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인해 인류 문명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했지만, 그로 인해 나타난 부작용의 폐해는 고스란히 지구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류가 지구 환경을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구의 환경오염에 대한 각성은 자원순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결국 폐기물을 줄이고(Reduce), 재사용(Reuse)하며, 재활용(Recycle)하는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은 좋았지만 폐기물을 줄이고, 재사용하며, 재활용하는 3R 방식은 질과 가치가 떨어지는 다운사이클(downcycle)에 불과했다.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을 더 악화시키지는 않았지만, 개선을 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지구가 가진 병이 나으려면 보다 새로운 폐기물 활용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인류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좀 더 발전된 개념을 고안하게 되었다. 바로 버려지는 자원에 디자인을 더하거나, 자원의 물성(物性)을 변화시켜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사이클(upcycle)’이다.
리사이클에서 업사이클로 진화하는 자원 활용
업사이클 방식이 자원 활용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을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가령 버려지는 폐자원을 모아 조형물을 만든다든지, 폐자원 재질을 그대로 살린 생활용품을 만드는 정도로 그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첨단 기술을 접목하여 아예 폐자원의 물성 자체를 바꿔 버리는 방식으로 업사이클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하나인 PET를 부가가치가 높은 열경화성 플라스틱인 FRP로 변환한 사례가 꼽힌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립재활용에너지연구소(NREL)는 PET 소재에 생물학적 단위체(monomer)를 첨가해서 보다 고부가가치 소재인 섬유강화플라스틱(FRP)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NREL의 관계자는 “FRP는 PET 보다 훨씬 비싸고 가치가 높은 소재”라고 소개하면서 “가볍고 단단한 소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FRP를 사용할 수 있어서 활용도도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PET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다. 투명하고 가벼우며 물과 액체를 담는데 유리한 특징이 있어서 생수나 음료수 병은 물론 각종 용기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면에 비닐봉지와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범으로 불릴 정도로 버려지는 양이 엄청나다. 폐기되는 양이 많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제대로 분리수거를 해서 재활용을 한다 하더라도 유리병이나 캔처럼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점이다.
PET를 모노머와 결합시켜 FRP 제조
플라스틱은 원래 한번 성형한 제품도 열을 다시 가하면 재성형이 가능한 소재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PET병이나 플라스틱 장난감, 또는 세제 용기 등은 열을 가하면 다시 녹아 버리는데 이런 성질을 가진 플라스틱을 ‘열가소성 플라스틱(thermoplastic)’이라 부른다. PET를 비롯하여 PVC와 PE 등이 대표적인 열가소성 플라스틱들이다.
반면에 한번 성형하면 다시 가열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플라스틱도 있다. 바로 ‘열경화성 플라스틱(thermosetting resin)’으로서 한번 굳으면 열을 가해도 녹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다.
실리콘 수지와 에폭시 수지, 그리고 폴리에스테르 수지 등이 대표적인 열경화성 플라스틱들로서 튼튼하면서도 열과 진동에 강하기 때문에 자동차나 전자제품 등의 소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처럼 가격대가 높은 제품에 주로 사용되다 보니 열경화성 플라스틱의 가격은 열가소성 플라스틱에 비해 훨씬 비싼 편이다. 가격이 비싼 이유로는 공정상의 차이가 가장 크지만, 열가소성 플라스틱들처럼 재활용을 할 수 없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 상황 때문에 저렴해서 마구 버려지는 PET를 자동차 부품이나 풍력발전소의 날개, 또는 서핑보드 등에 사용하는 FRP로 변형시키는 NREL의 연구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NREL의 연구원인 ‘그렉 베컴(Gregg Beckham)’ 박사는 “PET는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이지만, 근본적으로 ‘다운사이클’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라고 밝히며 “재활용한 제품은 원래 가치보다 더 낮을 수밖에 없으며, 재활용 빈도도 1~2회 정도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NREL의 발표에 따르면 연구진이 개발한 방식은 원래 PET보다 2~3배 더 가치 있는 FRP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산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도 각각 57%와 40% 정도 감소시키는 것으로 예측되었다.
물론 PET의 업사이클 과정이 상용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려면 아직 많은 숙제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시급한 숙제로는 PET가 식물 기반 모노머와 결합될 때 발생하는 복합 재료의 특성을 추가로 분석하고, 최적의 제조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생산 공정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현재 PET의 업사이클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는 베컴 박사는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PET를 이용해서 더 유용한 물질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 프로젝트의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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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3-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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