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은 옥수수와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곡물이다. 그러나 품종 개발이 매우 어려운 곡물 중 하나로 꼽혀 왔다. 밀 게놈(유전체)은 매우 큰 데다가 복잡하게 구성돼 있어 그 해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지금 해결됐다. 국제 밀 게놈 시퀀싱 컨소시엄(IWGSC: International Wheat Genome Sequencing Consortium)은 17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지를 통해 밀의 게놈 지도를 마침내 완성했다고 밝혔다.
세계 20개국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가 시작된 이후 13년 만의 쾌거다. 논문 제목은 ‘Detailed genome maps paths to better wheat’이다.
“식량 문제 해결할 수 있는 분기점”
연구팀에 따르면 새로 완성한 밀 게놈 지도에는 밀 염색체 21개와 10만7891 개의 유전자, 470만 여 유형의 분자 마커(molecular markers) 등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번 게놈 지도에는 밀 경작에 있어 매우 중요한 특성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지구촌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십여 년 간 과학자들이 밀 게놈 분석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기후변화, 병해 등으로 인해 밀 경작이 큰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북부 유럽, 아시아, 캐나다 등에 몰아친 열파는 밀 경작자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반면 밀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관계자들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오는 2050년까지 96억 명이 먹을 밀을 생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전년대비 매년 1.6%씩 생산량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밀 게놈 해독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보다 5배나 더 큰데다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밀의 독특하면서 기괴한 게놈 구조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게놈 해독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초기부터 연구에 참여한 머독대학 루디 아펠스(Rudi Appels) 교수는 “IWGSC 공동연구에 참여할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밀 유전자 염기서열(genome sequence)을 완성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펠스 교수는 “그러나 밀 게놈 역시 언젠가 인간 게놈처럼 해독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했다”며 “지난 10여 년 간 해독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과거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온, 병충해에 강한 밀 생산 가능해져
다른 곡물들과 달리 밀은 고온에 매우 약하며, 강우량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와 병충해에 시달려왔다. 최근처럼 고온현상으로 인해 작황이 부진할 경우 세계 식량 시장에 악영향을 주면서 지구 식량난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아펠스 교수는 “그러나 밀 염기서열을 해독함으로써 밀을 해치는 병과 알러지 등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또한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특정 단백질 농도를 낮추는 등 신품종 개발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IWGSC는 이번 연구를 수행하면서 전통적인 세포유전학 기법인 핵형 분석 방식(physical mapping methods)을 고수했다. 여기에 첨단 DNA 해독 기술을 도입해 광범위한 데이터를 정확히 해독해냈다.
연구팀은 이렇게 취합한 유전자 정보를 새로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일일이 다 확인했다. 그리고 강력한 알고리듬을 활용해 10만7891개 유전자와 관련된 상세한 정보들을 21개의 염색체별로 정확히 구분해내는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또한 470만 여 유형의 분자 마커(molecular markers)를 규명했으며, 밀 생육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와 분자 마커 간의 복잡한 서열 정보(sequence information)도 함께 밝혀내는데 성공했다.
IWGSC가 주관한 이번 프로젝트에는 73개 대학과 개인 기업, 연구소 등이 참여했으며, 최종 논문 작성에는 200여 명의 저자가 참여했다. 참여자 대다수는 밀의 유전체 해독이 미래 식량난 해결의 필수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이나리 애그리컬쳐(Inari Agriculture)’ 사의 수석과학자 캐더린 풰이에(Catherine Feuillet) 박사는 “밀 게놈 해독이 완성됨에 따라 세계적으로 밀 생산을 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풰이에 박사는 또 “지난 13년 간의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이 곡물의 비밀을 알게 됐다”며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밀 생산은 물론 조리법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고학자들은 대략 7만 년 전 인간이 서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대륙으로 이동할 때 밀을 소지한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밀은 야생에서 알곡을 채집한 것이다. 인간이 직접 밀을 재배한 것은 기원전 1만2000년 전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밀은 인류의 주요 식량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리고 지금 인류와 함께 역사를 써온 밀의 게놈 해독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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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8-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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