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가 현존하는 슈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른바 ‘양자 우위(quantum supremacy)’를 세계 최초로 달성했다고 발표했다[1]. 초전도 소자 기반의 53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가 기존 컴퓨터로 약 1만 년이 걸리는 연산문제를 단 200초 만에 풀어낸 것인데,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던 꿈의 컴퓨터의 가능성을 양자역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최초로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다. 이에 전 세계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성능 수치에 다소간의 의문은 제기하면서도, 양자컴퓨터의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 자체만으로 획기적인 마일스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후, 이 사건은 양자기술이 미래 산업경쟁력의 핵심기술로서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에 패러다임을 뒤흔들 수 있는 혁신적인 게임 체인저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개발을 수행 중인 미국의 구글, IBM을 비롯하여 중국의 알리바바 등 세계 주요국들은 수많은 연구 인력과 천문학적인 자본을 투자하면서 양자컴퓨터 개발에 사활을 건 기술패권 전쟁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2020년 12월, 중국에서 또 다른 저명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양자광학 기반 실험적 양자 우위 연구결과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양자컴퓨터 기술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2].
우리나라도 양자기술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2014년도에 ‘양자정보통신 중장기 추진전략’을 발표하면서 국가 차원의 양자연구를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국가의 미래 전략기술 확보를 위한 방안으로 양자기술 연구개발(R&D) 투자전략을 확정하고, 도전적인 원천기술 개발을 강화하겠다고 밝혀 양자기술 발전에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3]. 양자기술은 양자컴퓨팅의 초고속 연산, 양자통신의 초신뢰 보안, 양자센서의 초정밀 계측 등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이 중 양자컴퓨팅 기술은 국내 산업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대학과 출연(연)을 중심으로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출연(연) 최초로 양자연구를 시작한 KIST는 1980년도부터 양자소재 연구로 기반을 꾸준히 마련하였으며, 2012년에는 전문화된 양자정보연구단을 설립, 양자소재부터 시스템(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시뮬레이션, 양자센서 등)에 이르기까지 원천기술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KT와 공동으로 현대중공업 내에 양자암호통신 인프라를 구축하여 조선업계 최초로 방산기술의 보안 체계를 한층 강화하는 계기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4].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의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기술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인류의 삶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2차 양자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20세기 초 현대물리학의 기초 양자역학을 밝혀내어 트랜지스터와 같은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발명품을 탄생시킨 것이 1차 양자혁명이라면, 2차 양자혁명은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이라는 양자 특성을 활용하여 컴퓨터와 정보통신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대변혁이라고 볼 수 있다[5].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양자역학을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할 만큼 심오한 양자역학의 세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양자정보에서 이야기하는 양자(quantum)는 원자, 전자, 광자와 같이 특정 개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하기보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과 같은 고전역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중첩과 얽힘과 같은 양자의 특이한 상태는 주로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 관측되기 때문에 이런 관측이 가능한 원자, 전자, 광자와 같은 특정 입자들을 편의상 양자로 지칭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런 특정 개체가 아니라 특이한 양자 현상이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양자현상’을 정보처리에 활용한 컴퓨터로, 특정 연산의 경우 슈퍼컴퓨터의 수억 배에 달하는 뛰어난 연산 속도를 가질 수 있다. 전통적인 컴퓨터는 이진법 0, 1의 비트를 통해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을 수행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 비트 즉 큐비트(quantum bit)라고 불리는 단위로 구동된다. 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가지는 상태를 이용하여 정보를 저장하고 연산을 수행하게 되는데, 병렬연산을 통해 정보처리와 연산속도가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여 빠른 속도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그럼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특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양자컴퓨터의 핵심 원리 : 양자 중첩과 얽힘
과학발전의 역사상 세상을 놀라게 한 유명한 고양이가 있다. 슈뢰딩거 고양이는 1935년 오스트리아 이론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고안한 사고실험의 주인공이다. 전통적 이론인 ‘코펜하겐 해석’, 즉 양자의 상태는 관측을 통해 확률로 결정된다는 이론의 불완전성을 비판하기 위해 설계한 실험이지만, 지금은 양자역학의 중첩성(quantum superposition)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고실험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양이 한 마리는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상자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독이 든 유리병과 망치, 시간당 1/2의 확률로 붕괴되는 방사성 물질 라듐과 방사능을 검출하는 가이거 계수기가 들어 있다. 방사능이 검출되는 순간 계수기와 연결된 망치는 독이 든 유리병을 깨트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결국 고양이는 죽게 된다. 그렇다면 1시간이 흐른 뒤, 고양이는 과연 죽었을까, 살아있을까?[6]
뉴턴의 고전역학이 지배하는 거시세계와는 달리,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그 사건이 측정(관측)되기 전까지는 여러 가능성을 갖는 중첩 상태가 여럿 공존한다. 즉,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는 하나의 상태로 결정되지 않은 채 고양이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 중첩된 상태의 고양이가 존재한다. 사실 고양이처럼 거대한 물리계가 양자 중첩을 가지기는 매우 어려운데, 이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사건의 측정이 비단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고양이는 공기의 흐름, 적외선의 방출 등을 통해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 역시 고양이의 상태를 알려주는 측정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즉,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양자 중첩은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잃을 수 있으며, 이는 양자컴퓨터 개발에서도 가장 큰 실험적 난관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에 있어 양자 중첩만큼이나 중요한 특성 중 또 한 가지는 바로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양자 얽힘은 둘 이상의 입자가 가지고 있는 양자 중첩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러한 특성으로 말미암아 두 입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치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상호관계를 가지게 된다. 즉,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어도 상호작용하는 얽힘 특성 때문에 하나의 상태가 결정되는 순간 나머지 반대쪽의 상태도 즉각적으로 바뀌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공간을 초월하는 상호작용이 상대성이론에 위배된다며,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주장하였지만, 오늘날 양자 얽힘은 실험실에서 흔하게 관측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양자적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양자컴퓨터는 양자가 지니는 이러한 양자 중첩과 양자 얽힘을 정보처리에 활용함으로써 연산을 처리하는 양과 속도에서 이득을 얻는 장치이다.
하지만 큐비트가 온전히 양자역학적 성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서 기술한대로 양자 중첩은 큐비트를 구성한 입자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면 쉽게 잃을 수 있는데, 이를 결어긋남(decoherence)이라고 한다. 큐비트의 양자 중첩 상태와 양자 얽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막고 특수한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데, 이 점이 양자 컴퓨터의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KIST 양자컴퓨터 관련 연구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의 양자컴퓨팅 연구 동향을 ‘양자계 검증단계, NISQ (Noisy Intermediate-Scale Quantum)’ 시대라고 일컫는다. 즉, 앞서 언급한 오류(결어긋남 등)가 완벽하게 보정된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이전 단계로, 오류가 포함된 수십~수백 개 수준의 큐비트를 활용한 중간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시대를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NISQ의 양자 컴퓨팅은 현재의 슈퍼컴퓨팅으로는 불가능한 특정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현대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끄는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주요 연구는 NISQ 수준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기술과, NISQ의 양자컴퓨터를 이용해 유용한 응용분야를 발굴하고 적용하는 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양자네트워크 기반 대규모 양자컴퓨터 기술>
양자컴퓨터의 기본 정보 단위인 큐비트는 2차원 결맞음 양자상태를 구현할 수 있는 물리계라면 어떠한 방법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KIST에서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고체에 존재하는 점결함(point defect)의 전자스핀과 핵스핀을 큐비트로 활용한다. 10mK 수준의 극저온에서 동작하는 초전도 큐비트, 초고진공이 필요한 이온트랩 큐비트와는 달리 다이아몬드 점결함은 상온, 상압에서 동작이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다이아몬드 점결함은 자연 상태의 다이아몬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나, 점결함 위치가 임의적이기 때문에 특정 위치에 다수의 점결함을 집적화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KIST에서는 다이아몬드에 저에너지 이온빔을 주사하여 원하는 위치에 고순도 점결함 큐비트를 생성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하나의 점결함에 7개의 스핀 큐비트가 집적된 양자노드를 생성하는데 성공하였다.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큐비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하나의 양자노드에 집적된 스핀 큐비트의 개수를 증가시킬 수 있으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 집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이아몬드 점결함 큐비트의 경우 하나의 양자노드에 집적된 큐비트의 개수는 20개를 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며,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초전도회로나 이온트랩 기반 양자컴퓨터 역시 하나의 노드에 수십 개 수준의 큐비트만 집적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규모 집적화를 가로막는 주요 이유는 하나의 양자노드에 너무 많은 큐비트가 존재하면, 각각의 큐비트를 구분하고 제어하는데 많은 기술적 난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개의 양자노드를 만들고 이들을 양자네트워크를 이용해 연결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양자컴퓨터를 구성하는 양자네트워크 기반 양자컴퓨터 기술이 큐비트를 구현하는 물리계를 불문하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7].
양자네트워크 기반 양자컴퓨터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양자노드에 존재하는 큐비트 간 양자게이트 작용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KIST에서는 양자노드의 다이아몬든 점결함 스핀 큐비트를 광자 큐비트로 전환하고 광자 큐비트 간 상호작용을 이용해 스핀 큐비트 간 양자게이트 작용을 구현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스핀 큐비트를 광자 큐비트로 전환 또는 연결하는 과정을 양자인터페이스라 하며, 광자 큐비트 간 상호작용을 이용하는 과정을 양자통신채널이라 한다. 즉, 양자네트워크 기반 양자컴퓨터 기술은 스핀 큐비트가 집적된 양자노드, 스핀 큐비트를 광자 큐비트로 전환하는 양자인터페이스, 광자 큐비트 간 상호작용을 통해 다른 양자노드 내 스핀 큐비트 간 양자게이트 작용을 구현하는 양자통신채널로 이루어진다 (그림 2).
KIST에서는 이러한 양자인터페이스와 양자통신채널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정을 통해 다양한 다이아몬드 나노구조물을 만들고 점결함으로부터 방출되는 광자의 포집효율을 올림으로써 스핀-광자 양자인터페이스 효율을 올리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8].
<중규모 양자컴퓨터 응용 연구>
가장 널리 알려진 양자컴퓨터의 응용분야는 암호해독과 방대한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이다. 하지만 이러한 응용분야는 매우 큰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필요로 하며, NISQ 수준의 양자컴퓨터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NISQ 수준의 양자컴퓨터를 이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하면서도 실용적인 문제를 찾고, 적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최근, NISQ 수준의 제한적인 양자컴퓨터의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프로세서로는 디지털컴퓨터가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연산만 수행하고, 나머지 연산은 디지털컴퓨터로 수행함으로써 양자프로세서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흔히 양자-고전 하이브리드 알고리즘이라고 부르는데, 대표적으로 Variational Quantum Eigensolver(VQE)가 여기에 속한다.
KIST에서는 광자의 다양한 자유도를 동시에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양자프로세서를 구현하고, 이를 이용해 분자의 바닥상태 에너지를 계산하는 VQE 연산을 수행하였다[9]. 일반적으로 하나의 단일광자를 이용해 하나의 큐비트를 표현할 수 있는데 반해, 다양한 자유도를 활용함으로써, 하나의 단일광자를 이용해 다수의 큐비트를 구현할 수 있음을 보였다. KIST 실험에서는 단일광자의 편광과 공간모드를 이용해 큐비트 2개에 해당하는 양자 연산 공간을 구현하고 VQE에 적용하였다. 그림 3은 KIST에서 구현한 VQE 실험 장치와 이를 이용해 계산한 2원자 분자의 바닥상태 에너지를 원자간 거리에 따라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NISQ 수준의 양자컴퓨터 구현과 응용 기술 개발에 대한 노력은 향후 복잡한 분자구조를 모델링할 수 있는 알고리즘 개발을 통해 양자화학 계산 분야에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팅 기술이 가져올 변화
그렇다면 양자기술의 발전은 앞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까? 화학 물리 분야에서는 원자-분자 간의 새로운 과학적인 현상을 규명해 줄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나노소재, 미세구조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소재를 발견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자구조의 정확한 모델링을 통해 수년이 소요되는 의약산업의 경제적 비용을 앞당겨 줄 수 있다. 정보보호와 국방 등 암호해독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융, 교통 등에 이르기까지 복잡하면서도 월등한 연산 속도를 필요로 하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바이오·생명공학 분야에서의 기대는 주목할 만하다. 3차원으로 접힘 형태를 지니고 있는 단백질과 유전자 구조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은 신약개발, 유전자 질환 치료 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를 구성하는 DNA는 4종류의 염기가 중합과정을 통해 약 64억 개 이상의 염기쌍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어 이를 해석하는 일은 인류가 극복해야 할 최대 난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국 버지니아대학 연구진들은 방대한 양의 염기서열 변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기존 디지털 컴퓨터로 약 30억개의 연산이 필요한 것을 양자컴퓨터로는 단 32개의 연산만으로 가능하게 됨을 보였다[10]. 이는 유전자 질환의 진단에서부터 난치병을 예방하고, 개인별로 맞춤형 치료 등이 가능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스파이크 단백질의 변이처럼 인체 감염성이 있는 고빈도의 바이러스 변이를 추적해나가는 열쇠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계산의 범주가 조합론(combinatorics)에 한정되어 최적화된 배열을 찾는 복잡한 교통, 물류 분야에서도 양자컴퓨팅 기술 도입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백 대, 수천 대 차량의 상호작용이 이루어낸 교통, 50개 이상의 도시가 맞물려 있는 물류 운송에서는 항목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가능한 배열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오늘날 디지털 컴퓨터는 최적의 배열을 찾기 위해 각 순열을 반복하여 계산한 후 목표에 가장 적합한 것을 식별해야 하므로 모든 항목을 동시에 고려한 최적 경로를 연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양자컴퓨터는 이러한 복잡계에서 개별 움직임과 가능한 많은 변수의 조합을 모두 분석하여 가장 효율적이고 이상적인 ‘최적 경로’를 예측하는 것이 몇 분 혹은 몇 시간 내에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에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머신러닝 등의 급속한 발전과 맞물려 양자컴퓨팅 기술과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들도 급증하고 있다. 대규모 고차원의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해 딥러닝 처리속도를 개선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등 양자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 중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양자컴퓨터의 시대는 곧 열릴 수 있을까? 혹자는 현실 세계의 중요한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는 수준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적게는 수백 개에서 수만 개 큐비트 수준의 양자컴퓨터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앞으로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IBM은 2023년도 말을 목표로 1,000 큐비트 개발을 예고하고 있으며[11],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기업들도 10년 이내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10년 후에도 여전히 양자오류정정, 유용한 양자알고리즘 개발 등 아직 넘어야할 산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기술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여야할 시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수십 년 이상 꾸준히 투자해온 선도국에 비해 기술 수준이나 연구개발비 규모 면에서나 극복해야할 장벽이 많다. 기술 개발에 난이도가 큰 만큼 정부 차원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기술로 인식하고 긴 안목에서의 지속적인 투자와 종합적인 청사진 설계가 필요하다. 양자 분야의 기초 연구에서부터 응용, 개발 연구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며, 무엇보다도 국내외 협력기반을 구축하여 다학제 융합연구에 힘써 앞으로의 10, 20년 뒤를 대비해야한다. 출연(연)을 중심으로 대학과 산업계가 참여하는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어느 때 보다도 협력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학문적 난제뿐 만 아니라 인류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기존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비교 우위점을 찾아 전략을 세우는 것도 향후 산업경쟁력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양자혁명 2.0 시대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기를 기대해본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발간하는 ‘TePRI Report 가을호’ 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김용수/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 책임연구원, 함주영 KIST 미래전략팀 선임연구원
- 저작권자 2021-11-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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