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대기 표면에 도착하는 태양에너지는 태양이 방출하는 총 복사에너지의 22억 분의 1 정도뿐이다. 그중에서도 약 30%는 우주로 반사되는데 매년 지구의 대기, 바다, 육지가 받아들이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3850제타줄(ZJ)이다.
2005년 기준으로 전 세계의 전기 소비량이 약 0.0567제타줄이라고 하니 태양에너지의 엄청난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초에 내뿜는 태양에너지만 해도 전 인류의 연간 에너지 소비량보다 7000배나 많다.
그럼 태양은 어떻게 이같이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하는 걸까? 태양은 거대한 핵융합로로서, 수소를 지속적으로 헬륨으로 변환한다. 이 과정은 ‘수소 연소’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의 프로세스가 있다.
양성자끼리 융합하는 과정에서 수소를 헬륨으로 변환하는 ‘양성자-양성자 연쇄반응(P-P 연쇄반응)’과 수소가 탄소(C)와 질소(N), 산소(O)를 이용해 헬륨으로 융합되는 ‘CNO 순환 반응’이 바로 그것이다. CNO 순환은 1930년대에 독일의 물리학자 한스 베테와 카를 폰 바이츠제커가 이론적으로 예측해 ‘베테-바이츠제커 순환 반응’이라고도 한다.
1%만 생성되는 희귀한 중성미자
P-P 연쇄반응은 태양처럼 비교적 작은 질량을 가진 항성에서 주로 일어나는 핵융합 방식인데 비해, CNO 순환 반응은 태양 질량의 1.5배가 넘는 무거운 항성에서 주로 일어나는 핵융합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태양의 경우 P-P 연쇄반응이 태양에너지의 99%를 만들고 나머지 1%가 CNO 순환 반응에 의해 생성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태양에서 일어나는 모든 핵융합 과정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 외에 수많은 중성미자를 발생시킨다. 지구 표면 1㎠에 쏟아지는 태양 중성미자가 초당 최고 650억 개일만큼 많다. 하지만 이 유령입자는 다른 어떤 입자와도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내기란 건초 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
그럼에도 P-P 연쇄반응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는 이미 감지해서 연구하고 있지만, CNO 순환 반응에서 만들어지는 중성미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검출된 적이 없다. 즉, CNO 중성미자는 가설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입자인 셈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탈리아의 보렉시노 검출기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태양의 핵융합 과정 동안에 생성되는 이 독특한 중성미자를 직접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연구진은 지구에 도달하는 CNO 중성미자의 총 흐름을 추정해 지구 표면 1㎠에 매초 7억 개의 CNO 중성미자가 쏟아진다고 발표했다.
이는 태양의 CNO 순환 반응이 총 생산 에너지의 약 1%를 담당할 것이라는 기존 추정과도 일치한다. 독일 마인츠대학의 마이클 부름 교수와 다니엘레 구판티 박사 등의 ‘보렉시노 컬래버레이션’ 멤버들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에 게재됐다.
핵융합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 기대
연구진이 사용한 그란사소 연구소의 보렉시노 검출기는 태양 중성미자의 전체 스펙트럼을 한 번에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검출기다. 18미터 높이의 탱크에 2000톤의 순수한 물이 담긴 이 장치에는 방사선이 부딪히면 섬광을 발하는 특수 유기 용액 280톤과 2200개의 센서가 있어 CNO 중성미자와 같이 아주 희귀한 신호도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탐지된 신호가 실제로 중성미자인지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분석 중 다른 잠재적 신호원을 끄거나 필터링해야 한다. 여기에 우주 방사선에 의한 자연 배경 방사능이나 뮤온과 관련된 간섭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펜니노산맥의 1400미터 두께 암석층 아래 탱크가 차폐되어 있음에도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뮤온의 일부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으며, 방사능 붕괴의 경우 얼핏 보면 진짜 중성미자 신호와 구별할 수 없는 신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유사 신호들을 구별할 수 있는 정교한 분석 기법을 개발하여 CNO와 같이 희귀한 중성미자 신호를 안정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우리의 태양뿐만 아니라 다른 거대한 항성들이 주로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융합 과정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국제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면 인류는 새로운 인공태양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수소와 헬륨 외에 탄소와 질소, 산소처럼 무거운 원소들이 태양 플라스마에서 얼마나 자주 발견될 수 있는지에 관해 더 나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길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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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11-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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