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설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최초로 ‘중력 실험’을 행했다고 한다. 크기가 다른 쇠구슬 두 개를 떨어뜨렸더니 같은 가속도로 낙하했다는 이야기다. 이와 비슷한 실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 미국 물리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 (Physical Review Letters)’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물리학자들이 현대판 ‘피사의 사탑’ 실험을 수행했다는 내용이다. 단, 이번에 떨어뜨린 물체는 쇠구슬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다.
실험에서는 서로 다른 질량의 루비듐 동위원소를 자유 낙하시켜 같은 가속도를 내는지 측정했다. 중성자수가 다른 두 개의 루비듐 원소를 약 8.6m 높이의 진공관 안에서 발사한 것이다. 그 결과, 두 원자는 약 1조 분의 1 정확도로 동일한 가속도를 기록했다.
연구팀은 예전에도 비슷한 원자 낙하 실험이 실시된 바 있지만, 이번 실험의 정밀도는 그보다 약 1000배 더 높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갈릴레이의 중력 실험이 원자 단위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쪽이 더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 후로 오랜 기간 아무도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았다.
여기에 반론이 제기된 것은 6세기가 되어서다. 비잔틴 학자였던 존 필로포누스(John Philoponus)는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같은 높이에서 낙하시키면 동시에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당시에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다.
중력 실험을 처음 행한 사람은 네덜란드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시몬 스테빈(Simon Stevin)이다. 1586년 스테빈은 질량 차이가 10배인 납 구슬 두 개를 9미터 높이의 탑에서 떨어뜨렸고, 구슬들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는 기록을 남겼다.
얼마 후 갈릴레이가 다양한 재질의 포탄과 총알을 경사로에서 굴리는 실험을 했다. 이것이 최초의 체계적인 중력 실험 기록이지만, 실험 장소가 피사의 사탑이라고는 전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 실험은 후대에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등가원리, 아인슈타인이 밝혀낸 중력의 비밀
갈릴레이에 이어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여 중력의 신비를 알아내는 듯 보였다. 그런데 뉴턴의 이론에서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가속 운동을 하려면 반드시 힘이 필요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중력이라는 가상의 힘을 제안해야만 했다.
오랜 난제를 해결한 이는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기존 고전역학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중력의 실체를 한층 더 자세히 밝혔다.
만약 중력이 단순한 에너지라면 다른 물체와 접촉해야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물체와 접촉하지 않아도 중력은 작용한다. 아인슈타인은 그 이유를 공간이 휘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중력은 힘이 아니라, 질량이 있는 물체에 의해 시공간이 휘어져서 발생하는 현상인 셈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등가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중력과 가속운동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현상이며, 중력 가속도는 물체의 질량이나 성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1971년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가 월면에서 한 손에 1.32kg 무게의 망치를, 다른 한 손에 0.03kg 짜리 깃털을 들고 동시에 떨어뜨렸다.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이 장면은 갈릴레이의 중력 실험과 마찬가지로 등가원리를 입증하는 실험이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
지금까지 등가원리는 모든 실험에서 입증되었다. 그러나 물리학의 한 분야인 양자역학이 때론 일반상대성이론에 위배되는 경향을 보여서 원자의 세계에서도 계속 유지될지는 미지수였다.
연구를 주도한 마크 카세비치(Mark Kasevich) 스탠퍼드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한 실험으로 원자 단위에서 등가원리가 적용되는지 확인하려 했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양자역학을 이용한 원자 간섭 측정법으로 작은 입자들을 관측해야만 했다. 원자들은 이동하면서 입자가 하나의 확실한 위치를 갖지 못하는 양자 중첩 상태에 놓였고, 각 원자는 최대 7cm까지 분리된 두 개의 위치에 중첩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원자의 두 위치가 다시 합쳐져서야 상대적인 가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세비치 연구팀의 실험 결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는 등가원리가 결국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수행된 실험은 양자역학으로 인한 작은 차이를 발견할 만큼 정밀하지 못했다는 추측이다. 앞으로 우주 공간에서 원자 단위의 등가원리 실험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 심창섭 객원기자
- chsshim@naver.com
- 저작권자 2020-11-05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