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처럼 덩치가 큰 동물은 그만큼 세포분열이 많이 이뤄져 인간보다 암이 발생할 확률이 100배 정도 더 높다. 하지만 암으로 사망하는 코끼리는 인간보다 훨씬 적다. 그 이유는 바로 ‘좀비’ 유전자 덕분이다.
코끼리는 DNA가 손상돼 암이 발생할 위험이 높은 세포를 찾아서 죽이는 ‘LIF6’이라는 독특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코끼리에게만 있는 이 유전자는 복제 과정에서 잘못돼 죽은 유전자에서 다시 생명은 얻었다는 점에서 좀비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시카고대학의 빈센트 린치 박사팀이 2018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의해 밝혀졌다.

좀비 캐릭터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 영화에서 좀비는 공동묘지 속에서 등장한다. 사체들이 다시 살아나 인간들을 먹어 치우는 끔찍한 모습을 보여준 것. 이때부터 좀비는 죽은 후 다시 살아나는 존재를 일컫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뇌에 있는 세포 중 일부가 더 활발히 활동하면서 거대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세포들의 활동이 사망 후에 증가하는 이유는 바로 좀비 유전자 때문이다.
코끼리의 LIF6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다시 생명을 얻은 좀비 유전자이지만, 사람의 뇌에서 이번에 발견된 좀비 유전자는 사망한 직후 유전자 발현이 증가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즉, 영화 속의 좀비 캐릭터처럼 죽은 후 다시 살아나는 셈이다.
사망 후 성장해 긴 팔 모양의 부속물 생성
미국 시카고일리노이대학(UIC)의 제프리 롭(Jeffrey Loeb) 교수팀은 사후 변화와 죽음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일상적인 뇌수술에서 채취한 신선한 뇌조직의 샘플로 유전자 발현을 분석했다. 사후 변화(Post-mortem interval)란 동물이 사망한 후 나타내는 현상을 모두 일컫는다.
그 결과 연구진은 사람이 죽은 후 몇 시간 동안 인간 뇌의 특정 세포들은 여전히 활동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처럼 사후에 발현을 증가시킨 유전자들은 신경아교세포(glial cell)라고 불리는 한 종류의 세포로 한정되었다.
연구진은 사망 후 여러 시간 동안 신경아교세포가 성장해 긴 팔 모양의 부속물을 새로 만드는 것을 관찰했다. 이에 대해 롭 교수는 “사망 후 신경아교세포가 커지는 현상은 산소 결핍이나 뇌졸중 같은 뇌손상을 치료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들은 분석된 유전자의 약 80%가 사망 후 24시간 동안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세포 기능을 제공하는 ‘하우스키핑 유전자’가 포함돼 있었다. 하우스키핑 유전자는 세포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유전자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발현되는 유전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기억력, 사고력, 발작처럼 인간의 뇌 활동에 복잡하게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유전자 그룹은 죽은 후 몇 시간 내에 급격히 퇴화했다. 그에 비해 좀비 유전자는 뉴런 유전자가 붕괴함과 동시에 활동을 증가시켰으며, 이 같은 변화 패턴은 사후 12시간에 정점을 찍었다.
인간 뇌 조직의 연구 해석에 도움
롭 교수는 “대부분의 연구에서는 심장이 멈추면 뇌의 모든 것이 멈춘다고 추정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이런 변화를 계량화하지 않았을 뿐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연구 결과가 인간의 뇌 조직에 대한 연구를 해석하는 데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3월 23일자에 발표됐다.
롭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그가 신경장애 환자들이 보관하는 뇌조직 은행의 이사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경장애 환자들의 뇌 조직은 사망 후 혹은 간질 등의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수술 시 수집돼 보관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간질을 치료하기 위한 특정 수술 중에는 간질성 뇌 조직을 제거해야 발작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뇌 조직이 병리학적 진단용만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일부 조직은 이번과 같은 연구에 사용되기도 한다.
롭 교수는 “이제 어떤 유전자와 세포 유형이 사후에 안정적이거나 기능이 저하되며, 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됐다”며 “사후 변화를 최대한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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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3-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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