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사람들이 짐승을 잡아먹거나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며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화한 곳을 찾아 이동생활을 하였다. 따 먹을 열매가 풍부한 지역에 이른 그들은 배가 빵빵하게 부르도록 과실을 따먹고 먹다 남은 것은 아무렇게나 놓아버리곤 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들 무리 사이에서 비상이 걸렸다! 더 이상 따먹을 싱싱한 열매가 없는 것이다. 또다시 대이동을 해야 할까. 그러나 대이동이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출발하면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험난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몇 날 며칠을 굶주리던 그들은, 얼마 전 먹다 남긴 과실이 방치되어 있음을 기억해냈다.
방치되어 있던 과실은 온화한 기후에 이미 문드러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발효가 되어 있었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들은 발효된 과실의 향긋함에 침이 고였다. 배가 고픈 판이라 비록 형태가 문드러지고 거의 액체가 된 과실이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마구 먹고 마셨다. 그런데 그들의 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상스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먹고 있는 발효된 과실마저 떨어지면 또 며칠을 굶어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그보다는 흥이 돋기 시작하였다. 몸이 덩실덩실 흔들리고, 입에서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다. 이들은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마신 발효된 과실은 바로 지금의 술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학자들이 생각하는 술의 기원이다. 우리 조상들 또한 삼국시대보다 더 오래 전부터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술을 직접 빚을 수 있었다는 내용을 고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삼국사기』에는 중국인들이 고구려인을 보고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장과 술 등 발효음식을 만들어 즐긴다”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일본 최고 역사서인 『고사기』에는 백제인 인번이 일본에 건너가 주조 기술(술 빚는 기술)을 전파하여 일본의 주신(酒神)으로 추앙받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조상들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술을 빚어 마셨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주조 기술과 음주문화는 세월을 통해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가양주가 발달하여 술 빚는 방법과 술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 가양주란 집에서 직접 빚어서 마시는 술을 뜻한다. 조선시대에 유교 문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제사가 보편화되었고, 따라서 가양주가 집집마다 만들어졌다. 물론 그들이 사용한 술의 주재료는 곡물이었다. 그러나 경동형 지형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특성상 각 지방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에 따라 사용되는 곡물의 종류와 그 밖의 부재료, 술을 빚는 방법 등이 달라졌다. 따라서 가양주를 통해 술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는 지방마다 달랐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기본원리조차 다른 것은 아니었다. 조상들은 발효라는 현상을 술을 빚는 데 이용하였다. 발효 과정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친구들이 있다. 바로 미생물에 속하는 세균과 효모, 곰팡이이다. 이 미생물들은 곡물이 발효하여 술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여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선 곡물이 술의 형태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곡물을 발효시키는 물질, 즉 발효제가 필요했다. 우리 조상들은 천연 발효제인 누룩을 술 제조에 사용하였다. 누룩은 밀이나 보리, 쌀, 녹두 등의 곡류를 사용하여 만든다. 먼저 곡류를 빻아 적당량의 물을 부어 반죽을 한 후에 틀에 넣고 잘 디뎌준다. 그 후 틀에서 뺀 누룩을 온도가 따뜻한 곳에 볏짚이나 말린 쑥 등을 덮어 일정기간 놓아둔다. 그리고 중간에 몇 번 뒤집어 주면서 고루 미생물이 번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습하고 따뜻한 기온은 많은 미생물들에게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그 다음 과정은 젖산균(유산균)과 효모, 곰팡이들이 담당할 차례. 누룩은 그 자체가 직접 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써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누룩에 생기는 미생물들은 다음 과정을 위한 준비상태에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곡물을 술로 만드는 전초전 단계라고나 할까. 누룩을 만들어 두면 제일 먼저 젖산균이 활발하게 자란다. 젖산균은 젖산을 만들 뿐만 아니라 부패균 증식의 원인이 되는 영양분을 젖산균이 먹어치워서 부패균 번식이 불가능하게 한다. 산성인 조건을 만들어 주는 데다가 영양분마저 없애니 훌륭한 자연 방부제인 셈이다. 젖산균은 불필요한 많은 세균들의 번식을 막음으로써 누룩의 향을 좋게 하고 나아가 다음 단계에도 관여해 술의 맛을 좋게 했다.
젖산균에 의해 환경이 산성이 되면 젖산균의 번식은 줄어들고 약산성에서 번식능력이 좋은 효모가 대량으로 증식을 한다. 효모는 곡물을 술로 바꾸는 단계에서 발효를 통해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한 준비로 효모가 누룩에 충분히 번식한다. 이렇게 효모가 많아지면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 호흡을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많이 생산한다. 이 에너지는 축적되고, 열로 바뀌어 결과적으로 누룩의 온도를 높이게 된다. 누룩의 온도가 적당히 올라가면 이제 효모는 번식을 멈춘다.
또 짚고 넘어가야 할 미생물이 남아 있다. 바로 곰팡이이다. 누룩에 자라는 곰팡이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아스퍼질러스균(Aspergillus)과 라이조프스균(Rhizopus)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 또한 다음 단계를 위한 준비로 누룩에 번식을 하기 시작한다. 실은 곰팡이들이 없으면 아무리 효모가 있어도 곡물을 술로 바꿀 수가 없다. 그것은 곡물이 다당류이기 때문이다. 효모는 이를 직접 이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곡물은 다당류에서 포도당인 단당류로 분해되는 당화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는데, 이 때 분해를 돕는 여러 효소들을 바로 이 곰팡이들이 제공한다.
조상들은 이렇게 만든 누룩을 술을 빚을 때까지 건조하여 보관하였다. 수분을 다 날려서 미생물이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누룩에 무슨 미생물이 자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몰랐을 옛날일진대 그저 경험만으로 천연 발효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조상들이 술을 만들 때 기본적으로 필요했던 재료 세 가지는 곡물, 누룩, 물이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듯이 술을 빚을 때 사용한 곡물은 지방에 따라 달랐다. 일반적으로 조상들은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곡물을 술에도 사용했다. 영남과 호남지방은 들이 넓고 산이 낮기 때문에 벼와 보리의 산출량이 많아 쌀이나 보리로 술을 빚었고, 북쪽 지방과 제주도는 산이 높고 평야가 적어 잡곡을 이용하여 술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조상들은 곡물들을 물에 불려 쪄서 고두밥 형태로 만들기도 했고, 떡이나 죽으로 만들어서 곡물을 전처리 해주었다.
만들어 놓은 누룩은 술을 빚기 전에 법제 과정을 거쳤다. 법제란 누룩을 술 빚기 2~3일 전에 용도에 따라 밤톨 크기, 콩알 크기, 거친 가루 또는 고운 가루로 빻아 밤낮으로 햇볕과 이슬을 맞히는 것을 말한다. 햇볕에 쬐임으로써 살균과 냄새제거, 표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슬을 맞힘으로써 누룩 속의 곰팡이를 증식시켜 효소의 활동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을 만들 때 물도 굉장히 중요하다. 조상들은 술을 빚을 때 발효가 잘되고 원료가 잘 삭는 물을 ‘힘 센물’이라 하고 그 반대 성질을 지니는 물을 ‘힘 약한 물’이라고 하였다. 이 두 물은 칼륨과 마그네슘의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힘 센물에는 이 두 성분의 양이 많고 힘 약한 물에는 두 성분의 양이 적다. 이렇게 물의 종류에 따라 술의 맛은 달라졌는데 힘 센물로 만든 술은 쓴 맛이 강한 톡 쏘는 맛을 가진 술이 되었고 힘 약한 물로 만드는 술은 단맛을 가진 술이 되었다.
실제 서양에서는 힘 센물을 사용하여 술을 만들었는데 한 예가 맥주이다. 맥주의 쓰고 톡 쏘는 맛이 강한 것은 물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그에 비해 우리 조상들은 힘 약한 물인 우물물이나 샘물을 술 빚는 용수로 많이 이용하였다. 따라서 달작지근하면서도 여러 가지 맛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는 술이 만들어졌다.
곡물, 누룩, 물. 술을 만들기 위한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다. 이제 세 재료를 섞어 주자. 그리고 이 혼합액은 효모가 가장 활발히 서식할 수 있는 22~25℃ 온도에 놓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 바로 산소가 없는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효모 때문이다. 만약 산소가 있다면 효모는 알코올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효모는 산소가 충분할 경우에는 호흡을 하여 포도당과 산소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 많은 양의 에너지를 생산해 내면서 활발하게 증식을 할 뿐이다. 반면에 산소가 없을 때에는 포도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하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우리 조상들은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술독을 이용했다. 공기가 통하지 않게 혼합액을 독의 목까지 채워 무거운 뚜껑을 덮어두었다. 완벽한 공기의 차단이다.
이제 누룩에 있는 곰팡이의 효소가 일을 하기 시작한다. 곡물을 분해하여 포도당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 포도당을 이용하여 누룩의 젖산균은 산소를 이용하지 않는 젖산발효를 하고 산물로 젖산을 생산한다. 젖산에 의해 액체는 산성이 되고, 산소가 없고 산성인 조건에서는 대부분의 세균들의 증식이 억제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이때 효모는 곰팡이 효소가 분해해 놓은 포도당을 이용하여 발효를 한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생산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혼합액이 발효되어 술이 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거품이 올라오고 액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술이 끓어 오른다’는 재미있는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효모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가 올라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에너지가 열로 바뀌어 마치 끓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비록 여러 미생물들의 작용은 알지 못했으나 관찰력이 얼마나 섬세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술이 끓어오른 현상을 발견한 후에는 술의 온도가 35℃ 이상 넘어가 효모의 사멸이 진행되기 전에 냉각 과정을 통해 술을 식혀주어야 한다. 효모가 죽으면 초산균이 침입하여 결과적으로 술을 변하게 하기 때문이다. 술을 식힌 후에는 서늘한 곳에서 10일 정도 숙성을 시켜주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숙성 과정을 거쳐주면 비록 서양의 맥주만큼 강하지는 않으나 술 고유의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숙성 과정 동안에 그 전보다 온도가 내려가 탄산가스가 술에 녹아들어가기 때문인데,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온도가 감소하면 기체의 용해도가 높아진다’라는 원리가 정확히 적용된다.
위의 과정대로 빚어진 술의 도수는 실은 매우 낮았다. 우리 조상들은 처음에는 이렇게 한 번 빚은 술을 단양주라 하여 즐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높은 도수의 술을 원했다. 사람들의 심리란! 이들은 단양주를 밑술로 사용하여 찹쌀 등의 곡물을 더 넣고 발효시켜 도수가 높은 술을 만들거나 밑술에 누룩과 물, 곡물까지 더 넣어 주어 술의 양을 늘리면서 도수를 더 높여주기도 하였다.
완성된 술이 있는 술독에 용수를 넣어주면 청주가 고인다. 또 술이 완성되면 조상들은 그것을 거칠게 걸러 탁주의 형태로 마시기도 했고, 맑은 술을 원할 경우에는 술독에 용수를 박아 생기는 맑은 술만을 조심스레 떠내어 청주로 마시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 시대 이후에 마시기 시작한 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주고리나 시루를 이용하여 발효주를 증류시켜 얻었다.
우리 조상들은 발효를 시킨 술에 꽃이나 과일 등을 담가두어 향을 내어 즐기기도 했다. 또한 허준의 『동의보감』이 쓰인 후에는 일반 백성들도 여러 약재의 성질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약재를 혼합해 술을 빚어 약주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다. 자연 재료가 갖는 향기와 약성은 알코올에 의해 추출이 잘 되며 단순히 곡물을 발효시킨 발효주보다 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상들의 슬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우리네 조상들의 전통주는 매우 종류가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술을 빚는 과정 하나하나, 재료를 쓰는 것 하나하나에 그들의 슬기가 배어 있었다. 물론 그 시대에는 현재와 같이 과학적인 분석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실제 방법에 있어서는 조상들의 주조방법이 현대의 주조 방법에 절대 뒤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공장에서 만든 화학적인 현대 술과 달리 우리 조상들의 술은 자연을 담은 물이다. 조상들은 자연 그 자체를 마시고 즐겼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술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화학적인 맛의 술을 주로 마시는 우리들을 옛 조상들이 본다면 가엽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지금의 술 문화도 예전 조상들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요즘 길거리에는 술을 마시고 취해 휘청거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네 조상들은 술을 취하도록 마시지 않았다. 그들은 술의 맛과 향을 즐기고 풍류를 즐겼던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조상들에게 눈을 돌려 볼 때이다. 기억하라!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마신다는 사실을.
<참고 자료>
『전통주 제조 기술 (탁주, 약주편)』, 배상면 저
『전통주』, 박록담 저
『다시 쓰는 주방문』, 박록담 저
『우리 술 빚기』, 조호철 저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 허시명 저
- 꿈꾸는 과학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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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6-05-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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