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물리올림피아드의 한국 대표로 선발된 후에는 다양한 재밌는 일들이 기다린다. 한 달여간의 집중교육 기간이 그 일들 중 하나이다. 필자의 경우 이 집중 교육이 고등학교 3년 중 단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다. 집중교육 전까지는 물리에 대한 근본적인 실력을 올리는 기간이었다면, 집중교육은 실제 시험에 대해 각자가 최적화되는 기간이다.
물리올림피아드의 경우 이론 시험과 실험 시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집중교육 동안 오로지 이 두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게 된다. 필자의 경우 특히나 실험 시험을 위해 집중적으로 준비를 했다. 이 시험은 5시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고득점을 위해서는 실험 상황에 대한 빠른 이해, 빠르지만 정확한 측정,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간 분배 등 많은 요소들이 갖춰져야 한다.
최근의 기출 문제들에는 응시자가 미리 개형을 예상하기 어려운 비선형 관계의 그래프들을 그리는 실험들이 많이 나왔다. 이러한 비선형 관계의 그래프들에서는 평탄한 영역과 피크들이 존재한다. 피크와 그 주변에 해당하는 영역에서 더 촘촘하게 측정하는 것이 좋은 측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피크가 어느 즈음에 몇 개가 나올지 미리 알기 어렵다. 따라서 실험을 진행하며 전체적인 개형을 파악하고, 어느 영역에 더 집중해서 추가 측정 및 실험을 진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 때 가장 위험한 일은, 미리 전체적인 개형을 머릿속으로 예상해 놓고 이와 벗어나는 데이터 포인트들을 배제시키거나 심지어는 예상한 개형에 맞도록 조금 조작하는 일이다. 미리 예상한 바와 다른 결과들이 찍히더라도 그 데이터들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고 예상이 틀렸는지 혹은 실험 설정이 잘못됐는지 등을 유연하게 검토해야 한다. 예상과 다른 일이 일어날 때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던 기회였다.
이외에도 집중교육 때 배운 점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원하는 물리량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실험 기구들과 실험 상황이 설정되어야 한다. 제한 시간 안에 실험 설정과 이를 바탕으로 한 측정이 이루어진다. 실제 데이터가 생성되는 부분은 측정 부분이기에, 누구라도 서둘러 설정을 마치고 측정을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여러 해의 실험 기출문제를 풀어보며 느끼게 된 바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설정을 정확하고 신중하게 하는 것이 고득점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가령 설정을 엉성하게 하면, 1회 측정에 오히려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다. 반면 설정을 신중하고 안정적으로 해 놓으면 1회 측정이 금세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몇 번이나 측정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측정 1회에 드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굉장히 좋은 일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유연하게 측정 범위가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추가 측정이 필요한 경우들이 많다. 이 때 안정적이고 정확한 설정을 마친 후라면, 추가 측정에 대한 부담이 훨씬 줄어들어 더 좋은 결과 데이터로 분석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험은 물리 올림피아드의 실험 시험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재 필자는 딥러닝의 한 분야인 컴퓨터 비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 많은 분야들이 그러하듯 딥러닝에서도 효과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한 정말 많은 방법들이 연구되어 왔다. 딥러닝을 적용하는 일을 할 때에도, 특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여러 방법들을 적용하거나 바꿔보며 반복적인 실험을 하게 된다. 이 반복적인 실험들에서 매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실험 전체를 매번 새로 코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숫자 몇 개 바꾸는 수준이건, 아예 다른 학습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던, 최대한 편하게 바꿔 적용할 수 있도록 틀을 작성해 놓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물리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시간제한이 있는 상황에서도 초기 설정을 차분히 하는 연습을 해왔던 것이 현재 공부하고 있는 분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실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 참여하게 되면서 시험 외적인 부분에서도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는데, 대회 출전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고, 실제로 시험을 응시한 과정에서 좋은 분들을 굉장히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또한, 같이 출전한 친구들과는 지금까지도 계속 가깝게 지내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출전을 위해 준비하는 것은 이공계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누구라도 최선을 다 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 박성연
- 저작권자 2021-11-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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