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게놈은 상동 염색체 22쌍과 성염색체 한 쌍, 즉 46개의 염색체로 구성되어 있다. 성염색체의 경우 여성은 X염색체 2개, 남성은 X염색체 1개와 Y염색체 1개다. 포유류는 2~3억년 전에 X염색체와 Y염색체가 분리됐다.
X염색체를 최초로 발견한 이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 헤르만 헨킹이다. 그는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추출한 염색체를 현미경으로 유심히 들여다보다 세포분열 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채 조용히 존재하는 염색체를 발견하곤 ‘X염색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분의(extra)’의 염색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사실 X염색체는 여분의 염색체가 아니라 우리 삶의 지탱하는 바탕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일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X염색체는 Y염색체보다 유전자 수도 훨씬 많다. 지난 2005년 미국․영국․독일의 공동 연구진이 X염색체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1098개로 나타난 것. 그에 비해 남성을 결정짓는 Y염색체는 78개의 유전자뿐이다. 즉 X염색체가 Y염색체보다 약 14배나 많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 X염색체를 2개나 지니고 있으므로 그 속에 포함된 유전자가 모두 활성화된다면 그로 인해 생성되는 단백질이 남성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인체의 정교한 생화학적 균형이 깨져 혼란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유전자 발현양은 남녀 차이 없이 동일하다. 성염색체 진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책을 마련해두었기 때문이다. 즉, 자궁 속의 초기 발생 단계에서 여성이 보유한 2개의 X염색체 중 하나가 불활성화되어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이 현상을 X염색체 불활성화라고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활성화 메커니즘
2개의 X염색체 중 어떤 염색체가 불활성화가 될지는 임의로 정해진다. 즉 모계에서 받은 X염색체인지 부계에서 받은 X염색체가 불활성화될지는 미리 알 수가 없다. 또 하나, 이 같은 불활성화의 메커니즘도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세계적인 전문 학술지 셀(cell)의 자매지인 ‘셀리포트’에 X염색체 불활성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밝힌 연구결과가 게재돼 주목을 끌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ETH)의 안톤 부츠 교수팀이 발표한 논문이 바로 그것.
부츠 교수팀은 논문에서 “Xist라는 RNA가 X염색체의 불활성화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하는데, 수백 개의 Xist가 X염색체 중 하나에 결합해 해당 X염색체를 불활성화시킨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체세포와는 대조적으로 각각 하나의 X염색체만을 지니며, 지속적으로 Xist RNA를 생성하도록 변형시킨 생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이 연구를 진행했다. 이처럼 변형된 줄기세포들은 X염색체가 불활성화될 경우 생존에 필요한 유전자가 없으므로 사멸할 수밖에 없다.
또한 연구진은 바이러스를 이용해 수많은 줄기세포들의 개별 유전자를 무작위로 손상시켰다. Xist RNA가 X염색체를 불활성화시키는 데 필요한 유전자를 파괴하면 X염색체가 불활성화되지 않아 해당 세포는 생존할 수 있게 된다.
연구진은 그 같은 연구과정에서 살아남은 줄기세포들을 분리해 ‘Spen’ 등 X염색체의 불활성화에 필요한 유전자 7개를 찾아냈다. 연구진은 Spen 유전자가 결핍된 생쥐의 경우 염색체 구조를 변형시키는 단백질이 X염색체에 효과적으로 축적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과학이 밝혀내야 할 X염색체의 비밀
약 50년 전 일본의 유전학자 스스미 오노는 X염색체의 불활성화가 X염색체의 진화를 지연시켰다고 주장하며, 그 결과 X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의 내역이 대부분의 포유류에 걸쳐 매우 유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만약 그렇다면 생쥐를 이용한 부츠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인간의 X염색체 불화성화 과정을 그대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Xist와 Spen을 생성하는 유전자는 인간에게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인간과 생쥐의 X염색체는 유전자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2013년 미국 화이트헤드 생의학연구소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바 있다. 오노의 예상대로 인간과 생쥐의 X염색체는 유전자 대다수를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인간의 X염색체에 포함된 유전자 중 144개는 생쥐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또한 생쥐의 X염색체 역시 197개의 독특한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구나 인간의 경우 활성화 시스템과 불활성화 시스템이 상호작용을 통해 X염색체를 조절하므로 생쥐보다 훨씬 복잡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X염색체 불활성화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기 위해선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도 X염색체에는 과학이 밝혀내야 할 미스터리가 많다. 남성의 성 관련 역할은 Y염색체가 전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X염색체에도 수십 개의 ‘남성 관련 유전자’가 포함된 것으로 나타난 것.
이 유전자들은 남성의 고환에서 나중에 정자로 되는 조직에서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성염색체가 성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항이다.
흔히 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더 긴 이유 중 하나로 X염색체가 꼽힌다. X염색체에 이상이 생기면 여성은 다른 X염색체가 보충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발성경화증은 여성이 남성의 2배, 남창은 10배나 되는 등 자가면역성 질환 환자의 80%가 여성이다. 또 치매도 남성보다 여성이 걸리는 확률이 훨씬 높다. 그 배경에는 2개의 X염색체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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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9-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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