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의 한 호수에서 길이 2.4m, 무게 108㎏에 이르는 거대한 물고기가 죽은 채로 발견돼 화제가 됐다. 조사 결과 이 괴생명체의 정체는 남미에 서식하는 ‘아라파이마(Arapaima)’라는 물고기로 확인됐다.
‘아마존의 괴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아라파이마는 최대 몸길이 3m, 무게 200㎏에 이르는 세계 최대 담수어다. 아라파이마는 계보가 2억 500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어종으로서, 살아 있는 화석이다.
입 모양이 마치 어뢰처럼 날카롭게 생겼지만 매우 유순한 성격에다 천천히 움직인다. 아라파이마는 맛도 좋아 ‘아마존 스테이크’로 불리며, 거대한 몸집 덕분에 한 마리만 잡아도 작은 마을 하나가 잔치를 벌이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아가미 호흡뿐 아니라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공기를 마시는 폐 호흡에 있다. 때문에 가뭄이 들거나 산소가 적은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아라파이마의 진짜 생존 비결은 마치 방탄복처럼 단단한 ‘비늘’이다.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피라니아 떼가 덤벼들어도 이 방탄복은 결코 찢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쌀알만큼 굵은 아라파이마의 비늘을 이용해 원주민들은 구둣주걱이나 빗, 가방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한다.
미국 공군에서는 치명적인 피라니아 떼가 들끓는 강에서도 아라파이마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단단한 외부층과 부드러운 내부층의 이중 구조
그런데 최근 UC 버클리와 UC 샌디에이고 등의 공동연구팀은 아라파이마의 비늘이 왜 그리 단단한지 알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아라파이마의 비늘은 단단하게 광물화된 외부층과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내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단한 외부층은 뼈와 마찬가지로 콜라겐과 미네랄로 이루어져 있는데, 훨씬 더 광택이 난다. 연구진은 그것과 결합된 콜라겐 섬유질의 내부층을 전자현미경으로 살펴본 결과, 섬유질이 나선형 계단 구조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각 층이 마치 비틀린 합판 구조처럼 위아래로 약간 꼬여 있다고 표현했다. 때문에 피라니아 같은 포식자가 단단한 외부층을 공격할 경우 섬유질이 서로 다른 각도를 따라 압력을 받아 균열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실제로 단단한 층과 부드러운 층이 결합되어 있는 아라파이마의 비늘은 방탄복의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방탄복은 접착제를 사용해 두 개의 층을 결합시킨 반면, 아라파이마의 비늘은 원자적인 수준에서 묶여 있다.
즉, 분자적 기초 위에서 형성되어 층 사이에 완만한 기울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따라서 아라파이마의 비늘은 방탄복과는 달리 두 개의 층이 서로 떨어지거나 부서져 재료가 약해질 염려가 없다.
연구진은 아라파이마의 비늘을 48시간 동안 물에 담근 다음 중심점에 압력을 가하면서 가장자리를 천천히 떼어내는 방식으로 조그만 균열이 구조 전체로 전파될 수 있는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이처럼 비틀린 구조가 균열을 국소화하여 전체에 손상이 퍼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유연한 유기물질 중 하나
이 같은 구조는 두 가지 장점을 지닌다. 포식자의 이빨에 의한 침투를 막을 뿐만 아니라 두꺼운 비늘을 뒤집어쓰고 있는 아라파이마를 유연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게 한다는 것.
다른 물고기들도 아라파이마처럼 콜라겐을 사용하지만 아라파이마 비늘의 콜라겐층은 다른 어종보다 매우 두껍다. 연구진은 이 두꺼운 두께가 아라파이마의 방어 비결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만약 아라파이마의 비늘이 단단한 외부층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유리처럼 외부 충격에 의해 부서져버릴 수 있다. 연구진은 아라파이마의 비늘을 가장 유연한 유기물질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매터(Matter)’에 게재됐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UC 버클리의 재료과학자 로버트 리치(Robert Ritchie) 박사는 “만약 인간이 아라파이마 비늘 속의 콜라겐 층처럼 유연한 계층 구조를 개발할 수 있다면 더욱 효율적이면서도 단단한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여름 남미의 반대편에 있는 보르네오섬에서 발견된 아라파이마는 사육업자가 수입해 기르다가 호수에 풀어놓은 개체가 수명을 다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낯선 환경의 이국에서도 아마파이마의 비늘만큼은 멀쩡했던 것이다.
방탄복은 이동성과 유연성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착용자를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과연 고대에서부터 진화해 온 괴물 물고기의 비늘이 새로운 개념의 방탄복을 탄생시킬 수 있을까.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9-10-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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