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병원체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며 살아간다. 이 같은 병원체의 침입을 감지하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생물들은 면역체계를 가동한다. 침입해 들어오는 병원체도 곰팡이와 균, 바이러스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환경에 따라 더 쉽게, 자주 노출되는 병원체가 달라지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방식도 복잡하다.
유전적으로는 침입해 들어오는 병원체들의 일반적인 분자적 특징을 감지하고 비특이적으로 작용하는 ‘선천적 면역’ 방식과, 특정 병원체 혹은 '항원'을 인식한 뒤 특이적인 ‘항체’를 만들어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 방식으로 나뉜다.
후천적 면역 방식이 작동되는 경우 방어 방식에 대한 기억은 면역체계의 ‘기억세포’에 저장되었다가 같은 병원체가 반복해 침입하는 경우 재빨리 항체를 생산해 병원체에 맞서 싸우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후천적 면역 방식은 사람을 포함한 일부 고등 생물의 경우에만 존재하고, 식물의 경우는 비특이적으로 방어하는 선천적 면역 방식만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식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곰팡이, 균, 바이러스, 기생식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병원체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특히 환경에 따라 더 자주, 쉽게 노출되는 병원체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식물의 면역 체계를 이해하기 다양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최근 토마토가 기생식물인 새삼(Cuscuta)의 침입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밝히는 분자생물학적 연구가 발표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독일의 튀빙겐 대학, 노르웨이의 트롬쇠 대학 등을 위시한 다국적 연구실 간의 합동연구로 이루어진 성과다.
새삼은 숙주식물을 파고들어 맥관을 관통해 물과 양분을 빼앗아 가는 기생식물이다. 숙주식물로는 유채꽃과 사탕옥수수, 콩, 리넨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아마(亞麻), 토마토 등이 있다. 대개의 숙주식물들은 새삼이 체내로 파고들어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토마토는 CuRe1(Cuscuta recepter 1)이라는 수용체를 통해 새삼에 대한 방어 반응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었다.
이번 연구에서는, 토마토의 이 수용체가 새삼의 침입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새삼의 단백질들을 정제해 토마토의 CuRe1 수용체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자생물학적 실험으로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전 연구에서 토마토 수용체가 인지하는 부위는 새삼의 세포벽에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이번 연구는 새삼 세포벽 추출물을 이용해 토마토의 CuRe1 수용체가 반응하는 부분을 알아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먼저 양이온 교환 크로마토그래피(cation exchange chromatography)를 이용해 토마토 수용체와 활성을 보이는 새삼 세포벽 인자를 여러 차례에 걸쳐 따로 분리해 내고, 이후 액체 크로마토그래프-다중질량분석기(LC-MS/MS)를 이용해 각각 분리된 인자의 질량을 측정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을 비교 분석해 따로 분리해낸 새삼 세포벽 인자가 모두 같은 단백질이라는 것과 그 단백질 서열의 시작 부분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 서열을 이용해 그 단백질이 GRP(glycine-rich protein)라는 것을 알아내고, 추가 연구를 통해 토마토 수용체가 인지하는 부분은 GRP에서도 ‘crip21(cysteine-rich peptide 21)’으로 이름을 붙인 21개 아미노산 모티브 부위로 특정된다는 것을 밝혔다. 토마토의 CuRe1 수용체가 바로 이 모티브를 인식해 새삼의 침입을 인식하고, 면역 반응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토마토가 여러 숙주식물에 기생하는 새삼에 거의 유일하다시피 방어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새삼을 특이적으로 알아채는 과정을 알아낸 것으로 연구진은 이것이 향후 새삼에 해를 입는 다른 작물들에게 새삼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하는 기술로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 한소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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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11-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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