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처럼 점성이 높은 액체가 물처럼 점성이 낮은 액체보다 더 천천히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꿀이 거북이라면 물은 토끼인 셈이다. 하지만 꿀이 물보다 더 빨리 흐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치 거북이와 토끼의 달리기 경주에서 느림보인 거북이가 이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꿀과 물의 경주에서는 물이 토끼처럼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는데도 꿀에게 졌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 같은 놀라운 일이 일어난 곳은 핀란드 알토대학 응용물리학과의 연구진이 만든 작은 튜브 안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0월 16일 자에 게재된 논문에 의하면, 화학적으로 특수 코팅된 작은 튜브에서는 물보다 1000배 이상 점성이 높은 액체가 10배 더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액체가 파이프를 통해 흐르는 속도는 정유공장과 같은 산업 프로세스에서부터 인간의 심장 같은 생물학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응용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파이프를 통해 유체가 더 빨리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압력을 증가시키면 된다.
그러나 이 기술에는 한계가 있다. 압력을 무작정 높일 경우 파이프가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약품 등의 복합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얇고 좁은 파이프에서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점성 1000배 높은 글리세롤이 10배 더 빨리 흘러내려
알토대학 연구진은 압력을 증가시키지 않고도 액체가 좁은 관을 통해 흐르는 속도를 높일 수 있는지 연구하던 중 액체를 밀어내는 화합물로 파이프 내부를 코팅하면 점성이 낮은 액체보다 점성이 높은 액체가 더 빨리 흐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로빈 라스(Robin Ras) 교수는 “물을 밀어내는 성질을 지닌 초소수성 표면의 경우 코팅 내부에 공기를 가두는 작은 돌기들로 구성되어 있어 표면의 액체 방울이 마치 공기쿠션 위에 있는 것처럼 놓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소수성 코팅 자체는 점성이 더 높은 액체의 흐름을 빠르게 하지 않는다. 초소수성 코팅 표면에 꿀 한 방울과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다음 중력이 액체 방울을 움직이도록 표면을 기울이면 당연히 점성이 낮은 물이 더 빨리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 같은 액체 방울을 미세 유체공학에서 사용되는 아주 좁은 튜브에 떨어뜨리게 되면 상황은 급격히 변한다. 이 좁은 튜브 안의 초소수성 코팅은 튜브 안쪽의 벽과 액체 방울의 바깥쪽 사이에 공극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마자 버코박(Maja Vockovac) 박사는 “액체 방울이 밀폐된 초소수성 미세관에 갇혀 있을 때 점성이 더 높은 액체의 경우 방울 주위의 공극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이처럼 더 커진 공극은 흐를 때 중력으로 인해 점성이 낮은 액체보다 더 빨리 튜브를 통해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액체 움직임 예측하는 유체역학 모델 개발
그 효과는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물보다 점성이 1000배 더 높은 글리세롤 방울을 떨어뜨린 결과, 물방울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튜브를 통과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글리세롤이란 유지(油脂)를 가수분해시키면 지방산과 함께 생성되는 액체로서 의약품, 폭약, 화장품 등의 원료나 기계류의 윤활제로 사용된다.
연구진은 이 방울들이 튜브에서 이동하는 모습을 촬영해 액체가 튜브를 통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를 추적했다. 그 결과 점성이 높은 액체의 경우 방울 내부의 액체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반면, 점성이 낮은 액체에서는 빠른 혼합 동작이 감지되었다.
특히 점성이 낮은 액체들의 경우 방울을 둘러싼 공기쿠션 속으로 조금씩 침투해 그 주변의 공극을 더 얇게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튜브 속에 있는 점성이 낮은 액체 방울들은 더 커진 공극을 가진 점성이 높은 액체 방울만큼 빠르게 이동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낮은 점도의 액체 방울을 밀어내는 공기가 줄어들게 되면 점성이 더 강한 액체 방울보다 튜브 속에서 더 느린 속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진은 다양한 방식으로 코팅된 초소수성 튜브에서 액체 방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예측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유체역학 모델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자신들이 개발한 모델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할 경우 앞으로 액체를 소량으로 정밀하게 제어하거나 의약품과 같은 복잡한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는 미세 유체공학 기술을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0-10-19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