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바다인 인터넷에서는 각종 허위 정보가 돌아다닌다. 허위 정보는 더 자극적인 정보를 찾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먹고 순식간에 퍼지게 되며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친 허위 정보는 어느새 유사과학이나 음모론과 함께 진실인 것 처처럼 여겨진다. 과학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이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극적이고 재미있다고 해서 진실은 아니듯이 재미없는 사실이라고 해서 관심을 끊을 필요도 없다.
「사타의 유사 과학 & 음모론 타파」시리즈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혹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유사과학과 음모론을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사타의 유사 과학 & 음모론 타파」 시리즈 다섯 번째 시리즈로 MBTI와 혈액형 관련 유사 과학 및 음모론을 알아본다.
MBTI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함께 무의식 이론 심층 심리학(depth psychology)의 발전을 이끌었던 스위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Prof. Carl Gustav Jung) 교수는 1921년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론을 발표하며, 인간의 성격이 외향(E: Extraversion) vs 내향(I: Introversion), 감각(S: Sensing) vs 직관(N: Ntuition), 사고(T: Thinking) vs 감정(F: Feeling) 등 6가지 차원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위 이론의 발표 후 미국의 모녀 캐서린 쿡 브릭스(Katherine Cook Briggs)와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Myers)는 융의 6가지 지표에 판단(J: Judging) vs 인식(P: Perceiving)을 더해서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만들었다. 또한 딸 마이어스는 검사 문항을 체계화하며 총 93개 문항으로 이루어진 성격 유형 검사를 세상에 선보였다.
MBTI는 우리나라에 대략 1990년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MBTI의 8가지 지표
MBTI는 8가지 지표로 구성된다. 먼저 외향형(E)과 내향형(I)은 에너지의 방향 혹은 주의의 초점이 외부 혹은 내면으로 향하는지에 따라서 분류된다. 또한, 감각형(S)과 직관형(N)은 정보를 수집거나 사물 등을 인식할 때 구체적인 사실 기반의 경험에 의존하는지 혹은 추상적 연관이나 직관에 의존하는지에 따라서 분류된다.
사고형(T)과 감정형(F)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나 판단할 때 사실 근거로 논리적 절차를 중요시하는지 혹은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분류된다. 마지막으로 판단형(J)과 인식형(P)은 상황을 통제하거나 일을 진행할 때 계획에 맞추어서 진행하는지 혹은 유연하고 즉흥적으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분류된다.
총 93개 문항으로 구성된 MBTI의 결과는 두 성격 유형 중 더 가까운 곳에 해당하는 알파벳 4개를 얻게 되며, 사람마다 총 16가지(2의 4승) 다른 유형의 성격 결과가 나오게 된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MBTI
겉보기에 매우 간단해 보이는 이러한 MBTI는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먼저 인터넷에 돌고 있는 요약된 버전의 MBTI는 상당히 빠른 시간안에 꽤 명료한 것처럼 보이는 성격에 관한 해석을 제공해준다. 또한 세분화된 질문을 통해서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현재 대중은 MBTI 결과에 따라서 서로를 분류하고 또 비교하면서 일종의 MBTI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MBTI는 이제 자신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명함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매우 빠른 자기소개 도구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 MBTI를 물어보며 심지어는 연인을 만날 때도 MBTI에 따라서 궁합이 잘 맞으리라 예측하곤 한다.
자신의 의사 표현이 분명하다는 MZ세대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일을 하기 싫을 때 MBTI가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고 표현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MBTI의 가장 큰 장점은 대중성과 범용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4개의 알파벳만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하지만 아쉽게도 MBTI를 무작정 신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통 심리 상태나 성격을 검사하는 검사지로 인정받으려면 신뢰성과 타당성이 필요하다. 즉, 반복적으로 검사할 때 최소한 매우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16가지 나뉘는 성격이 다시 재현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은 MBTI의 신뢰도를 낮추고 있다.
또한 그날의 컨디션이나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서도 대답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에 검사의 객관성은 매우 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객관적으로 자신에 대해서 평가해야 하므로 검사의 타당성도 한계가 있다. 참고로 실제 MBTI는 전문가의 입회하에 진행되지만, 인터넷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테스트는 훨씬 더 요약된 버전으로 신뢰성과 타당성이 더 떨어진다.
이처럼 서로 다르게 태어나며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겨우 16가지 유형으로 규격화된다는 점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함으로써 각자의 개성이 지나치게 일반화될 수 있다. 때로는 이미 규격화된 자신의 성격에 관해서 변화의 가능성마저 봉쇄해버릴 수 있다. 인간은 16가지로 구분하기에 매우 다양하며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존재이다.
인간의 성격 유형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8년간 MBTI의 정식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년부터 중년까지 한국인의 성격 유형 분포를 분석한 연구(‘한국인 대표 표본의 MBTI 분포 연구’)가 있다. 위 결과에 따르면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각 성격 유형 지표에 유의미한 변화를 보였다.
예를 들어서 20세 이전에는 S와 N의 비율이 5:5 정도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S의 비율이 훨씬 더 늘어났다. J와 P의 비율은 어릴 때와 중년의 비율이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위 결과를 통해서 인간의 성격 유형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함을 유추할 수 있다.
MBTI는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과학적으로 신뢰도가 떨어지며 여러 한계점이 있는 MBTI 테스트는 자신과 상대방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MBTI를 통해서 매우 빠르게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대충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서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MBTI를 이용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본인과 상대방을 너무 쉽게 범주화하거나 규격화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심리학 그리고 임상에서 쓰이는 모델들
심리학에는 여러 성격심리학적 모형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1976년에 심리학자 폴 코스타(Paul Costa Jr.)와 로버트 매크레이(Robert R. McCrae)가 개발하였으며 인간의 성격을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우호성, 신경성 등 5가지의 상호 독립적인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는 Big5와 같은 모델이 대표적이다. Big5 모델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되는 여러 요인(Factor)들을 기반으로 6가지 이상의 측면(Facet)으로 인간의 성격심리를 설명한다. 통계학 기반으로 설명되는 위 모델들은 MBTI 성격 모형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매우 훌륭하게 커버한다.
실제 임상 현장이나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 검사)가 많이 활용된다. 성격 특성과 정신 병리를 측정하는 척도를 포함해 총 567개의 문항으로 구성된 위 검사는 환자들의 다양한 정신 병리를 진단하는 데에 이용된다. 또한, 치료가 필요한 성격 문제를 진단할 시에는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등의 진단 기준에 기반하여 판단하게 된다.
혈액형의 발견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ABO식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Dr. Karl Landsteiner)가 발견하였으며 그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그는 적혈구가 다른 사람의 혈청에 의하여 응집되며 모세혈관을 막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혈액형을 구분하게 되었다.
ABO혈액형은 적혈구 세포막에 있는 응집원 응집소 역할을 하는 당단백질에 따라서 구분된다. 혈액형의 발견을 통해서 수혈이 가능해졌기에 위 발견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우생학의 발단 - 혈액형 성격설
혈액형 성격설은 독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가 혈액형을 발견한 후 대략 10년 뒤 독일의 우생학자 에밀 폰 둥게른 박사(Dr. Emil von Dungern)는 혈액형이 유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문제는 위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른 인종의 우열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게르만족의 피가 A형, 아시아인의 피가 B형이라고 주장하며 A형이 B형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을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쳤으며, 위 논문은 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들려는 우생학(Eugenics)이 정립되는 계기가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잠잠하던 혈액형 성격 관련 이론은 1970년 일본의 모 방송인이 낸 책에 의해서 다시 유행을 타며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위 책의 번역본이 출간되며 기타 혈액형 성격 관련 글들이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또한 피실험자의 표본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아 지나치게 적은 엉터리 논문들을 기반으로 엉터리 과학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독일이나 일본보다도 더 유사 과학을 믿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만 혈액형 성격설을 믿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이유
전문가들에 따르면 혈액형 성격 연관설을 믿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즉, 본인의 본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 A가 B형이라고 가정했을 시, 사람들은 A가 B형이므로 고정관념대로 자기주장이 강할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미리 생각을 고정해둔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발견될 때까지 계속해서 그를 관찰하며, 결국 본인의 생각이 맞다고 편향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혈액형은 수혈에만 필요하다
MBTI는 과학적으로 신뢰도가 낮을 뿐 개인의 대략적인 성격 파악은 가능하다. 하지만 적혈구 세포막에 있는 당단백질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혈액형 성격론은 매우 터무니없는 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혈액형은 항원항체반응의 일종일 뿐, 성격이나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혈액형은 수혈이 필요할때만 구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자신의 혈액형(ABO 그리고 Rh)이 무엇인지만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된다.
참고로 현재까지 밝혀진 혈액형 종류는 150가지가 넘지만, 국제 수혈학회가 분류한 분류법에 따르면 약 30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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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타의 유사과학 & 음모론 타파」시리즈에서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혹은 과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유사과학과 음모론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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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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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2-07-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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