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암세포도 생존하기 위해 산소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인 과학자를 포함한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산소와 관련한 암세포 이동을 밝혀내 암 치료를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지금까지 암세포 성장단계에서 산소를 이용해 암세포 이동을 파악한 연구는 없었다.
연구팀은 쥐의 육종(肉腫) 세포들이 마치 먹이를 찾아가듯 산소농도가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는 통로를 추적해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2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이 통로는 암세포들을 혈관 쪽으로 유도해 이를 통해 인체의 다른 부분으로 퍼지게 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논문의 주요 저자인 샤론 게레치트(Sharon Gerecht) 존스홉킨스대 교수(공대 화학 및 생물분자공학과)는 “암의 치료 목표를 찾는다면, 특히 이 과정을 타겟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게레치트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임상에 적용하는 데는 시일이 좀 걸릴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3년 간의 연구 끝에 연조직 육종 생애주기의 핵심 부분을 밝혀내 치료를 위한 단서를 제공하는 한편 실험실에서 암 치료를 테스트할 수 있는 증명된 방법을 확립했다고 설명했다.
육종은 암의 한 종류로 뼈와 근육, 힘줄, 연골, 신경, 지방과 몇몇 혈관 같은 부드러운 조직에 종양을 일으킨다. 이번 연구는 뼈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연조직 육종을 대상으로 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만3000명 정도가 이런 육종 환자로 진단받고, 환자의 25~50%가 재발하거나 확산, 전이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경민 교수가 하이드로겔-암세포 시스템 개발
모든 종류의 암은 산소가 거의 없이도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과학자들은 종양 성장에서 저산소 조건의 역할을 관찰했다. 그러나 암세포가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산소 농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번 연구는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존스홉킨스대 4명, 펜실베이니아대 3명 등 모두 7명의 연구팀은 쥐에서 추출한 수천개의 초기단계 암세포들이 청정 겔로 만든 인체 실물 모형을 통해 이동하는 모습을 추적했다. 젤라틴으로 만든 수분을 함유한 이 하이드로겔은 인체에 있는 암세포 주변 환경을 그대로 복제해서 만들었다.
당시 그레치트 교수 연구실의 박사후 과정 연구원으로 있던 박경민 박사(현 인천대 교수)가 하이드로겔-암세포 시스템을 개발했고, 대니얼 루이스 연구원(대학원생)이 산소 농도 상승 혹은 ‘변화도’에 따른 세포 이동과 반응을 분석했다.
하이드로겔은 바닥에서 윗층까지 산소농도가 점차 증가하도록 만들어 암세포가 종양 안에서든 인체 조직 안에서든 상이한 산소 농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예로 쥐의 육종을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종양은 중앙에 산소농도가 매우 낮은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는 반면 작은 종양들은 다양한 산소농도를 가진 영역들이 도처에 존재했다.
“3D 하이드로겔, 암치료 사전 테스트 가능”
연구팀의 첫 단계 과업은 암세포들이 주변 대기와 같은 양의 산소를 포함한 다른 하이드로겔에 비해 저산소 하이드로겔로 더 많이 이동하는가를 확인하는 것이었고, 이어 암세포의 이동방향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확인 결과 작은 종양에서의 산소 농도를 모방한 하이드로겔에서 암세포들은 산소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탈모 방지에 쓰이는 미녹시딜이 하이드로겔을 통한 암세포 이동을 저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게레치트 교수는 암세포들이 스스로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도록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번 연구는 그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앞당겼다고 말했다. 그는 “암세포 이동을 효과적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산소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 했다”며, “이번 연구 결과는 산소 변화도가 암 전이과정의 초기단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또한 게레치트 교수팀이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삼차원 하이드로겔 모델이 실험실에서 암 치료를 테스트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게레치트 교수는 환자의 암 세포도 쥐의 암세포를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이드로겔로 옮겨 환자에게 치료약을 투입하기 전 암세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미국 심장학회, 국립과학재단과 존스홉킨스대 총장 연구기금을 받아 수행됐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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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8-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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