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3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이 우울증(depression)은 단순한 감정저하 상태가 아니다. 감정, 생각, 신체 상태, 그리고 행동 등을 악화시키는 심각한 질환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우울증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최근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27일 ‘가디언’ 지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KCL) 유전학자들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변종 유전자를 다수 발견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KCL에서는 200여 명의 연구원이 참여해 우울장애를 일으키는 DNA를 분석해왔다. 그리고 44개의 변종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중 30개는 처음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우울증을 일으키는 유전적 요인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됐다.
KCL서 사상 최대 유전자 연구 수행
KCL의 연구는 지금까지 유전학자들이 수행한 연구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것이다. 의료계는 이번 연구 결과로 우울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으며, 또한 신약 개발 등 치료법 개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생화학적,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우울장애가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유전적 요인이다. 우울증 병력을 지닌 가족 내에서 우울증이 더 잘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가족 중에서 우울증과 관련된 유전적 특성이 나타나거나 재현되는 확률을 유전적 위험도(genetic risks)라고 한다. KCL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 유전적 위험도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KCL의 유전학자 캐서린 루이스(Cathryn Lewis) 교수는 “유전자 분석 결과 스트레스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인 경우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유전적 위험도가 가장 높은 최상위 10%의 가족 구성원이 위험도가 가장 낮은 최하위 10%의 가족 구성원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5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유전학자들은 유전자 연구를 통해 우울증의 원인을 40%까지 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학자들이 원하고 있는 40%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울증에 원인이 되는 훨씬 더 많은 유전자를 찾아내야 한다.
루이스 교수는 “우울증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수천 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의료계는 우울증의 원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것. 주요 우울 장애인 임상 우울증(clinical depression)이 대표적인 경우다.
“항우울제 개발에 기여할 수 있어”
임상 우울증은 식욕, 수면 장애, 집중력 장애, 피곤함, 동요 또는 친구 및 가족과의 관계 유지를 해치고, 격렬한 폭력성, 슬픔 등이 나타나는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현재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질환이다.
WHO에서는 임상 우울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원인 밝혀지지 않아 특별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매년 약 1조 달러(한화 1077조원)의 경제적 부담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많은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우울증으로 인한 피해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살 충동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폐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울증 환자 중 약 3%가 증세가 악화되면서 자살을 감행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는 매우 취약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해온 대형 제약회사들은 비용이 늘어나면서 대부분 연구를 포기한 상태다. 이에 따라 다음 세대는 별다른 치료제 없이 우울증을 감당해야 한다.
KCL의 이번 연구는 이런 풍토를 불식하고, 우울증 치료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한 사상최대의 의미있는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연구팀은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영국을 비롯 미국, 아일랜드, 덴마크 등에서 유전자 데이터를 수집했다.
34만5000명의 정신 병력이 없는 정상인과 13만5000명의 우울증 환자들로부터 수집한 유전자 데이터를 일일이 비교해가면서 DNA 분석을 통해 우울증을 유발하는 44개의 변종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관련 논문은 26일 ‘네이처 지네틱스(Nature Genetics)’지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Genome-wide association analyses identify 44 risk variants and refine the genetic architecture of major depression’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불안(anxiety), 조현병(schizophrenia), 조울증(bipolar disorder) 등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또 소아비만 등의 병력이 우울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자들은 KCL 논문이 우울증의 또 다른 생화학적 원인 규명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뇌과학 차원에서 신경전달물질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은 전전두엽피질과 대뇌전두피질 등의 영역이 우울증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연구에 참여한 제롬 프린(Gerome Breen) 교수는 “이번에 확인한 유전자들이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를 적절히 조절할 경우 뇌 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항우울제 치료제 개발에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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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4-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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