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을 대표하는 자연을 꼽는다면 하늘과 바다이다. 하지만 식물의 세계에서 파란색은 흔치 않다. 최근 과학자들은 파란 꽃 색이 드문 원인을 해석하면서 식물종 유지를 위해 곤충이 선호하는 색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혔다. 이 리뷰 논문은 과학저널 ‘식물과학 프론티어(Frontiers in Plant Science)’에 수록됐다.
논문 주저자인 호주 멜버른 대학의 애드리안 다이어 박사는 “‘왜 자연에서 푸른색 꽃이 자주 관찰되지 않는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원인을 해석하면서 꽃 색깔의 진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파란색은 인간과 다른 동물의 시각 체계가 작용하고, 종의 번식이라는 이점을 얻기 위해 수분 매개자를 유혹하는 식물의 선택적 진화라는 결론이다.
꽃 색소, 여러 원인에 따라 변화
연구진은 “파란 꽃의 희귀성을 조사하려면 파란색 색소의 진화와 수분 매개자가 색을 인식하는 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알려진 바로는 꽃 색은 플라보노이드(flavonoid) 계열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의 화학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안토시아닌은 탄소 6개의 육각형 고리 3개가 이어진 형태인데, 각 고리에 어떤 물질이 붙느냐에 따라 색이 결정된다.
보통의 파란 꽃에는 델피니딘(delphinidin) 기반의 안토시아닌이 포함됐다. 안토시아닌이 포함된 액포의 산성도(pH)가 약산성이나 중성일 때 청색으로 바뀐다. 또 플라보놀(flavonol)이나 플라본(flavone) 등의 색소도 같이 작용해 철, 마그네슘, 칼슘 이온 등의 금속 이온과 복합체를 만들어 푸른 꽃을 생산한다.
하지만 식물이 파란색을 띠기 위해선 복잡한 화학적 경로가 필요하다. 6개의 안토시아닌이 동시에 발생해 2개의 중앙 금속 이온 주위로 고리를 형성해야 한다. 식물 내 파란색 착색 표현을 억제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꽃은 색소를 조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경로체계를 갖고 있다.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나팔꽃에서 색소 물질이 변화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안토시아닌 생산은 온도, 자외선 강도, 산성도, 스트레스에 의한 상처에 영향을 받는다. 토양의 낮은 산성도, 알루미늄 이온 증가는 일부 식물 종에서 파란색으로 변화를 유도한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서식지 교란 등의 환경에서 식물 종이 빈약한 곳보다는 풍부한 곳에서 푸른 꽃 비율이 증가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알려진 상태다.
꿀벌, 파란색 등의 단파장에 민감
계통학적으로 알려진 파란색 꽃의 수는 1만4038 속씨식물 속 중 372개로 알려진다. 식물 속성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국제 식물형질데이터베이스(TRY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수집된 1만 437종의 식물 중 중 파란색 특성을 띤 식물은 772종으로 약 7%에 불과하다.
인간이 색을 판별하는 파장은 약 420, 530, 559 나노미터로 각각 파랑, 빨강, 녹색 파장을 흡수하는 광수용체를 통해 인식한다. 반면, 수분을 매개하는 꿀벌, 땅벌 등은 자외선(UV), 청색, 녹색에 민감한 광수용체를 갖고 있다. 인간이 인식하는 파란색과 비슷한 단파장으로 반사하는 색에 선천적으로 선호하는 특성을 가졌다.
뉴질랜드에선 1500m의 높은 고도에서 서식하는 꽃은 인간의 눈으로는 흰색으로 인식되어왔다. 최근 연구에서 인간의 눈에 흰색 꽃은 실제론 자외선을 흡수한 청록색 범주의 색으로 꿀벌이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보고됐다. 인간의 시각 체계로 확인된 파란색 꽃은 전체 식물 30만종 중 10%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캘리포니아대 니콜라스 와서 박사는 파랑의 델피늄 식물이 흰색 꽃보다 꿀벌의 방문이 높은 현상을 보고 의문을 가졌다. 그는 파란색 물감으로 꽃 색을 조작하니 꿀벌과 새의 방문 빈도가 높았다. 독일에서는 파란색 꽃이 다른 색 꽃보다 수분 매개자에게 더 높은 보상을 준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즉, 꿀벌이 단파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타고난 내력에 있다. 꿀벌이 목표로 하는 단파장의 색을 선택함으로써 자연 속에서 장파장 반사 시 발생하는 방해 신호 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벌의 시각은 배경색과 대비되는 파란색 꽃을 선호하도록 진화를 해왔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열악한 환경일수록 꽃은 파란색 띤다
꽃은 꽃가루 매개동물을 유인하는 특성이 있는 광고판과 같다. 리뷰 논문에서는 식물의 서식지 환경에 따라 꽃색이 달라진다고 보고했다.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자생하는 뚜껑별꽃(Lysimachia arvensis)의 경우 파랑과 붉은색 등 두 종류 색깔의 꽃이 있는데, 파란색 꽃이 붉은색보다 건조한 환경에서 번식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파란색 꽃이 봄철 강수량이 적은 해에 씨앗 생산이 높아 환경이 열악할수록 꿀벌의 선호도가 높았다. 과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식물은 꿀벌이 좋아하는 푸른색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네팔의 아열대 지역은 고산대일수록 꽃 색이 다양한데, 짧은 파장의 파란색으로 색이 이동하는 변화를 보여준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고산지대라는 가혹한 환경은 수분매개자에게도 좋은 환경은 아니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식물이 번식을 위해선 수분매개자를 유혹할 효율적인 색상 신호를 가졌어야 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와 인간에 의한 토지개간 등은 파란색 꽃 피는 식물을 위협하고 있다. 스칸디나비아와 북유럽 목초지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푸른 꽃색을 띠는 용머리, 제비꽃, 수레꽃, 캄파눌라, 용담 등 기존에 서식했던 초화류가 사라졌다. 초원이 농토로 바뀌면서 토양에 질소와 인 함량이 증가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과학자들은 1992년에 푸른 꽃 식물은 질소와 인 함유량이 낮은 푸른색 꽃 목록을 제공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푸른 색 꽃이 건강한 토지 생태계의 지표종으로 작용할 가치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이어 박사는 논문에서 “파란 꽃 색은 복잡한 자연환경에 존재한다”며 “앞으로도 꽃 색 신호에 영향을 미치는 생물학적, 비생물학적 요인을 고려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정승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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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3-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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