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알고 싶다면 시계를 보면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시된 이 시계의 출발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시간은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일까? 이에 관한 가장 오래된 정답을 알고 싶다면 영국의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로 가면 된다.
런던 동쪽에 위치한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는 도심에서 지하철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을 정도로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다. 퀸스 하우스 뒤편으로 그리니치 공원(Greenwich Park) 언덕 꼭대기에 도달하게 되면 세계의 날짜와 시간을 정의하는, 즉 레이저로 좌우의 경도를 나누는 기준선인 본초 자오선 (Prime meridian)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리니치 천문대는 지구의 공간과 시간을 근대적으로 정의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변에는 고대 야외 천문 설치물과 시계 박물관 등이 있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신항로 개척 시대를 거쳐 온 유럽 항해자들에게 가장 오래된 숙원은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한 해로를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어야 했고, 이러한 열망과 함께 1675년 찰스 2 세(Charles II)는 천문항해술 연구를 위한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Greenwich Royal Observatory)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천문대답게 유명 천문학자들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최초 천문대장은 왕실 천문학자(The King's Astronomical Observator) 존 플램스티드(John Flamsteed)였으며 그의 조수이자 훗날 핼리혜성의 출현을 예측한 천재적인 천문학자 애드먼드 핼리(Edmond Halley)의 역사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8세기 초 영국 전함 4척이 귀국하던 중 암초와 충돌해서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당하는 큰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에 격분한 영국 의회는 보다 유용한 방법으로 지구상에서 경도를 측정하길 원했다. 이를 계기로 그리니치 천문대에서는 경도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보다 정확한 시계를 제작하려 노력했으며 항해사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측정 장치와 해, 별, 그리고 달을 기준으로 하는 항해력을 만들어 제공하기 시작했다. 플램스티드에 이어서 두 번째 왕실 천문학자가 된 핼리의 이러한 노력으로 자연스럽게 그리니치 천문대는 세계의 기준이 되어갔다.

1884년, 그리니치 천문대는 그리니치 표준시(GMT, Greenwich Mean Time)와 동경 0도 00분 00초 자오선을 정의하면서 세계의 모든 장소가 이 선을 기준으로 경도로 표시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기준으로 세계의 시간을 1도당 4분씩 배분하는 표준시가 시작되었다. 1972년에 협정 세계표준시(UTC, Temps Universel Coordonné/Coordinated Universal Time)로 바뀌기 전까지는 전 세계 시간의 기준이 되곤 했었다. 협정 세계표준시는 그리니치 표준시에 기반하므로 둘은 거의 동일시 되곤 하지만 둘의 기준은 엄밀히 다르다.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리니치 표준시는 천문학적인 관측에 기반을 두고 협정 세계 표준시는 국제 원자시계(International Atomic Time)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리니치 표준시의 낮 12시 (12 noon GMT)는 태양이 그리니치 위에서 가장 높이 떠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지구의 자전축은 약간 기울어져 있고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점 등에 기인하여 시간이 매번 약간씩 달라지기에 그리니치 천문대의 정오는 연평균을 기준으로 정해지게 된다.
반면 협정 세계표준시는 국제 원자시계 (TAI, Temps Atomique International)를 기준으로 정해지게 되는데 이 역시 전 세계 많은 국가의 실험실에서 보유한 400개 이상의 세슘 원자 시계 시간의 가중 평균치를 기반으로 정해지게 된다.
그리니치 표준시와 협정 세계표준시는 소수점 단위에서만 차이가 나므로 실생활에서 둘은 대부분 혼용되고 있지만 1초의 국제단위계(SI)가 세슘 원자시계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협정 세계표준시가 이용되고 있다. 그리니치에서 서쪽으로 12시간까지 서반구라고 부르고, 동쪽으로 12시간까지는 동반구라고 부르며, 이 둘이 서로 마주치는 태평양 바다의 한가운데는 국제 날짜변경선이 되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본래부터 런던 그리니치 공원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1945년 스모그로 유명했던 런던의 각종 도시 오염을 피해서 그리니치 남쪽 서식스 주 허스트몬슈로 이전되었고 1970년에는 스페인 카나리아섬으로 이주되었다가 1990년에는 다시 영국 케임브리지로 이전되었다.
1998년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2007년 시계 사업가 피터 해리슨의 기부로 예전의 그리니치 천문대 위치에 예전의 천문대 모습 그대로 새롭게 태어났다. 현재는 국립 해양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을 구성하는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 천문대는 런던의 고층 빌딩을 제외하고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리니치 천문대에 따르면 현재는 전문적인 천문학적인 연구보다는 주로 대중적인 천문학 연구에 치중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 천문학 연구를 담당하던 부서 및 기관들은 러더퍼드 연구소 등 관련 기관으로 분산되었다. 이곳에는 영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지름 약 70cm의 천체망원경이 있지만, 피터 해리슨 플라니테리움이 개장되기 전까지는 역사적인 장소일 뿐이었다고 한다. 2007년 개장한 피터 해리슨 플라니테리움은그리니치 천문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천문학도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일하는 천문학자들은 매일 대중들에게 천문학을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친절하고 대중적인 천문학 온라인 코스도 제공하고 있다. 보다 자세하고 깊은 공부를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1년 동안의 인텐시브 코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천문학자들이 운영하는 각종 워크숍 코스들도 제공된다. 천문대에는 전파 망원경으로 촬영한 영상이 저장된 전파망원경 모형이 있는데, 관광객들은 이를 조종하며 관측할 수 있다. 실제로 조종하는 느낌과 같기에 관측 천문학자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또한 천문대에서는 2008년부터 영국 그리니치 왕립천문대 선정 올해의 천문사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10개 부분 이상의 천문 사진들을 선정해서 수상하고 있다. 천문대를 관장하고 있는 왕립 박물관은 케이드 연구 펠로십(Caird Research Fellowships)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주로 인문학과 예술 등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있다.
- 김민재 칼럼니스트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0-09-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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