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부로 남성으로 사춘기를 보낸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는 국제 육상 경기 여성 부문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남성 호르몬 수치가 유달리 높은 여성 선수도 호르몬 억제제를 투여하여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새로운 지침에 의하면 2014년 런던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성 육상 800m 금메달을 차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 선수는 더 이상 국제경기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테스토스테론 수치 기준 대폭 강화
세계육상연맹(IAAF)은 지난 3월 23일 새로운 지침을 발표했다. 바스티안 코 세계육상연맹 회장은 “지난 두 달 동안 여러 국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트랜스젠더 및 인권 단체 등 이해 관계자들과 협의를 마쳤다”며 “여자 선수들에 대한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같은 지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성전환을 하지 않았어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여성 평균보다 높은 ‘성 발달 차이(DSD)’가 있는 선수들에 대한 제한도 강화됐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리터(L)당 2.5나노몰(n㏖) 이하로 유지한 경우에만 출전이 허락된다. 시스남성(심리학적 성별과 생물학적 성별이 일치하는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일반적으로 리터당 10~35n㏖인 반면, 시스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2.4n㏖ 미만이다. 2015년 세계육상연맹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리터당 5n㏖ 미만인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는 지침을 세웠는데, 이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아직 과학적 근거 부족하다”
세계육상연맹의 결정을 두고, 섣부른 판단이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잇따른다.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경기력을 연구해 온 요안나 하퍼 영국 러프버러대 박사는 사이언스 인사이더(Science Insider)와의 인터뷰를 통해 “충분한 과학적 증거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에 실망했다”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트랜스젠더 여성을 금지한다는 생각은 모순적이며, 섣부른 결정은 성전환이 운동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것도 방해한다”고 말했다.
근거는 이렇다. 2021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여성의 근육량은 성전환 후에도 높은 상태를 유지하지만, 혈액 내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 수치는 시스-여성과 비슷하다. 헤모글로빈은 활동할 때 근육으로 산소 수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데, 남성은 여성보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또한 하퍼 교수팀이 2015년 8명의 트랜스젠더 여성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후 경기 기록이 늦어졌다. 비록 소규모로 진행된 실험이지만 이들의 경기력은 시스젠더 여성에 비해 큰 이점이 없었다.
하퍼 교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기 위해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억제 전‧중‧후 선수의 역량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며 “이런 상황임에도 DSD 여성 선수는 출전 ‘제한’을 하고,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는 출전 ‘금지’를 한 것은 엄연한 차별이다”라고 말했다.
젠더 기반 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에릭 빌런 미국 어바인캘리포니아대 박사는 “과학적 발전에도 퇴보”라며 “성전환이나 호르몬 수치 조절이 선수의 운동 역량에 미치는 영향이 아직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규칙의 시행으로 인해 ‘충분한 근거 기반 정책’을 세우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출전 제한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국제사이클연맹(UCL)은 트랜스젠더 여성 사이클 선수의 출전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 한도를 리터당 2.5n㏖ 미만으로 제한했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12살 이전에 호르몬 치료를 받지 않는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부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수정했다. 세계럭비연맹(World Rugby)은 생리학적 차이로 인한 부상 예방을 위해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 종목 경기 출전을 제한했다.
하퍼 박사는 “어떤 선수도 확인되지 않은 ‘경쟁 우위’라는 불공정한 근거를 토대로 경기에서 제외될 수 없으며, 경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불필요한 의학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세계육상연맹 대변인은 ‘사이언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명확한 데이터 부족이 규칙 개정의 근거”라며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성전환이 남성적 이점을 제거한다는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세계육상연맹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 권예슬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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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06-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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