 모든 진화는 공진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포식자인 치타와 그의 먹잇감이 되는 가젤이 군비 경쟁하듯이 먹기 위해 또는살기 위해 빨리 달리기를 하게 된 것이나, 꽃과 수분매개체가 되는 곤충들 간에 그 크기나 모양에 변화를 주고받는 것 등이 공진화의 예다.

마다가스카르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 왼쪽)와 수분매개체 나방 크산토판 모르가니(Xanthopan morganii, 오른쪽) ©위키커먼스

찰스 다윈이 전 세계 식물 표본을 관찰하던 중 27~43cm 길이의 꿀주머니를 가진 마다가스카르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를 보게 되었는데, 놀랍게 긴 통로 끝에 꿀이 있는 형태를 보고 이 꽃의 수분매개체 곤충은 주둥이가 적어도 30cm 길이일 것이라고 추측한 일이 있다. 당시 곤충학자들은 그런 모양의 곤충이 있기 어렵다고 회의적인 반응이었지만, 40여 년쯤 뒤에 다윈의 예상대로 30cm 길이의 주둥이를 가진 크산토판 모르가니(Xanthopan morganii)라는 나방이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공진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다윈의 통찰력이었던 것이다.

공진화는 무화과나무속(Ficus)의 나무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열대 및 아열대 기후에 분포해 있는 이 나무들은 종간 다양성이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그 수분매개체인 말벌과는 무려 7500만 년의 긴 역사를 통해 공진화해왔는데, 이 다양한 무화과나무속의 나무들이 각각 고유의 말벌종과 형태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 함께 적응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분포 지역이 겹치는 계통이 서로 가까운 무화과나무속 나무 종들 간에 서로 혼혈이 생기지 않는, 이른바 ‘생식적 격리(reproductive isolation)’가 일어나는 것도 서로 다른 수분 매개체 말벌종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 '셀'지에 발표된 논문은, 이 무화과나무속 나무들 일부와 그 수분매개체 말벌종들의 유전체 서열 분석을 통해 이들의 공진화의 흔적을 유전체 상에서 찾아냈다. 여러 유전자들에서 돌연변이를 제거해오거나 또는 특정 돌연변이가 선택되는 자연선택의 흔적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었다.

무화과나무속의 아속(subgenus) 시코모루스(Sycomorus)에 속하는 14종의 나무들과 이들의 종특이적 수분매개체 말벌종들의 유전체를 비교 분석한 것인데, 먼저 이 나무들과 그 수분매개체 말벌종 사이에 표현형의 공진화를 확인했다.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나무 열매의 크기와 그 수분 매개체 말벌종의 몸 크기 사이에 상관관계로 특정해 테스트했다.

연구진은 무화과나무속 나무 피쿠스 히스피다(Ficus hispida)에서 열매 크기에 관련된 유전자 37개를 취해 이중 18.9퍼센트 (37개 중 7개의 유전자)에 무작위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정화 선택(purifying selection)의 시그니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반면 이 수종의 수분매개체인 말벌종에게서는 22퍼센트 (62개 중 14개의 유전자)의 히포 신호전달 경로(Hippo signaling pathway) 관련 유전자에 새로운 유전변이의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히포 신호전달 경로는 동물의 신체기관의 크기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피쿠스 히스피다의 열매 크기와 말벌 몸의 크기가 자연선택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구에서 시험한 다른 가설은 무화과나무속 나무 종마다 종특이적 말벌종과 상호작용하는 데에는 나무종마다 특유의 꽃향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에서는 무화과나무속 나무종과 말벌종 각 쌍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필요한 종특이적 신호전달 물질을 찾기 위해 피쿠스 히스피다(F. hispida)와 케라토솔렌 솜시(C. solmsi), 피쿠스 아우리쿨라타(F. auriculata)와 케라토솔렌 에마르기나투스(C. emarginatus),  피쿠스 세미코르다타(F. semicordata)와 케라토솔렌 그라벨비(C. gravelyi) 등 나무종과 말벌종 3개 쌍을  대상으로, 식물과 수분 매개체 곤충의 상호작용에 관련된 테르피노이드 대사와 베제노이드 관련 유전자들에 돌연변이를 제거하는 정화 선택 시그니처가 있다는 것을 밝혔다.

유사한 기능을 하는 메발론산염(mevalonate)과 시키메이트(shikimate) 경로 관련 유전자들에서는 새로운 유전변이의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를 감지했다. 모두 자연선택의 유전체 상의 증거로 해석된다.

한편, 무화과나무속 나무종 피쿠스 히스피다의 수분매개체 말벌인 케라토솔렌 솜시에서 꽃향기와 같은 화학 자극을 감지하는데 관여하는 77개 유전자도 분석했는데, 이중 여러 유전자에서 유전적 적응을 암시하는 시그니처를 감지했다.

즉, 무화나무속 나무종과 수분 매개체가 되는 종특이적 말벌종 간에 서로를 꽃향기로 유인하고 찾아가고 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적 변이들이 자연선택되었다는 유전체 상의 증거를 제시하는 결과였다.

오랜 시간 긴밀한 공진화의 역사를 함께 해온 무화과나무속 나무들과 말벌들의 정교한 적응의 과정이 유전체에 남은 흔적들로 확인된 것이다.

한소정 객원기자
sojungapril8@gmail.com
저작권자 2020-1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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