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이 쏟아져 내리고, 번개가 치며 웅덩이마다 뜨거운 지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선사시대 지구는 생명체가 살기에는 적당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화학적 혼돈 속의 지구 어디에선가 생명체가 만들어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실험실에서 초기 지구의 모형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해 왔다. 그 모형 속에서 생명의 필수 구성요소를 창출한 원초적 기본성분을 찾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는 흥분이나 설렘 이상의 것을 가져다 준다. 지구가 어떻게 최초의 세포를 만들어냈는지를 알게 되면 외계 생명체 탐색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생명이 저절로 촉발하는데 필요한 구성성분과 환경을 확인하면, 우리는 우주 도처의 여러 행성들에서 비슷한 조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명 기원 연구, RNA에 집중돼
오늘날 많은 생명 기원(origin-of-life) 연구들은 특정 구성요소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RNA다.
일부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한층 단순한 분자로부터 형성됐다가 나중에 RNA를 진화시켰다고 믿는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RNA가 먼저 생겼다는 증거를 찾고 있다.
복잡하지만 다재다능한 분자인 RNA는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며 단백질 합성을 돕는다. 이런 기능으로 미루어 RNA가 최초 세포의 중추가 될 수 있는 후보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RNA 세계 가설(RNA World Hypothesis)’을 검증하기 위해 두 가지 도전과 마주한다.
첫째는 RNA를 이루는 아데닌과 구아닌, 시토신 및 우라실(A, G, C, U)을 생성하기 위해 어떤 성분들이 반응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RNA가 스스로 복제하기 위해 어떻게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복제하는가 하는 점이다.
구아닌 대신 대리-이노신?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시토신과 우라실의 전구체 발견에는 상당한 진전을 보였으나 아데닌과 구아닌은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하버드대 화학 및 화학생물학 교수인 잭 스조스탁(Jack W. Szostak) 박사와 논문 제1저자인 김서현[Seohyun (Chris) Kim] 대학원생은 RNA가 다른 뉴클레오티드 염기 세트로 시작됐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구아닌 대신 대리-이노신(surrogate--inosine)에 의존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최근호에 발표됐다.
김서현 연구원은 “우리 연구는 A, U, C, I를 가진 가장 최초의 생명체가 현대의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것(A, U, C, G)과는 다른 일련의 핵염기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노신, 오류 없이 RNA 고속복제 도와
연구팀은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됐을까? 이들은 실험실에서 퓨린 기반의 뉴클레오티드인 아네닌과 구아닌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그러나 원치 않는 부산물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다 최근 원시 지구에서 이용 가능한 물질로부터 아데노신과 이노신(8-oxo-adenosine and 8-oxo-inosine) 버전들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를 이용해 이 유사체들로 만들어진 RNA가 효율적으로 복제되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이 대용물들이 기능 수행에는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설탕 대신 꿀을 넣은 케이크처럼 최종 제품의 겉모습이나 맛은 비슷했으나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이는 꿀을 넣은 케이크가 마치 타버리거나 꿀범벅이 되는 것과 흡사했다.
8-oxo-purine RNA도 복제에 필요한 속도나 정확성에서 실패했다. 복제가 너무 천천히 진행되면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분리돼 버린다. 또 너무 많은 오류가 생기면 번식이나 진화를 위한 신뢰성 있는 도구가 될 수 없다.
연구팀은 그런데 부적절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8-oxo-purines를 통해 예기치 못한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시험의 하나로 8-oxo-inosine의 능력과 대조군인 이노신의 능력을 비교해 보았다. 그러자 이노신은 8-oxo-inosine과 달리 RNA가 오류를 거의 발생하지 않고 고속으로 복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외계행성의 생명체 존재 확인에 활용 가능”
연구팀은 “RNA 복제 반응에서 합리적인 속도와 충실도를 보이는 것으로 판명됐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노신이 초기 생명 탄생에서 구아노신(구아닌에 리보오스 한 분자가 결합한 화합물)의 대리체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스조스탁 교수와 김서현 연구원의 발견은 ‘RNA 세계 가설’을 입증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작업은 우리 생명의 기원 이야기에서 RNA의 주된 역할을 확인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이와 달리 초기 지구가 생명이 성장할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지식을 확보한 과학자들은 다른 외계 행성들이 생명의 필수 구성성분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가 이 우주를 다른 외계생명체와 공유하고 있는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 혼자만 존재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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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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