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백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많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고, 잘못된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백신 이야기’를 총 15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백신의 주성분은 어디까지나 ‘항원’이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여기에 대응해 항체를 만들도록 유도하고, 이 과정에서 ‘후천성 면역’을 얻을 수 있어야 백신으로서 가치가 있다. 다만 이때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를 그대로 이용하기 어려우니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과학자와 의료인들은 이 과정에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다양한 백신을 개발해 오면서 전통적인 개발법으로 한계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병원체를 일부 조작하는 것만으로 항원을 만들 수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항원으로 작용하면서도 안전한 단백질 입자를 ‘실험실에서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 이른바 ‘재조합 백신’이다.
유전자 편집기술이 낳은 신기술
백신용 항원을 얻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병원체를 가공해 사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인데, 독성을 중화시켜 만든 약독화 백신(생백신), 증식을 억제한 불활성화 백신(사백신) 등이 주로 사용돼 왔다. 그 이후 과학이 발전하며 ‘유전자 편집 기술’이 개발되자 전통적 방법으로 부족함을 느끼던 과학자들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인간이 동물ㆍ식물,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을 얻게 되면서 이 방법을 백신 개발에 적용하는 기술이 다양한 방향에서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그 뿌리에 있는 기술이다. 이름 그대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새롭게 조합하고, 그 결과 원하는 물질을 부산물로써 생산하도록 만드는 기술을 뜻한다. 이 기술을 써서 백신을 만든 것을 흔히 '재조합 백신'이라고 부른다. 주로 세균 등을 이용하며, 드물게 식물이나 동물의 세포를 배양해 사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항원 물질, 즉 단백질을 부산물로 내놓으면, 이를 정제해 백신으로 쓸 수 있다. 보통 ‘재조합 단백질 백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재조합 기술은 백신뿐 아니라 의학계를 포함해 다양한 인간의 연구 및 생산활동에 쓰이는 중요 기술이다. 재조합 기술은 현대 분자생물학의 기본적인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데, DNA를 분리, 조작하여 세포나 생물 내에 도입하고, 그 DNA를 늘려나가는 과정을 총칭한다. 생명체는 대사과정에서 내놓는 부산물(동물로 치면 땀이나 분변 등과 유사) 중 일부는 인간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유전자를 조작하기 편리한 대장균이나 곤충 등의 세포를 이용해 처음부터 원하는 종류의 유효성분을 최대한 대량으로 얻어내는 과정을 연구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미 백신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활동 전반에서 검토되고 있는 기술인 셈이다. 이 기술을 일반적으로 재조합 DNA 기술이라고 부르며, 재조합 DNA 기술로 항원, 즉 단백질 생산이 가능한 미생물을 만들어 백신을 만든 것이 흔히 재조합 백신이라고 부른다. 간혹 재조합 백신이라는 단어를 바이러스 자체의 유전자, 혹은 우리 몸속 세포 그 자체를 편집하는 핵산 백신과 뜻을 혼용하는 경우가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도 이 경우 역시 유전자를 재조합(편집)하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조합 백신’이라고 하면 보통 이같은 과정을 거친 '재조합 단백질 백신'을 뜻한다.
재조합 DNA의 제조과정에선 대장균이나 세포의 유전자 기능을 확인한 다음, 효소 등으로 필요한 부분, 백신의 경우 병원체의 DNA가 가지고 있는 항원 결정기의 정보를 잘라 삽입해 배양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백신뿐 아니라 다양한 물질의 생산이 두루 가능하다. 인슐린의 대량생산도 재조합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밖에 유전자변형작물(GMO) 개발, 연구용 유전자 전환 동물 개발 등도 모두 이 기술이 기본이다. 응용할 경우 꼭 단백질만 생산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화학적으로 생명체가 생산할 수 있는 부산물은 대부분 기대할 수 있다. 국내에선 KAIST 이상엽 교수 연구진이 미생물의 유전자를 편집해 석유를 얻는데 성공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렇게 만든 재조합 백신은 안정적이며 효과도 비교적 확실해 백신 개발과정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이 방법으로 개발된 백신으로는 B형간염 백신이나 자궁경부암 (인유두종바이러스) 백신 등이 유명하며, 모두 과거 약독화 백신이나 일반적인 불활성화 백신으로 대응이 어려웠던 것들이다. 과거 극복이 어려웠던 질병을 인류가 통제할 수 길을 재조합 백신으로 열어온 셈이다.
‘노바백스’사의 코로나19 백신 개발법
재조합 백신은 살아있는 병원체가 아니며, 병원체를 억지로 불활성화시키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굳이 구분한다면 큰 줄기에서는 불활성화 백신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는데, 불활성화 백신의 구분 방법 중 ‘바이러스 또는 세균의 일부 성분만 이용하는 ‘분획화 백신(fractional vaccine)’이 있기 때문이다. 불활성화시킨 병원체 중, 전체가 아니라 면역에 필요한 일부 성분만을 분리해서 사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재조합 백신의 개발 목적 자체가 면역을 얻는데 필요한 성분만을 선택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라 결과적으로 같다고 보는 것이다. 이른바 서브유닛백신(Subunit Vaccine), 아단위단백질백신(Protein Subunit Vaccine) 등의 용어도 대부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재조합백신은 면역에 꼭 필요한 성분만 선택적으로 생산해 사용하게 되므로 일반적인 불활성화 백신보다 안전성이 뛰어나며, 엉뚱한 면역이 생겨나는 일도 드물어 효과도 더 확실하다. 다만 살아있는 병원체가 아니므로 몸속에서 병원체가 계속 증식하면서 면역체계와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강력한 면역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즉 원리만 놓고 보면 약독화 백신보다 면역 효과가 떨어지고, 불활성화 백신보다는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면역증강제(알루미늄염 등)를 같이 맞는 경우가 많으며, 2회 이상 접종을 받는 식으로 약점을 극복한다면 면역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코로나19 백신중에서는 ‘노바백스’ 백신이 이 구분에 속한다. 노바백스 백신의 면역 성공률은 90.4%로 나타나 주목받고 있다. 6월 14일(현지시간) 노바백스는 “미국과 멕시코에서 2만 9,960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한 결과, 90.4%의 예방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95%를 오고가는 화이자나 모더나 사의 백신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지만, 이미 변이바이러스가 상당히 퍼진 상황이어서, 경우에 따라서는 더 효과가 뛰어나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불활성화 백신중에는 50%대의 낮은 예방률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대단히 효과가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노바백스 백신은 코로나19가 우리 몸속에서 세포에 침입할 때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항체로 사용한다. 대부분의 코로나19 백신과 마찬가지이다. 이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나방과의 곤충 세포의 DNA를 재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곤충만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하는 DNA구조를 끼워 넣은 다음, 이 바이러스를 나방에 감염시켰다. 나방의 몸속 세포를 스파이크 단백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 단백질을 정제, 추출한 다음 식물에서 추출한 사포닌을 면역증강제로 추가해 백신을 만들었다. 백신의 유효성분 중 일부를 식물 유래 사포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코로나19 백신과 달리 영하 수십도의 초저온 보관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영상 2~8도 냉장 보관으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국내에서도 이 방법으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는 곳이 있다. 노바백스를 국내에서 위탁 생산하고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도 자체적으로 코로나19용 재조합백신을 개발 중인데, 이미 임상에 들어가 있다. 이 방법 역시 스파이크 단백질을 항원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조합 백신은 처음 개발이 진행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이제는 ‘전통적인 기술’로 구분될 정도이다. 그러나 DNA의 개념이 알려진 후 개발된 방법으로, 백신의 긴 역사중에서는 어엿한 첨단기법에 들어간다. 검증된 역사와 함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백신 개발 방법으로 꼽히는 이유다.
- 전승민 과학기술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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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6-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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