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김새 또는 건강을 규정하는 절대 암호라고 생각하던 ‘유전자 운명론’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부터 후천적으로 획득한 유전정보 역시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후성유전학’이 발달하면서 “노력하면 좋아진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과학자들의 관심은 후천적으로 획득한 유전정보가 후손에게 전달되느냐 마느냐에 모아졌다. 후성유전학자들은 ‘전달된다’는 연구결과가 우세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독일 연구팀은 후천적 유전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그 내용을 사이언스 14일자에 게재했다.
결국 사람은 단순한 유전자의 집합이 아니라고 과학자들은 다시한번 강조한 셈이다.
막스플랑크 프라이부르크 면역생물학및후성유전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of Immunobiology and Epigenetics in Freiburg)는 후천적인 유전정보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과정을 밝히는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어미의 후성유전적인 기억이 새로운 세대의 발전과 생존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람의 인체에는 250개의 서로 다른 세포 타입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DNA염기를 정확한 순서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간이나 신경세포 등 기관과 장기는 서로 모습이 매우 다르다.
할아버지 식생활 습관 손자에게도 영향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후성유전학이라는 절차에 따라 발생한다. 후천적으로 DNA의 특별한 지역이 ‘유전자 활성화 단백질’을 가까이 하거나 또는 멀리하도록 지시를 내린다.
게다가 DNA의 고정된 서열과는 반대로 후성유전적인 표지는 일생을 통해서 변화한다. 예를 들어 흡연을 하면 폐 세포의 후성유전적인 특징이 바뀌어 결국 암에 걸리게 하는 식이다. 스트레스나 질병 또는 다이어트 같이 외부적인 자극의 영향도 역시 세포의 후성유전적 기억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래동안 이 후성유전적인 변화는 ‘세대’라는 장벽을 결코 넘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과학자들은 일생을 통해 축적된 후성유전적인 기억은 정자와 난자가 자라는 동안 완전히 소멸된다고 생각해왔다.
아주 최근에서야 몇몇 연구들이 후성유전적인 흔적이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만, 정확히 어떻게 그리고 어떤 영향이 후손에게 미치는지는 아직 잘 이해되지 않았다.
“1990년대 후성유전학이 생기면서 후천적인 정보가 세대를 건너 전해진다는 암시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후성유전학 연구는 할아버지가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하는 것과 손자의 당뇨병 및 심장질환사이에 놀라운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다양한 연구들은 다양한 기관에서의 후천적인 유전이 이뤄지는 것을 암시했지만, 분자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니콜라 이오비노 (Nicola Iovino)는 말했다.
막스플랑크 프라이부르크 연구팀은 후천적인 수정이 어미에서 배아로 전달되는지 초파리(fruit flies)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연구팀은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특별한 유전자 변화인 H3K27me3에 집중했다. H3K27me3은 세포핵에 있는 DNA를 포장하는 염색질(chromatin, 染色質)을 바꾸는데 염색질은 유전자발현을 억제하는 과정에 주로 간여한다.
막스플랑크 연구팀은 어미 난자세포에 있는 염색질 라벨링의 H3K27me3 변화가 초파리가 수정한 다음에도 배아에 계속 남아있음을 발견했다. 수정된 이후에는 다른 후천적인 표시는 지워졌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피데스 젱크(Fides Zenk)는 “이것은 어미의 후천적인 유전자표지가 후손에게 전달됨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만약 이런 표지가 배아에서 무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이다”고 말했다.
후천적 유전정보 제거했더니 초파리 배아 사망
그래서 연구자들은 초파리에서 H3K27me3를 앉히는 효소를 제거했더니, H3K27me3가 없는 배아는 배아발생의 마지막 발전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니콜라 이오비노는 “후천적인 정보는 단순이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뿐 아니라, 배아 자체의 발달에 중요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몇가지 중요한 발달유전자를 발견했다. 배아발달의 초기단계에는 꺼져있던 이 발달유전자는 배아발달의 초기단계에는 꺼져있다가 H3K27me3가 없는 배아에서는 켜지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은 부모로부터 단순히 유전자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고, 환경이나 개인의 생활습관에서 받은 영향도 물려받는다.
후성유전학의 발달은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좋은 유전적인 전통을 이어받지 못했어도, 지금부터라도 내가 노력하면 노력의 결과가 아들과 손자에게는 전해진다.
후성유전학은 맹목적인 운명론을 과학적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07-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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