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는 과연 언제였을까?
중세 역사가이면서 고고학자인 마이클 맥코믹(Michael McCormick) 하버드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인류역사상 가장 살기 어려웠던 해는 536년”이라고 말했다.
맥코믹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SoHP(Science of the Human Past)’를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이를 통해 과학자 등 다른 분야 학자들과 협력해 풀리지 않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밝혀나가고 있다.
지구를 뒤덮은 안개는 화산재의 영향
16일 ‘사이언스’ 지는 맥코믹 교수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이번 주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ANTIQUITY)’ 지에 게재한 논문을 소개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536년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안개(fog)가 땅을 뒤덮었다. 이때 기온이 내려가면서 536년의 연평균 온도는 1.5°C~2.5°C에 머물렀다.
비잔틴 역사가인 프로코피오스(Procopius, 490-562)가 “연중 내내 태양이 달처럼 빛을 잃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던 두려움의 시대였다.
지구 곳곳에는 재난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한여름에 눈이 쏟아졌고, 농작물이 얼어 죽었으며, 사람들은 기아에 허덕였다. 유럽의 아일랜드에서도 536년부터 539년까지 대기근이 이어졌다. 빵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러다 541년에는 흑사병의 일종인 선페스트가 로마 치하에 있던 이집트 북동부의 펠루시움을 강타했다. ‘유스티니안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라 불리는 이 흑사병은 이후 급속히 확산돼 동로마제국 절반에 이르는 인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로 인해 동로마제국의 세가 급격히 약해지고 얼마 안 있어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멸망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오랜 기간 동안 역사학자들은 6세기가 역사상 최악의 한 해였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앙을 가져온 이 안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맥코믹 교수와 메인주립대 기후변화연구소의 빙하학자 폴 메이유스키(Paul Mayewski) 교수 등이 해결했다. 이들은 스위스에서 빙하를 채취한 후 첨단 장비를 통해 지구상을 뒤덮은 안개의 원인을 추적해나갔다.
그리고 이번 주 하버드 대에서 진행된 워크숍을 통해 536년 초 대서양 아이슬란드(Iceland)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이 일어났으며 여기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가 지구 북반구를 뒤덮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540년과 547년에도 화산 폭발이 이어졌는데, 이렇게 계속되는 화산 폭발이 기후변화를 일으켜 흑사병과 같은 역병을 일으켰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유럽 경제를 파탄 몰아넣었고, 이 여파가 640년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스위스 빙하 분석, 화산암 성분 밝혀내
6세기 때의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역사학자들은 과학자들과 협력해 6세기 기후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나무에 있는 나이테 연구를 시도한 바 있다. 그리고 540년에 유례가 없을 만큼 지구 온도가 내려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3년 전에는 그린란드와 남극 빙하에서 깊이 묻혀 있는 아이스 코어(ice core)를 분석, 6세기 온도가 급격히 내려간 원인을 비교적 상세히 밝힌 이유도 밝혀졌다.
당시 대규모 화산이 폭발했으며 화산재를 통해 유황(sulfur), 비스무트(bismuth) 등의 물질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갔다는 것. 그리고 이들 고체 물질들이 공기 중에 에어로졸 막을 형성한 후 태양 빛을 막아 지구 온도를 내려가게 했다는 연구 결과다.
이어 스위스 베른대학의 마이클 시글(Michael Sigl) 교수 연구팀은 앞에서 수행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난 2500년 동안 화산폭발로 인한 기후변화가 북아메리카 등지에서 여러 번 발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지금 메이유스키 교수 등 다양한 분야 학자들이 참여한 다학제간 공동 연구를 통해 6세기 지구촌 최악의 재난의 근본적인 원인이 확인된 것이다.
이번에 분석한 빙하는 2013년 스위스 알프스 콜레 그티페티(Colle Gnifetti) 정상 72m 높이의 빙하에서 채취한 아이스 코어다. 이 얼음 속에 사하라로부터 날라 온 먼지 등과 함께 아이슬란드 화산에서 폭발한 화산재가 오랜 기간 동안 파묻혀 있었다.
메이유스키 교수는 “분석에 투입된 장비는 120μ(1 미크론은 O.001mm) 크기의 입자를 구분해낼 수 있는 초고화질 영상 분석 장치로 아이스 코어의 길이에 따라 며칠 동안 눈이 왔는지 밝혀낼 수 있을 정도의 정확도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메인대학의 화산학자 안드레이 쿠르마노프(Andrei Kurbatov) 교수는 “아이스 코어로부터 약 5만 개의 샘플을 채취해 그 안에 있는 물질이 언제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2000년 동안의 연대표를 기준으로 그 목록을 기록해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연구팀은 536년 봄 당시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급격히 냉각돼 발생한 화산 유리(volcanic glass) 파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엑스레이 분석을 통해 이 조각들이 유럽에 있는 호수와 토탄 늪에 있는 물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물질이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발생한 화산암(volcanic rocks) 성분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뉴질랜드 와이카토 대학의 지구과학자 데이비드 로외(David Lowe) 교수다.
다학제 간의 연구로 결론을 맺은 이번 연구 결과는 고고학계, 역사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관계자들은 향후 역사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오클라오마 대학의 중세‧로마사학자 카일 하퍼(Kyle Harper)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현상과 인류 역사와의 관계를 밝혀낸 매우 중요한 사례”라며 향후 역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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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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