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온 삶은 뇌에 저장되고, 이를 기억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기억은 곧 내가 살아온 삶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기억에 대한 인간의 궁금증과 동경은 컸고, 기억에 관한 연구는 현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정세포에 기억을 담는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겪은 경험은 이후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때 이후 행동의 변화는 우리의 행동을 명령하는 뇌에서 일어나고, 그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 속에 기억이 저장된다.
아래 그림은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하던 뇌 구조 그림이다. 사실 우리의 뇌는 이런 식으로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다. ‘참외’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따로 있고, ‘사과’를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 기억을 담고 있는 신경세포는 뇌의 전반에 걸쳐있다.
예를 들어 ‘참외’를 떠올리면 반응하는 신경세포들은 뇌 전반에 산재하고, 그 세포 속에 참외에 대한 기억이 존재한다. 즉, 기억은 그 기억을 떠올릴 때 반응하는 신경세포 속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억을 지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참외’에 반응하는 세포들을 모두 없애면 아마 우리 뇌에서 참외에 대한 기억은 없어질 것이다. 반대로 참외에 반응하는 세포들을 억지로 활성화시킨다면 참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포’는 다시 말해 특정 기억을 담은 세포들만을 활성화하였을 때는 기억이 나지 않게 되고, 반대로 활성화하였을 때는 기억이 떠오르게 되는 특성을 가진 세포들일 것이다.
공포 조건화를 통해 기억 연구 진행
기억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동물로 어떤 실험을 한 후에 기억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으로 실험을 하기엔 윤리적, 기술적 한계로 대개 사람과 같은 포유류에 속하는 쥐로 실험을 한다.
쥐는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쥐에게 사과나 참외를 떠올리게 하고 물어보는 방법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개 쓰는 방식이 ‘공포 조건화(Fear Conditioning)’ 방식이다.
'공포 조건화'를 설명하기 전에 '조건화(Conditioning)'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파블로프의 개’를 예시로 들 수 있다. 매번 종을 치고 밥을 주면 개는 나중에 종소리만 들어도 침을 흘리게 된다. 이 조건화를 이용하면 굳이 동물에게 어떤 기억이 떠오르냐고 묻지 않아도 종소리를 듣고 침을 흘리는 등의 생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통해 기억이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쥐에서는 ‘공포 조건화’를 통해 쥐가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쥐는 공포심을 느끼면 몸이 얼어붙어 몸을 움직이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쥐에게 소리 등의 신호를 주고 발에 전기 충격을 가해주면 신호에 대한 공포 기억이 생성되어 나중엔 그 신호만 들어도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전기 충격을 세게 가할수록 몸이 얼어붙어 있는 시간은 늘어난다. 이런 쥐의 특성을 이용하여 쥐가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이를 기억 연구에 이용한다.
기억을 담는 신경세포를 찾다
뇌에 기억이 저장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신경세포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이 진정으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세포를 활성화시켰을 땐 기억이 떠오르고, 반대로 그 세포들을 억제하면 기억이 나야 하는 상황에서도 기억이 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세포들을 표지(labeling)하고, 그 세포들을 활성화 또는 억제하는 등의 조작을 하고 실제 행동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확인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첫 발걸음은 2007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박사 후 과정으로 있던 한진희 박사(현재는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는 세포에 CREB이라는 단백질을 과발현시키면 기억이 그 세포에 저장된다는 가능성을 보여 이를 사이언스지(Science)에 발표했다. 그 후 2009년에 그는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세포들을 죽이면 실제로 기억이 사라지는지 확인하는 실험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발표하였다.
그가 2009년에 했던 실험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는 먼저 특정 세포에 CREB 단백질과, 세포에 독성이 있는 DT라는 물질의 수용체인 DT수용체를 함께 발현시켰다. 그리고 쥐에게 청각 공포 조건화를 통해 쥐에게 특정 소리에 대한 공포 기억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를 죽이면 기억이 사라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DT라는 세포에 독성이 있는 물질을 넣어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는 세포만을 죽였다(이때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만 DT수용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만 죽게 된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쥐는 더이상 소리에 의한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같은 쥐로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공포 반응을 보았을 때에는 정상적으로 공포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DT로 세포들을 죽여서 공포 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이 기억력 자체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을 확인했다.
정리하여 말하자면, 특정 소리에 대한 공포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을 없앴더니 실제로 소리에 대한 공포 반응이 나오지 않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실제로 기억을 담은 세포를 없애면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빛으로 신경세포 활성 조절 가능해져
이후에는 광유전학의 발달로 빛으로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빛에 반응하는 수용체를 세포에 발현시키고 그 세포에 빛을 쬐어주면 발현시키는 수용체의 종류에 따라 세포가 활성화되기도 하고 억제되기도 한다. 이 광유전학의 발달로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의 활성을 조절하여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을 더욱 자명하게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과학자들이 진행한 실험에서는 유전적 기법을 이용하여 공포 기억을 가진 세포들을 표지하고, 그 세포들을 빛으로 활성화시켰더니 아무런 신호가 없는, 아무런 반응이 없어야 하는 환경에서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 반응을 보였고, 반대로 그 세포들을 빛으로 억제했더니, 신호가 있는, 원래는 공포 반응이 나와야 하는 상황에서도 공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통해 기억을 담은 세포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억을 담은 세포를 정의하는 것이 가능해진 후로는 기억을 담고 있는 세포들 간의 상호작용, 치매 등의 뇌질환이 있을 때의 기억력의 변화, 기억이 저장되는 메커니즘 등의 연구가 현재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 Neuronal Competition and Selection During Memory Formation, Jin-Hee Han et al., Science, 2007.
- Selective Erasure of a Fear Memory, Jin-Hee Han et al., Science, 2009.
- Optogenetics stimulation of a hippocampal engram activates fear memory recall, Xu Liu et al., Nature, 2012.
- Finding the engram, Sheena A. Josselyn et al., Nature review, 2015.
- 신치홍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0-08-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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