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 포인트’로 유명한 작가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2008년 펴낸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을 소개했다. 10년 즉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연습하면 최고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후 각국의 교육자와 경영학자들은 “1만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기 때문에 최고가 되지 못한 것”이라며 실력의 차이를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 차원의 문제로 돌리기 시작했다. 누구나 동일한 지점에서 출발하므로 부지런한 사람만이 앞서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1만 시간의 법칙’은 극히 적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호주 공동연구진은 체스와 음악 등 가장 많은 연구가 진행된 2개 분야를 대상으로 14건의 기존 연구논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1만 시간의 노력으로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은 체스 분야가 34퍼센트, 음악 분야는 29.9퍼센트에 불과했다. 나머지 경우는 지능, 성격, 유전자, 연습을 시작한 연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결과는 ‘꾸준한 연습만이 전문가가 되는 유일한 방법인가(Deliberate practice: Is that all it takes to become an expert?)’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정리되어 학술지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최근호에 게재되었다.
‘1만 시간 법칙’ 들어맞는 음악가는 29.9퍼센트뿐
1993년 스웨덴 출신의 앤더스 에릭손(K. Anders Ericsson)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원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랄프 크람페(Ralph Th. Krampe), 클레멘스 테쉬뢰머(Clemens Tesch-Römer) 연구원은 연주 실력 차이에 관한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독일 명문 음악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력을 조사한 결과, 입학 이전의 연습량에 따라 실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최고 수준의 학생이 7천 시간 이상을 연습했다면 상급 수준의 학생은 5천 시간, 교사를 목표로 하는 보통 학생은 3천 시간만 연습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2007년에는 추가 조사를 통해 “가장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최소한 10년 또는 1만 시간의 집중된 연습을 실시해야 국제 무대에서 입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서양에 전해오던 ‘연습이 최고를 만든다(practice makes perfect)’는 격언이 사실로 드러나자 세계는 ‘1만 시간의 법칙’에 빠져들었다.
이후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를 통해 “1만 시간은 위대함을 만드는 마법의 숫자”라고 추켜세웠다. 2010년에는 저널리스트 매슈 사이드(Matthew Syed)가 저서 ‘베스트 플레이어’를 통해 에릭손의 연구를 소개했다. “엄청난 연습 없이는 누구도 최고가 될 수 없으며 꾸준히 연습한다면 누구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1년에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체스 선수를 예로 들며 ‘1만 시간의 법칙’을 옹호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미시건대, 라이스대, 사우스일리노이대, 영국 브루넬대, 호주 에디스코완대 등 3개국 5개 대학교 공동연구진이 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내놓았다. 음악 연주자와 체스 선수의 실력과 연습량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14편의 기존 연구를 분석하자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전체의 3분의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습 이외에 지능, 성격, 연령이 복합적으로 작용
아르헨티나 체스 선수들을 조사한 페르낭 고베(Fernand Gobet)와 기예르모 캄피텔리(Guillermo Campitelli)의 2007년 연구결과를 살펴봐도 ‘1만 시간의 법칙’은 들어맞지 않는다.
104명의 선수 중 일부는 최상급 실력에 도달하는 데 2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26년이 걸린 선수들도 있었다. 게다가 평생을 훈련과 연습에 투자했어도 최상급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1만 시간을 연습했어도 중급밖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들도 있다.
나머지 연구결과를 분석해 합산하자 1만 시간의 연습으로 최고에 도달한 체스 선수는 전체의 34퍼센트에 불과했다. 음악 분야는 더욱 심해서 29.9퍼센트만이 ‘1만 시간의 법칙’을 만족시켰다.
최근 들어 학교와 사회에서 경쟁이 심화되며 ‘1만 시간의 법칙’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논문은 “체스 선수의 66퍼센트, 음악 연주자의 70.1퍼센트는 1만 시간의 연습이 아닌 지능, 성격, 유전자, 연습을 시작한 연령 등에 의해 실력 차이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나 원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평등주의적인 관점과는 어긋나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논문은 또한 ‘1만 시간의 법칙’에 오류가 발생한 이유를 실험심리학과 차이심리학의 특성 차이에서 찾았다. 실험심리학자들은 전문가 수준의 능력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낼 뿐 개개인의 차이는 오류로 무시해 버리는 반면, 차이심리학자들은 개인별 차이를 나타내는 요소들을 조사하고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진행한 잭 햄브릭(Zach Hambrick) 미국 미시건주립대 교수는 “하지만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며 “개인의 능력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평가한다면 굳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분야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때 ‘삼당사락’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세 시간을 자면 시험에 붙고 네 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의미다. 어쩌면 소질이 없는 분야를 택한 것도 모르고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서 꾸준한 연습을 투자한다면 과도한 고생 없이도 남들보다 손쉽게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논문은 결론을 맺는다.
- 임동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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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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