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800명, 오스트리아 빈 600명, 이탈리아 피사에서 500명이 하루 만에 죽어나갔다.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오한과 발열, 두통, 근육통 등의 증상과 함께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사망하는 끔찍한 전염병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어떻게 해서 죽음에 이르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은 교회로 달려가서 기도에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남유럽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을 휩쓴 이 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의 약 1/3이 사망했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기도가 결코 병을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신권은 하락한 대신 노동자의 임금은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진 탓이다.
농촌을 버리고 떠나는 농노들이 늘어나면서 영주들의 중세 봉건 경제는 몰락했다. 대신 왕권과 정부의 힘은 강화됐다. 흑사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검역 및 여행 증명서 발급이 시작되면서 중앙집권적인 행정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부를 축적한 거대 자본가 계급이 등장했으며, 그들의 후원으로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토양이 형성됐다.
코로나19처럼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한 전염병은 지난 100년 동안 없었다. 따라서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는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미국 외교의 거두로 통하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코로나19가 세계 질서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대비한 계획에 착수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기존 교육업계의 패러다임 변화
그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과학기술 분야의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미국에서 인기 1위를 달리는 비디오 콘퍼런스 앱 줌(Zoom)은 지난달 말 사상 최고치의 주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덕분에 화상회의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분이다.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원들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지 못한 채 원격수업을 해야 하는 학생들도 줌을 이용하면서 월간 이용자는 약 1300만 명에 달했다. 덩달아 화상회의에 필요한 웹캠, 스피커, 컴퓨터 등의 주변기기 매출도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구글에서는 ‘홈스쿨링’에 대한 검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와 더불어 온라인 교육 콘텐츠 및 각종 온라인 교육 플랫폼의 사용량도 급증했다.
이 같은 원격수업의 급부상으로 최근 들어 ‘에듀테크(EduTech)’가 재조명되고 있다. 교육과 기술의 합성어인 에듀테크는 한마디로 정보기술과 교육의 화학적 결합을 의미한다.
즉, 교육 콘텐츠 및 하드웨어와 같은 기본적 요소 외에 학습 알고리즘, 평가 및 분석 도구, 소통을 위한 협력 도구 등 기존의 온라인교육보다 그 범위가 더 넓다고 보면 된다.
글로벌 교육시장 정보조사업체인 HolonIQ는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융합되면서 앞으로 에듀테크 시장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성장에 다른 교육의 디지털화는 기존 교육업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젠 산업용 로봇보다 서비스 로봇
지난 3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원격의료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고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원격의료가 현실화되고 원격의료를 위한 기기의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격진료 검사가 활성화되면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경우 낮은 위험군에 있는 사람들의 불필요한 방문을 방지해 고위험군 환자들을 위한 진료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원격진료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는 방역이 집중되던 지난 2월 초 서비스 로봇이 공공위생 사업에 투입되면서 주목을 끌었다. 중국 인공지능산업발전연맹에 의하면 코로나19 방역 기간에 중국 전체 음성 로봇 중 54%가 하루 100만 회 이상 사용되었다.
코로나19 AI 방역지원 정보 플랫폼으로 수집된 500여 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서비스 로봇이 상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서비스 로봇이란 산업용에 한정되어 있던 로봇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한 것을 말한다.
그간 서비스 로봇은 가사 및 교육용 등에 많이 활용되었으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배송, 방역소독, 순찰 분야에서의 활용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서비스 로봇은 한 가지 기능이 탑재된 제품이 아니라 소독, 온도 측정, 마스크 착용 여부 감시 등 멀티형 제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산업용 로봇보다 서비스 로봇이 차세대 혁신 산업으로 각광받게 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키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디지털화다. 디지털화가 되려면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로봇, 3D 프린팅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이 5세대 이동통신(5G) 도입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코로나19가 4차 산업혁명을 더욱 빨리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0-04-24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