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 미국의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 환자 티모시 레이 브라운이 사상 최초로 AIDS 완치 환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1995년에 AIDS에 걸린 그는 골수성 백혈병까지 함께 앓아 한때 사경을 헤매는 등 중태에 빠졌다. 의료진은 그를 위해 화학요법은 물론, 줄기세포 골수 이식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운은 시력 상실, 기억력 감퇴 등 갖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뒤 검진을 받은 결과, 브라운의 몸에서는 AIDS 병원체인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가 모두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그의 몸에 이식된 줄기세포 기증자가 HIV에 저항성을 가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CCR5 델타 32'로 명명된 이 유전자는 유럽에 거주하는 백인의 10%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몸 안에 있던 백혈구들을 박멸하는 과정에서 HIV에 감염된 혈구가 많이 파괴된 것도 완치에 기여했다.
이 결과는 지난 2008년 독일의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지만 당시에는 완치가 아닌 지연일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작년 12월까지도 재발하지 않아 완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브라운의 사례는 올 5월 공식 완치 사례로 기록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이제까지 완치의 희망을 버리고 있던 전 세계 3천300만 AIDS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인체 면역세포의 손실
AIDS라는 질병의 존재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의해 최초로 확인된 것은 지난 1981년. 그리고 HIV가 그 병원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83년. 그러므로 그 실체가 정확히 알려진 지는 약 30년이 지났다. 한동안은 '아, 이젠 다 살았다(Ah~ Ijen Da Salatda)'의 약자라는 농담이 돌았을 정도로 '걸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던 질병이다.
그것은 이 질병의 병원체인 HIV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하는 특성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HIV는 인체 면역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조 T세포와 같은 'CD4+세포'를 감소시킴으로써 AIDS를 일으킨다.
보조 T세포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전체 림프구 중 약 28~59% 정도를 차지한다. CD4+세포의 감소로 면역체계가 약화되며 기회감염 또한 증가한다. 외부의 자질구레한 세균은 물론이고 암과 같은 질병과 맞서 싸울 힘을 잃게 되는 셈이다. CD4+세포의 감소는 AIDS의 급성기와 만성기에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급성기의 경우, CD4+세포의 감소 원인은 주로 HIV가 유발한 세포용해 등으로 파악된다. 세포용해란 세포의 표면막이 기능을 상실해 그 내용물이 용해되는 현상을 뜻한다. 만성기의 경우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낼 능력이 저하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조 T세포의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AIDS 감염 후 수년간은 외양상의 특별한 면역 결핍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감염자의 CD4+세포의 손실은 감염 첫 주에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는 인체의 림프구 대다수가 모여 있는 장 점막에서 그 수준이 가장 심각하다.
그 이유는 점막에 있는 CD4+세포의 대부분에서 CCR5 보조수용체가 나타나는 데 비해, 혈류 속의 CD4+세포는 CCR5 보조수용체를 덜 나타내기 때문이다. CCR5 보조수용체는 급성 감염 시 HIV가 찾아 없애는 표적이다. 이때 인체에서는 강력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며 AIDS의 임상 잠복기가 시작된다.
CD4+세포는 감염 시기 내내 계속 감소된다. 한편 HIV는 증식을 계속하므로 환자의 몸 안에서는 잠복기 중에도 면역 활성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면역 활성화는 면역세포 증대와 인체의 방어체계를 제어하고 자극하는 당단백질인 사이토카인 방출량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HIV의 유전자산물 활동과 HIV 복제에 대한 반응이다. 또한 여기에는 급성기 동안 점막 CD4+세포의 감소로 인한 점막방벽의 면역 체계 붕괴도 한몫을 한다. 이로써 장내 미생물이 크게 늘어나고, 장 점막의 면역 체계가 장내 미생물을 만나 급격히 활성화되면 T세포도 다시 활성화돼 그 수가 증가하게 된다. HIV는 바로 이들을 공격·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HIV가 CD4+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면역 체계의 활성화 시 CD4+세포의 자살 경향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CD4+세포의 주요 감소 원인이다.
물론 가슴 위쪽에 있는 흉선에서 새로운 T세포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흉선 세포가 HIV에 감염될 경우 T세포의 생산능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결국 T세포 수가 충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수 이하로 떨어지면 결국 AIDS가 발병하는 것이다.
줄기세포 요법의 도전
현재 가장 유망한 AIDS 치료법으로는 1995년 개발된 고 활성 항바이러스 요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이 있다. 이는 HIV 질환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데 획기적인 효과를 보인다.
HAART 요법은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NRTI)와 비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 및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PI)와 같은 항바이러스제제를 병합하여 투여, HIV의 증식을 최대한 억제하는 요법이다. 2가지 NRTI 약물에 1~2가지 PI 약물을 함께 투여하거나, 2가지 NRTI 약물에 1가지 NNRTI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그동안 에이즈 치료제의 주류를 이루었던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의 치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능의 약물을 꾸준히 개발했다. 2007년부터 새로운 형태의 에이즈 치료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해 7월 처음 등장한 메라바이록 성분의 셀젠트리는 최초로 병원체인 바이러스가 아닌, 감염에 관여하는 숙주세포의 수용체 작용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2월 FDA의 승인을 받고 시판된 랄테그라빌 성분의 이 센트레스는 HIV에서 역전사 된 DNA가 숙주 세포의 유전자 안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그러나 HAART 요법도 한계는 있다. AIDS의 완치는 불가능해 비싼 약물을 계속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약점이다. 그러므로 브라운에게 사용된 줄기세포 이용 요법은 기존 요법의 이러한 한계를 딛고, AIDS를 완치시키기 위한 도전이었다.
앞서 밝힌 대로 HIV는 T세포의 CCR5 보조수용체를 표적으로 삼아 목표 세포에 침입한다. 물론 다른 통로로 침입하는 HIV 변종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염 초기에는 CCR5 보조수용체를 사용한다. 그런데 CCR5 보조수용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결실 돌연변이인 CCR5-델타32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는 32bp 분절이 결실되어 있어 T세포 표면에 CCR5 단백질을 형성하지 않는다. 즉 HIV가 쳐들어올 틈새를 주지 않는 것이다. 현재 북유럽인 중 10%에서 발견되며,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유전자는 과거 페스트의 창궐 시 자연 선택에 의해 이들의 몸에 남겨진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영국 리버풀대 생명과학과의 크리스토퍼 던컨 교수와 수잔 스코트 교수가 지난 2005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직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CCR5-델타32 유전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중세시대 거의 100%의 치사율을 갖춘 페스트가 오직 유럽 지역만을 강하게 강타했고, 그로 인해 유전자 돌연변이가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4년 펴낸 책 '흑사병의 귀환'에서 1347~1660년 유럽을 덮친 페스트는 CCR5를 통해 면역체계에 침투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열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질병은 이후 선택압력을 크게 높여 페스트 이전에 2만분의1이던 돌연변이 출현확률을 현재와 같은 10분의 1로 높였다고 주장했다.
가설의 실증
한편 CCR5-델타32 유전자는 T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지만 동시에 이들을 천연두나 HIV로부터 지켜주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CR5-델타 32를 가진 사람의 CCR5 보조수용체는 보조수용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HIV의 세포 내 침입을 막는 효과가 있다.
이 대립 유전자 한 쌍을 지닌 사람은 HIV 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높아진다. 여러 연구들에서는 똑같이 HIV에 감염돼도 CCR5-델타32 유전자 하나가 있는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AIDS 발병이 무려 2년이나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성에 주목해 CCR5 유전자의 발현을 차단하는 내부체를 만들어 HIV 감염자를 치료하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더 이상 CCR5 단백질이 외부에 정상 발현하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된 T세포와 CCR5를 정상 발현하는 T세포가 섞여 있을 경우, 이 T세포 풀을 HIV가 공격한다면 CCR5를 정상 발현하는 T세포는 죽지만 그렇지 않은 T 세포는 계속 살아남게 된다.
이 같은 방법을 AIDS환자의 체내에서 사용한다면, 이론상으로는 환자의 체내에 있는 HIV를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앞서 말한 브라운의 몸을 통해 실험됐다.
당시 그는 골수성 백혈병 환자였고, 또한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있었다. 상당수의 AIDS 환자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암을 억제하지 못하고 발암하면 거의 즉각 사망에 이른다. 연구진은 그의 면역체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골수기증자 중 CCR5-델타 32를 보유한 사람의 줄기세포를 포함한 골수를 브라운에게 이식했다.
이식 후 600일이 지나자 놀랍게도 브라운은 건강해졌고 혈액, 뇌, 직장 속의 HIV 수치도 측정불능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이식 전에 약간 검출됐던 HIVX4도 이식 후에는 검출되지 않았다. 브라운의 CD4+ T세포는 이후에도 계속 CCR5-델타32 유전자가 만들어낸 변형 단백질을 발현했으며 정상적인 CCR5나 CXCR4 보조수용체는 발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HIVX4를 포함한 다양한 HIV 변종에 저항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식 후 3년 동안 계속 HIV에 대해 저항력을 나타냄으로써 HIV 감염이 치료됐다고 판정받은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다른 HIV 감염 환자들에 대한 이 유전자 요법의 임상실험도 개시됐다.
환자의 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CCR5- 델타32 유전자를 갖게 한 다음, 이를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해 HIV를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9 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는 이 임상실험에 참가할 32명의 HIV 양성반응 환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유전자 요법의 문제
이렇게 멋진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지만, 앞으로 AIDS 완전 정복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AIDS 완치 가능성이 열렸다고 흥분하고 있지만 브라운에게 적용된 요법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요법은 아니다.
골수 및 줄기세포 이식과 그에 앞서 원래 가지고 있던 조혈모세포를 죽여야 하는 방사선 조사는 매우 큰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같은 난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를 제대로 된 치료로 보지 않기도 한다.
또한 이론상으로는 CCR5 유전자의 정상 발현을 막으면 HIV의 세포 침입을 막을 수 있지만, 이것을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등으로 막음으로써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CCR5 유전자의 정상 발현을 막는 과정이 아무 부작용도 없이 끝난다고 해도 문제는 또 남아 있다.
HIV 유전자는 특이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번식에 필요한 정보를 DNA에 담는 데 비해 HIV는 RNA에 담는다. 따라서 HIV는 새 바이러스를 만들 때 RNA를 DNA에 먼저 복제해야 한다. HIV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독특한 단백질인 역전사효소를 갖고 있다.
역전사효소를 사용하는 HIV의 역전사 방식은 매우 서툰 탓에 부모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제대로 복제되지 못하므로 복제된 HIV는 부모 바이러스와 좀 다른 모습이 된다. 이렇게 복제된 바이러스 중 일부는 부모보다 그 기능이 떨어지기도 하나 반대로 부모보다 더욱 기능이 뛰어나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포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 중 일부는 면역체계와 치료약품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만큼 강하다. 다소 어설퍼 수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HIV의 번식 방식이 그들의 생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는 셈이다. 설령 인간이 CCR5를 완벽하고 안전하게 막는다 치더라도, 돌연변이를 일으킨 HIV 바이러스가 또 다른 통로를 찾아낼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는 HIV 바이러스의 정상적인 감염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바다. HIV는 감염 초기 전파 속도가 느릴 때는 CCR5를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또 다른 보조수용체인 CXCR4를 사용한다. 이때 환자들은 더욱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다만, HIV가 닫힌 CCR5 보조수용체를 우회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T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HIV는 여러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생성하는데 이는 CCR5 말고 다른 통로를 사용할 수 있는 돌연변이 바이러스로 만들어질 기회가 거의 없는 입자들이다. 하지만 브라운의 사례가 유전학자들에게 줄기세포 연구, 유전자 조작기술, 유전자 요법의 잠재력을 새삼 일깨워 준 것은 사실이다.
유전자 연구는 앞으로 AIDS를 정복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을 줄 것이다. AIDS를 예방하고 그 진행을 막아 완치는 물론, AIDS가 주는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여줄 것이다.
현재 HAART 요법은 너무 비싸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만약 돌연변이 유전자를 사용한 AIDS 요법이 문제점을 딛고 대중화되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난치병 치료 및 예방에 유전자 연구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브라운은 시력 상실, 기억력 감퇴 등 갖은 부작용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뒤 검진을 받은 결과, 브라운의 몸에서는 AIDS 병원체인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가 모두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그의 몸에 이식된 줄기세포 기증자가 HIV에 저항성을 가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CCR5 델타 32'로 명명된 이 유전자는 유럽에 거주하는 백인의 10%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항암치료를 받느라 몸 안에 있던 백혈구들을 박멸하는 과정에서 HIV에 감염된 혈구가 많이 파괴된 것도 완치에 기여했다.
이 결과는 지난 2008년 독일의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됐지만 당시에는 완치가 아닌 지연일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작년 12월까지도 재발하지 않아 완치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브라운의 사례는 올 5월 공식 완치 사례로 기록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이제까지 완치의 희망을 버리고 있던 전 세계 3천300만 AIDS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인체 면역세포의 손실
AIDS라는 질병의 존재가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의해 최초로 확인된 것은 지난 1981년. 그리고 HIV가 그 병원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83년. 그러므로 그 실체가 정확히 알려진 지는 약 30년이 지났다. 한동안은 '아, 이젠 다 살았다(Ah~ Ijen Da Salatda)'의 약자라는 농담이 돌았을 정도로 '걸리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던 질병이다.
그것은 이 질병의 병원체인 HIV가 인체의 면역체계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하는 특성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HIV는 인체 면역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조 T세포와 같은 'CD4+세포'를 감소시킴으로써 AIDS를 일으킨다.
보조 T세포는 림프구의 일종으로, 전체 림프구 중 약 28~59% 정도를 차지한다. CD4+세포의 감소로 면역체계가 약화되며 기회감염 또한 증가한다. 외부의 자질구레한 세균은 물론이고 암과 같은 질병과 맞서 싸울 힘을 잃게 되는 셈이다. CD4+세포의 감소는 AIDS의 급성기와 만성기에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급성기의 경우, CD4+세포의 감소 원인은 주로 HIV가 유발한 세포용해 등으로 파악된다. 세포용해란 세포의 표면막이 기능을 상실해 그 내용물이 용해되는 현상을 뜻한다. 만성기의 경우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 낼 능력이 저하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조 T세포의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AIDS 감염 후 수년간은 외양상의 특별한 면역 결핍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감염자의 CD4+세포의 손실은 감염 첫 주에 매우 심하게 나타난다. 특히 이는 인체의 림프구 대다수가 모여 있는 장 점막에서 그 수준이 가장 심각하다.
그 이유는 점막에 있는 CD4+세포의 대부분에서 CCR5 보조수용체가 나타나는 데 비해, 혈류 속의 CD4+세포는 CCR5 보조수용체를 덜 나타내기 때문이다. CCR5 보조수용체는 급성 감염 시 HIV가 찾아 없애는 표적이다. 이때 인체에서는 강력한 면역 반응이 일어나며 AIDS의 임상 잠복기가 시작된다.
CD4+세포는 감염 시기 내내 계속 감소된다. 한편 HIV는 증식을 계속하므로 환자의 몸 안에서는 잠복기 중에도 면역 활성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면역 활성화는 면역세포 증대와 인체의 방어체계를 제어하고 자극하는 당단백질인 사이토카인 방출량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는 HIV의 유전자산물 활동과 HIV 복제에 대한 반응이다. 또한 여기에는 급성기 동안 점막 CD4+세포의 감소로 인한 점막방벽의 면역 체계 붕괴도 한몫을 한다. 이로써 장내 미생물이 크게 늘어나고, 장 점막의 면역 체계가 장내 미생물을 만나 급격히 활성화되면 T세포도 다시 활성화돼 그 수가 증가하게 된다. HIV는 바로 이들을 공격·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HIV가 CD4+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면역 체계의 활성화 시 CD4+세포의 자살 경향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것이 CD4+세포의 주요 감소 원인이다.
물론 가슴 위쪽에 있는 흉선에서 새로운 T세포가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흉선 세포가 HIV에 감염될 경우 T세포의 생산능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결국 T세포 수가 충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수 이하로 떨어지면 결국 AIDS가 발병하는 것이다.
줄기세포 요법의 도전
현재 가장 유망한 AIDS 치료법으로는 1995년 개발된 고 활성 항바이러스 요법(Highly Active Anti-Retroviral Therapy, HAART)이 있다. 이는 HIV 질환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기간을 연장시키는 데 획기적인 효과를 보인다.
HAART 요법은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NRTI)와 비 뉴클레오사이드 역전사효소 억제제(NNRTI) 및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PI)와 같은 항바이러스제제를 병합하여 투여, HIV의 증식을 최대한 억제하는 요법이다. 2가지 NRTI 약물에 1~2가지 PI 약물을 함께 투여하거나, 2가지 NRTI 약물에 1가지 NNRTI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그동안 에이즈 치료제의 주류를 이루었던 역전사효소 억제제와 단백질 분해효소 억제제의 치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기능의 약물을 꾸준히 개발했다. 2007년부터 새로운 형태의 에이즈 치료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그해 7월 처음 등장한 메라바이록 성분의 셀젠트리는 최초로 병원체인 바이러스가 아닌, 감염에 관여하는 숙주세포의 수용체 작용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그로부터 얼마 후인 12월 FDA의 승인을 받고 시판된 랄테그라빌 성분의 이 센트레스는 HIV에서 역전사 된 DNA가 숙주 세포의 유전자 안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억제하는 치료제다.
그러나 HAART 요법도 한계는 있다. AIDS의 완치는 불가능해 비싼 약물을 계속 복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약점이다. 그러므로 브라운에게 사용된 줄기세포 이용 요법은 기존 요법의 이러한 한계를 딛고, AIDS를 완치시키기 위한 도전이었다.
앞서 밝힌 대로 HIV는 T세포의 CCR5 보조수용체를 표적으로 삼아 목표 세포에 침입한다. 물론 다른 통로로 침입하는 HIV 변종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염 초기에는 CCR5 보조수용체를 사용한다. 그런데 CCR5 보조수용체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결실 돌연변이인 CCR5-델타32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는 32bp 분절이 결실되어 있어 T세포 표면에 CCR5 단백질을 형성하지 않는다. 즉 HIV가 쳐들어올 틈새를 주지 않는 것이다. 현재 북유럽인 중 10%에서 발견되며,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들에게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 유전자는 과거 페스트의 창궐 시 자연 선택에 의해 이들의 몸에 남겨진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이와 관련, 영국 리버풀대 생명과학과의 크리스토퍼 던컨 교수와 수잔 스코트 교수가 지난 2005년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직 유럽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CCR5-델타32 유전자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중세시대 거의 100%의 치사율을 갖춘 페스트가 오직 유럽 지역만을 강하게 강타했고, 그로 인해 유전자 돌연변이가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4년 펴낸 책 '흑사병의 귀환'에서 1347~1660년 유럽을 덮친 페스트는 CCR5를 통해 면역체계에 침투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출혈열의 하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질병은 이후 선택압력을 크게 높여 페스트 이전에 2만분의1이던 돌연변이 출현확률을 현재와 같은 10분의 1로 높였다고 주장했다.
가설의 실증
한편 CCR5-델타32 유전자는 T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키지만 동시에 이들을 천연두나 HIV로부터 지켜주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CR5-델타 32를 가진 사람의 CCR5 보조수용체는 보조수용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HIV의 세포 내 침입을 막는 효과가 있다.
이 대립 유전자 한 쌍을 지닌 사람은 HIV 감염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높아진다. 여러 연구들에서는 똑같이 HIV에 감염돼도 CCR5-델타32 유전자 하나가 있는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AIDS 발병이 무려 2년이나 지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특성에 주목해 CCR5 유전자의 발현을 차단하는 내부체를 만들어 HIV 감염자를 치료하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더 이상 CCR5 단백질이 외부에 정상 발현하지 않도록 유전자 조작된 T세포와 CCR5를 정상 발현하는 T세포가 섞여 있을 경우, 이 T세포 풀을 HIV가 공격한다면 CCR5를 정상 발현하는 T세포는 죽지만 그렇지 않은 T 세포는 계속 살아남게 된다.
이 같은 방법을 AIDS환자의 체내에서 사용한다면, 이론상으로는 환자의 체내에 있는 HIV를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은 앞서 말한 브라운의 몸을 통해 실험됐다.
당시 그는 골수성 백혈병 환자였고, 또한 항암화학요법을 받고 있었다. 상당수의 AIDS 환자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암을 억제하지 못하고 발암하면 거의 즉각 사망에 이른다. 연구진은 그의 면역체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조직적합성항원이 일치하는 골수기증자 중 CCR5-델타 32를 보유한 사람의 줄기세포를 포함한 골수를 브라운에게 이식했다.
이식 후 600일이 지나자 놀랍게도 브라운은 건강해졌고 혈액, 뇌, 직장 속의 HIV 수치도 측정불능 수준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이식 전에 약간 검출됐던 HIVX4도 이식 후에는 검출되지 않았다. 브라운의 CD4+ T세포는 이후에도 계속 CCR5-델타32 유전자가 만들어낸 변형 단백질을 발현했으며 정상적인 CCR5나 CXCR4 보조수용체는 발현하지 않았다.
따라서 HIVX4를 포함한 다양한 HIV 변종에 저항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식 후 3년 동안 계속 HIV에 대해 저항력을 나타냄으로써 HIV 감염이 치료됐다고 판정받은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또한 다른 HIV 감염 환자들에 대한 이 유전자 요법의 임상실험도 개시됐다.
환자의 세포를 유전자 조작해 CCR5- 델타32 유전자를 갖게 한 다음, 이를 다시 환자의 체내에 주입해 HIV를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9 년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는 이 임상실험에 참가할 32명의 HIV 양성반응 환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유전자 요법의 문제
이렇게 멋진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지만, 앞으로 AIDS 완전 정복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AIDS 완치 가능성이 열렸다고 흥분하고 있지만 브라운에게 적용된 요법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요법은 아니다.
골수 및 줄기세포 이식과 그에 앞서 원래 가지고 있던 조혈모세포를 죽여야 하는 방사선 조사는 매우 큰 위험부담이 따른다.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많다. 이 같은 난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를 제대로 된 치료로 보지 않기도 한다.
또한 이론상으로는 CCR5 유전자의 정상 발현을 막으면 HIV의 세포 침입을 막을 수 있지만, 이것을 약물이나 유전자 조작 등으로 막음으로써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CCR5 유전자의 정상 발현을 막는 과정이 아무 부작용도 없이 끝난다고 해도 문제는 또 남아 있다.
HIV 유전자는 특이한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번식에 필요한 정보를 DNA에 담는 데 비해 HIV는 RNA에 담는다. 따라서 HIV는 새 바이러스를 만들 때 RNA를 DNA에 먼저 복제해야 한다. HIV는 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독특한 단백질인 역전사효소를 갖고 있다.
역전사효소를 사용하는 HIV의 역전사 방식은 매우 서툰 탓에 부모 바이러스의 유전자가 제대로 복제되지 못하므로 복제된 HIV는 부모 바이러스와 좀 다른 모습이 된다. 이렇게 복제된 바이러스 중 일부는 부모보다 그 기능이 떨어지기도 하나 반대로 부모보다 더욱 기능이 뛰어나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포를 공격할 수도 있다.
이 중 일부는 면역체계와 치료약품의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을 만큼 강하다. 다소 어설퍼 수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내는 HIV의 번식 방식이 그들의 생존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면도 있는 셈이다. 설령 인간이 CCR5를 완벽하고 안전하게 막는다 치더라도, 돌연변이를 일으킨 HIV 바이러스가 또 다른 통로를 찾아낼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이는 HIV 바이러스의 정상적인 감염 과정에서도 나타나는 바다. HIV는 감염 초기 전파 속도가 느릴 때는 CCR5를 사용하지만 나중에는 또 다른 보조수용체인 CXCR4를 사용한다. 이때 환자들은 더욱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다만, HIV가 닫힌 CCR5 보조수용체를 우회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T세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HIV는 여러 개의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생성하는데 이는 CCR5 말고 다른 통로를 사용할 수 있는 돌연변이 바이러스로 만들어질 기회가 거의 없는 입자들이다. 하지만 브라운의 사례가 유전학자들에게 줄기세포 연구, 유전자 조작기술, 유전자 요법의 잠재력을 새삼 일깨워 준 것은 사실이다.
유전자 연구는 앞으로 AIDS를 정복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을 줄 것이다. AIDS를 예방하고 그 진행을 막아 완치는 물론, AIDS가 주는 경제적 부담도 크게 줄여줄 것이다.
현재 HAART 요법은 너무 비싸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만약 돌연변이 유전자를 사용한 AIDS 요법이 문제점을 딛고 대중화되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난치병 치료 및 예방에 유전자 연구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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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8-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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