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G. 웰스의 소설 ‘우주 전쟁’ 이후로 SF에 오징어나 문어처럼 생긴 두족류 외계인이 등장하곤 한다. 실제로 일부 두족류는 주변 환경에 맞춰 몸 색상을 바꿀 수 있어서 의외로 지능이 높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오징어의 뇌 구조를 정밀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월 29일 과학매체 ‘사이언스얼럿(ScienceAlert)’은 호주 연구팀이 MRI 스캔을 통해 오징어가 매우 복잡한 뇌 신경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고 전했다. 비록 색맹이지만, 시각 처리에 특화된 뇌 능력으로 패턴을 인식해서 다양한 색깔로 위장하거나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온갖 복잡한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호주 퀸즐랜드 대학 부속 ‘뇌 연구소(Queensland Brain Institute)’의 뇌 신경 생물학자인 웬성 청(Wen-Sung Chung) 박사와 저스틴 마셜(Justin Marshall) 교수는 사상 최초로 MRI를 이용해서 ‘커넥톰 맵(Connectome map)’이라는 오징어의 뇌 신경 연결 지도 제작에 나섰다.
실험에 사용된 ‘큰 지느러미 암초 오징어(Sepioteuthis lessoniana)’는 호주 및 동남아시아 인근 태평양과 인도양 일대에 주로 서식하며 우리나라 근해에서도 발견되는 종이다. 연구팀은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암초 오징어를 골라 MRI로 촬영했다.
오징어 뇌 스캔 결과는 다소 놀라운 사실을 보여줬다. 다색 형광물질로 염색된 샘플의 신경 경로를 추적하여 기존에 알려진 282개의 주요 연결 경로에서 99% 이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145개의 새로운 신경 연결 경로를 발견했는데, 그중 60%는 시각적 처리 및 동작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청 박사는 “오징어의 많은 신경 회로가 위장술과 영상 정보 통신을 전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면서 “그 덕분에 포식자를 피하면서 은밀하게 사냥할 수 있고, 역동적인 색상 변화로 종족 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문어와 오징어를 비롯한 일부 두족류의 뉴런 숫자는 약 5억 개 정도로, 이는 5억 3000만 개를 가진 개들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쥐의 뉴런 수는 2억 개, 일반적인 연체동물은 고작 2만 개에 불과하다. 참고로 사람은 평균 1000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의 뉴런이 같은 역할을 하진 않는다. 개는 육상 생활을 위한 행동과 판단에 뉴런을 주로 사용한다면, 오징어는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데 많은 부분을 쓰고 있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능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과학자들은 의외로 복잡한 오징어의 뇌 구조가 오랜 진화의 결과라고 말했다. 인간과 오징어는 약 5억 6000만 년 전에 진화 계통에서 분리되었음에도 놀랄 만큼 비슷한 눈을 지녔다. 이러한 연관성은 개와 오징어처럼 매우 먼 관계의 동물들이 유사한 해결책을 찾아 진화한다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 박사는 “그동안 연구가 진척된 척추동물 신경계와의 유사성 덕분에 행동 수준에서 두족류 신경계에 대해 새로운 예측을 할 수 있다”라면서 “우리는 이 매혹적인 생명체들이 왜 이렇게 다양한 행동과 매우 다른 상호작용을 보이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증거를 제공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두족류의 뇌 구조와 지능이 사람을 포함한 척추동물과 매우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의 일부다.
연구진은 “두족류는 독특하고 복잡한 행동 때문에 종종 외계인처럼 의인화되기도 한다. 이런 멋진 생물들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확실한 배경 증거가 필요하다”라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 심창섭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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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2-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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