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가 현재의 2배로 높아지는 등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약한 태풍 발생이 줄어 전체 태풍 발생 빈도는 감소하지만, 초속 50m 이상 강풍을 동반하는 3등급 이상의 강한 태풍은 50%가량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기후물리연구단 악셀 팀머만 단장(부산대 석학교수) 연구팀은 17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서 대기와 해양을 각각 25㎞와 10㎞ 격자 크기로 나눈 초고해상도 기후모형과 IBS의 슈퍼컴퓨터 알레프(Aleph)를 이용해 대기 중 CO₂ 농도 변화에 따른 열대저기압 변화를 시뮬레이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태풍과 허리케인 등 열대저기압은 가장 치명적이고 경제적 피해가 큰 기상재해로, 매년 수백만 명이 피해를 보지만 지구온난화가 열대저기압 발생과 세기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20여 년간 대기와 해양을 일정한 크기의 격자로 나눠 연구하는 기후모형 시뮬레이션이 진행돼 왔으나 격자 크기가 보통 100㎞ 이상으로 커 열대저기압 같은 작은 규모의 대기와 해양 간 상호작용을 상세히 시뮬레이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대기를 25㎞ 크기로, 해양을 10㎞ 크기로 3차원 격자화하고 물리·역학 방정식을 이용해 대기 중 CO₂ 농도가 변할 때 각 격자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후변동을 분석했다. 격자가 작을수록 시뮬레이션 정확도가 향상되고 작은 규모의 기상·기후 현상까지 상세히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하지만 격자가 작아질수록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계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지난해 4월 가동을 시작한 IBS 슈퍼컴퓨터 알레프 덕분에 이 연구가 가능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알레프는 데스크톱 컴퓨터 1천560대의 성능을 갖춘 슈퍼컴퓨터로 1초에 1천430조번의 연산(1.43 PF)을 할 수 있으며, 13개월간 진행된 이 연구에서 1TB 하드디스크 2천개 분량의 데이터를 생성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대기 중 CO₂ 농도가 2배 증가하면 적도 및 아열대 지역의 대기 상층이 하층보다 빠르게 가열돼 해수면에서 가열된 공기가 상승하는 '해들리 순환'이 약해지면서 열대저기압 발생 빈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 교신저자인 이순선 연구위원은 "열대 지역 기류의 상승 운동 감소는 열대저기압 발생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는 인도양과 태평양 열대저기압 발생 빈도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기 중 수증기와 에너지 증가로 인해 한번 발생한 태풍은 3등급 이상(Saffir-Simpson scale)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기 중 CO₂ 농도가 2배 증가하면 초속 50m 이상의 강풍이 부는 3등급 이상 열대저기압의 발생이 5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중 최대풍속 55㎞/s를 기록한 하이선이 3등급이었고, 마이삭은 최대풍속 49㎞/s로 2등급이었다.
또 CO₂가 현재보다 4배 증가할 경우에는 태풍 발생 빈도는 더 증가하지 않지만, 열대저기압에 동반한 강수량은 계속 증가해 비가 현재 기후 대비 약 35% 더 내릴 것으로 예측됐다.
이순선 연구위원은 "이 연구는 전 세계에서 수행된 미래 기후변화 시뮬레이션 중 격자 간격을 가장 조밀하게 해 신뢰도를 높인 것으로, 미래 열대저기압 변화가 최근 30년간 기후 관측 자료에서 발견된 추세와 상당히 유사하다"며 "이는 지구온난화가 이미 현재 기후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팀머만 단장은 ""이 연구는 미래 열대저기압 상륙에 의해 해안 지대의 극한 홍수 위험이 높아질 것임을 보여준다"며 "지구온난화가 열대저기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에는 더욱 복잡한 과정이 얽혀있어 앞으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 저작권자 2020-12-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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