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長壽)는 인간의 오랜 꿈 가운데 하나다. 어찌 보면 수많은 생명과학분야 연구들은 인간이 질병 없이 불로장생하는 방법을 찾는데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칼로리를 줄이는 소식(小食)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 하버드의대 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치매에서부터 간질에 이르기까지 여러 뇌 질환에 관련된 뇌의 신경 활동이 인간의 노화와 수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6일 자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인간의 뇌와 생쥐 및 선충 등 폭넓은 연구에 바탕을 둔 것으로, 뇌의 과도한 활동은 수명을 짧게 하고, 반면 그런 과잉 활동(overactivity)을 억제하면 수명이 연장된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발견은 처음으로 신경계의 활동이 인간의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이전의 연구들에서도 신경계의 일부가 동물의 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제시했었으나, 특히 인간의 노화에서 신경 활동의 역할은 불명확하게 남아있었다.
논문 시니어 저자인 브루스 얭크너(Bruce Yankner) 교수(유전학, 노화생물학센터 공동원장)는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점은 신경회로 활동 상태와 같은 일시적인 어떤 것이 생리학과 수명에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관련 동영상]
“알츠하이머병 치료 약 설계에도 도움”
신경 자극 상태(neural excitation)는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일련의 분자적 이벤트를 따라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인슐린 및 인슐린-유사 성장인자(IGF) 신호전달 경로가 그것이다.
연구팀은 신호가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이 신호전달 캐스케이드의 핵심을 레스트(REST)라 불리는 단백질로 보고 있다. 이 단백질은 얭크너 교수팀이 이전에 치매나 다른 스트레스들로부터 뇌의 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신경 활동은 뇌에서 전류가 흘러 지속적으로 깜박이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연구팀은 뇌 신경의 과도한 활동이나 자극 상태가 근육 경련에서부터 기분이나 생각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인의 사고나 성격, 행동이 장수에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얭크너 교수는 “이런 발견들이 그 같은 고차원의 인간 두뇌 기능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미래의 흥미로운 연구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알츠하이머병과 양극성 장애 같은 신경 과잉활동 관련 질병들에 대한 새 치료법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즉, REST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이나 명상과 같은 특정 행동이 신경 활동을 조절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얭크너 교수는 신경 활동에서 인간적 편차는 유전적 및 환경적 원인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앞으로 치료를 위한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길은 REST로 통한다
얭크너 교수팀은 60세부터 100세 이상까지의 사망자 수백 명으로부터 기증받은 뇌 조직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 즉 다양한 유전자들이 켜지고 꺼지는 정도를 분석하는 것으로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관련 정보는 노인들에 대한 별도의 세 가지 연구를 통해 수집됐다. 이번 연구의 분석 대상자들은 치매가 없이 인지적으로 온전했다.
얭크너 교수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바로 더 늙은 층과 더 젊은 층 사이에 놀라운 차이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즉, 85세 넘어서까지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은 60~80세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보다 신경 자극 상태와 관련된 유전자 발현이 낮았다는 것.
여기에서 떠오르는 의문은 그 같은 사실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으며, 원인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다. 신경 자극 상태에서의 차이가 단순히 수명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인들과 함께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신경 자극 상태의 수준이 장수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연구팀은 모델 유기체인 예쁜꼬마선충(C.elegans)에서 유전자, 세포 및 분자생물학 시험과 유전자 변형 마우스 분석 등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고, 추가로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의 뇌 조직을 분석했다.
이런 일련의 실험 결과 신경 자극 상태의 변화는 실제로 수명에 영향을 미치며, 분자 수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밝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징후는 REST 단백질을 가리켰다.
유전자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진 REST는 신경 자극 상태도 억제한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동물 모델에서 REST나 이와 동등한 물질을 차단하면 신경 활동이 증가하고 조기 사망에 이르는 반면, REST를 증가시키면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또 100세 이상 장수한 사람들은 70대나 80대에 죽은 사람들보다 뇌세포 핵에 상당히 많은 REST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다.
논문 공저자로 예쁜꼬마선충 연구에 참여한 모니카 콜라야코보(Monica Colaiácovo) 유전학 교수는 “이런 모든 증거들이 하나로 수렴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칼로리 제한과 같은 경로 활성화시켜
연구팀은 REST가 선충부터 포유류에서까지 이온 채널과 신경전달물질 수용체 및 시냅스의 구조적 구성 요소 같은 신경 자극 상태에 중심적으로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낮은 신경 자극 상태는 차례로 전사조절인자(forkhead transcription factors)로 알려진 단백질들을 활성화시킨다. 이 단백질들은 많은 동물에서 인슐린/IGF 신호전달을 통해 ‘장수 경로(longevity pathway)’를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이 칼로리 제한에 의해 활성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경로다.
장수에서 REST가 하는 역할을 발견함으로써 REST가 신경 변성을 막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점이 밝혀졌고, 이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약물 개발 동기도 부여하게 되었다.
이런 치료법들이 신경 자극 상태를 감소시키고 건강한 노화와 수명 연장에 기여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테스트가 필요하지만, 이 개념은 일부 연구자들을 사로잡았다.
콜라야코보 교수는 “REST를 활성화할 수 있다면 자극 상태의 신경 활동을 감소시키고 인간의 노화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더없이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이번 연구가 대규모 노인 연구집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얭크너 교수는 “이번 연구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등록돼 노화 인구를 유전자 하위그룹으로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이 정보는 매우 귀중하며, 미래의 인간 유전학을 지원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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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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