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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0-04-02

위기 극복? ‘정확한 정보’와 ‘투명한 소통’으로 로버트 로건 박사 초청 ‘위험 커뮤니케이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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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사람들은 샤워를 그만두지 않는 걸까요?”

‘위험(risk)’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위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로버트 로건(Robert Logan) 박사가 오히려 반문했다. 지난 1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초청간담회 현장이다. 김도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위원장과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숙경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사업단장이 진행을 맡았다.

로건 박사는 미국 미주리-컬럼비아대 언론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의학도서관(NLM)에서 질병 관련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세계 최대의 의학자료를 보유한 NLM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닌, 의료·보건에 있어 대중홍보와 소통을 전담하고 있는 조직이다.

▲ 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로버트 로건 박사 초청간담회'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더 큰 위험을 막는 선제공격

로건 박사에 따르면, 위험은 인지적 개념이라서 판단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 대다수가 괜찮다고 말해도 일부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 이것이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다.

“위험에 대한 기준은 달라도 목표는 누구나 동일합니다. 사태를 정확히 이해해서 더 큰 위험을 막거나 피하자는 거죠.”

위험 커뮤니케이션은 차후에 닥칠 더 큰 위험을 막는 ‘선제공격’의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소극적인 자세로 잘못을 감추거나, 일방적으로 설득하려 해서는 사회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없다.

위험이 무서워 혜택까지 버려서는 안 돼

현대사회는 과학기술 덕분에 편리하고 자유로운 생활양식을 누리고 있다.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 이동수단이 발달하면서 생각의 범위와 속도까지 더불어 달라졌고, 상수도 등 도시 인프라의 발전으로 위생과 보건의 수준도 높아졌다.

▲ 미국 국립보건원 소속 위험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활동하는 로버트 로건 박사
그러나 과학기술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위험 요소를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크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뿐이다. 과학기술 분야에 위험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위원장은 “철을 녹이는 용광로는 석기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라며, “그러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이 철기시대를 열었다”고 설명했다.

창과 칼을 만든다는 이유로 쇠붙이 자체를 버리는 태도는 어리석다. 깎고 다듬기에 따라서 호미나 쟁기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다. 위험요소가 내포되어 있다고 해서 과학기술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부위원장의 주장이다.

IT기술 활용한 다각적인 소통 노력이 필요해

로건 박사는 지난 몇 년간의 위험 커뮤니케이션 성공사례 중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소통 노력을 첫 번째로 꼽았다. CDC는 보건기관으로서는 최초로 대중들과의 접촉을 전담한 기관으로, 최근 IT기술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중과 대화하고 있다.

CDC는 긴급상황이 발생하거나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수백만 회원들에게 이메일 뉴스레터와 초대장을 보낸다. 신종플루가 발생했을 때도 회원들은 시간을 들여 직접 검색할 필요 없이 국가기관이 제공하는 정확한 정보를 손쉽게 열람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4억명 이상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미니홈피 서비스 페이스북(Facebook)에 홈페이지를 개설해서 대학생들과도 공개적으로 대화한다. 몇 년간의 노력 끝에 이제는 학생들 사이에서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저술한 '위험사회'
책임급 연구원들은 단문블로그 서비스 트위터(Twitter)를 통해 정확한 분석 정보를 제공한다. 아이튠즈의 팟캐스트(Podcast) 서비스나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YouTube) 등 인기 사이트에 자료와 동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한다.

CDC가 이렇듯 사소한 소통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로건 박사는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중들은 더 이상 상명하달 식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언급하기 불편한 소재라 해도 솔직하게 말하고 겸허하게 듣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에 노력하는 데서 위기 극복의 해법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책을 통해 “직접 감지되지 않는데도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것이 위험”이라 정의하고,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사회적 합리성을 키워야 위험을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일방적인 태도를 버리고 양방향 소통에 노력하는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해야 할 때다.

쉽게,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설명하라

소통이 어느 한 쪽의 몫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들도 스스로 대중의 일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과학자나, 과학지식을 회피하는 대중들 모두가 노력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 올바른 위험커뮤니케이션 자세를 강조하는 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오른쪽)과 로버트 로건 박사
이어 정 이사장은 유전자변형식품(GMO)을 예로 들었다. “지금의 경작 방식으로는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아를 막을 수 없다”며, “과학기술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이 깊어지고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로건 박사는 “사회적 이슈를 대중들에게 설명할 때는 3가지 원칙이 있다”고 답했다. △ 교육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라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 모든 채널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라 △단시간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설명하라 등이다.

국제적 책임감 느껴야 진정한 선진국

마지막으로 로건 박사는 한국의 발전상을 칭찬하는 동시에 책임감을 강조했다.

“한국은 산업이나 금융 측면에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만큼, 과학대중화와 위험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더 큰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사람들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떠한 영향을 줘야 할지 고민해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정 이사장은 선진국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으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을 꼽았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원조를 받던 나라였다가 오히려 원조를 주는 원조공여국 클럽(DAC)에 가입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소개하며,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봉사와 나눔의 정신을 가지자고 역설했다.

▲ 과학기술 분야의 위험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김도연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부위원장(왼쪽)과 로버트 로건 박사
김 부위원장도 한국의 국제사회 내 역할과 책임을 강조했다. “선진국들이 200년 넘게 쌓아온 경험을 한국은 50년만에 이루었다”며, “이제는 선진국을 따라잡기보다는 겸허하고 진실된 자세로 후발국가들에게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간담회를 마치며 로건 박사는 과학자들이 직접 IT기술까지 활용하며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서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과학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심리적 부담감을 얼마나 느끼는지, 사회의 어떤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솔직히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소통은 자연스레 이루어집니다.”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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