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컴퓨터 과학과 교육
잉글랜드는 19, 20세기를 거치며 컴퓨터과학 분야 발전에 큰 공헌을 한 찰스 배비지, 앨런 튜링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컴퓨터 산업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컴퓨터 산업 및 교육으로의 투자도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컴퓨터 과학, 정보기술, 디지털 소양 등 다양한 주제들을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ICT)이라는 넓은 과목으로 묶으면서, 그 중요성이 감소하고 교육 내용도 사무용 프로그램 사용법 습득에 치중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앞둔 2011년, 교육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고브는 당시 영국의 컴퓨팅(ICT: 정보통신기술)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필요와 도전정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오래된 교육이라고 비판하며 개혁의 불씨를 당겼다. 다음 해, 350년 역사의 과학기술 전문가 단체인 런던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에서는 "종료, 또는 재시작? 영국 학교 컴퓨팅 교육의 방향" 보고서를 출간하며 비전공 교사들이 컴퓨팅의 기초적인 내용만을 다루며 수업하는 현실의 개선을 주문하였다. 그 결과 2013년 개정 국가교육과정(현행)에서 컴퓨터 과학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컴퓨팅(Computing) 교과가 새롭게 도입되었다. 의무교육 전체 기간에 걸친 컴퓨팅 교과의 학습목표는 다음과 같다.
- 추상화, 논리, 알고리즘 및 데이터 표현을 포함한 컴퓨터 과학의 기본 원리와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다.
- 컴퓨터 용어로 문제를 분석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실제 경험을 반복하여 가질 수 있다.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거나 익숙하지 않은 기술을 포함한 정보 기술을 분석적으로 평가하고 적용할 수 있다.
- 책임감 있고 유능하며, 자신감 있고 창의적인 정보통신 기술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잉글랜드 초등학교 저학년의 컴퓨팅 교육과정과 실제
잉글랜드의 의무교육 편제는 초등학교 6년(핵심단계 1-2, 5-11세), 중등학교 5년(핵심단계 3-4, 11-16세)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서 컴퓨팅 과목은 체육 과목과 같이 의무교육 전반에 걸쳐 반드시 배워야 할 기초(foundation)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초등학교 1-2학년(5-7세)이 배우는 컴퓨팅 교육과정은 ①알고리즘과 프로그램 실행, ②간단한 명령어 작성 및 오류 검출(debugging), ③실행 결과 예측을 위한 논리적 추론 사용, ④디지털 콘텐츠 활용, ⑤학교 밖 정보기술 탐색, ⑥온라인 안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5세부터 알고리즘을 학습하고 명령어를 작성하는 것은 한국의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실제 잉글랜드 공립학교의 교육과정 편성표를 살펴보면 국가 교육과정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잉글랜드 남동부 사우샘프턴에 위치한 페어라일 초등학교(Fairisle Junior School)의 사례를 바탕으로 학교 수준에서의 컴퓨팅 교육과정 적용 양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학년 1학기에는 이메일, 블로그 사용 및 그림 도구와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하여 간단한 그리기와 문장 작성을 익힌다 2학기에는 기본적인 알고리즘의 개념과 명령어로 지시하는 법을 배우고, 3학기에는 온라인 학습 플랫폼인 퍼플매쉬(Purple Mash)를 활용하여 알고리즘 작성, 결과 예측, 오류 수정 등의 과정을 학습하게 된다.
2학년에는 1학기에는 네덜란드의 화가인 몬드리안의 그림을 습작하며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는 법을 배우며, 2학기에는 17세기에 일어난 런던 대화재 사건을 시간적 순서대로 재배열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작성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이러한 학습 활동 속에서 알고리즘의 행동 양식을 예측하기 위해 논리적 추론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움과 동시에, 런던대화재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익힐 수 있다. 이처럼 초등학교 수준에서 컴퓨팅 교육과 예술과 역사, 사회에 관한 교육을 융합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잉글랜드의 컴퓨터 교육 개혁이 주는 교훈
지난 10여 년에 걸친 잉글랜드의 컴퓨터 교육 개혁 과정에는 몇 가지 눈여겨볼 요소들이 있다.
첫째는 컴퓨터 교육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학교와 학생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중등학교 졸업자격시험(GCSE: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의 과학 영역에서 물리, 화학, 생물과 더불어 컴퓨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국가 수준 시험의 중요성이 높은 영국의 교육제도에서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컴퓨팅 과목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둘째로는 개혁 과정에서 전문성을 가진 외부 비영리 기관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국 컴퓨팅 학회(British Computer Society), 요크 대학교 STEM 학습센터(STEM Learning), 라즈베리 파이 재단(Raspberry Pi Foundation) 등이 교육부와 협력 하에 다양한 컴퓨터 교육 자료 및 교사 연수 등을 개발 및 제공하고 있다.
- 사우샘프턴대학교 교육학과 박원용 조교수
- 저작권자 2023-11-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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