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유별’이란 말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가부장적 사회제도 아래에서 이 말은 여성을 억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의학 등 생명과학에서는 오히려 남녀 간 성차(性差)가 점차 중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성차의학 등이 그런 예다.
여성과 남성은 신체 구조나 분비되는 호르몬이 어느 정도 다르고, 따라서 나타나는 증상이나 치료방법도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같은 심장병이라도 남녀가 말하는 증상이 다르고, 심장병 위험은 오히려 여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어떤 약은 남성에게 괜찮은데 여성에게는 부작용을 일으켜 회수된 일도 있다. 이같이 약에 대한 반응도 다를 수 있어 신약 개발에서 수컷 쥐만이 아니라 암컷 쥐도 똑같이 실험대상으로 권장된다.
최근에는 남녀의 중요한 생물학적 차이가 세포 수준에서도 뚜렷하게 존재한다는 연구가 나왔다.
성별 따라 나노입자 흡수율 크게 달라
미국 하버드의대 수련기관인 브리검 & 여성병원(BWH)과 스탠포드대, 캐나다 맥길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의 세포 차이가 나노입자를 흡수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나노의학에 쓰이는 나노입자는 문제되는 조직이나 기관의 영상을 촬영하고 약물 전달에 활용되는 핵심 매체다.
연구팀은 세포의 성(性)이 나노입자를 흡수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남성과 여성의 세포가 세포의 다양한 분화 능력 향상을 위한 재프로그램에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번 주 미국 화학회 학술지 ‘ACS Nano’에 발표된 이번 연구 결과는 나노의학 연구자들이 성차를 감안해서 이 분야 작업을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이자 BWH 나노의학센터 강사 겸 마취과의사인 모르테자 마무디(Morteza Mahmoudi) 박사는 “관련 학계에서 나노의학 분야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대보다 적은 숫자의 기술들이 임상시험에 응용된 이유는 부분적으로 나노바이오의 인터페이스 즉 인체와의 접점에서 여러 가지 간과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연구-임상 간 격차를 최소화함으로써 나노입자가 임상에 성공적으로 응용되도록 하기 위해 나노바이오 인터페이스에서 간과된 요소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데 내 연구의 초점을 맞춰왔다”며, “우리는 최근에 나노입자의 유형이 정확하게 똑같고 농도가 같은데도 남녀의 세포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간과된 요인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세포 흡수율 다르면 효과나 안정성도 달라져”
마무디 박사팀은 전에 연구실 실험 결과와 임상 적용이 불일치하는 원인으로 보이는 다른 몇 가지의 간과된 생물학적 요인들을 식별해 낸 적이 있었다. 여기에는 환자 맞춤의학에서 개인별 나노바이오 인터페이스와 세포 유형 및 형태 그리고 배양 온도가 중요하다는 점이 포함됐다. 연구팀은 세포의 성별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추가적인 중요 인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나노입자를 남녀 태아에 부착된 태반의 양막층에서 추출한 인간 양막 줄기세포(hAMSCs)와 함께 배양했다. 그 결과 여성 세포가 남성 세포보다 나노입자를 훨씬 많이 흡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 내에 있는 세포는 나노입자 표면과 상호작용하는 작은 단백질인 파라크린(paracrine) 인자를 비롯해 광범위한 생체분자들이 풍부하다.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 세포 간에 파라크린 인자가 다양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측정된 63개 파라크린 인자 중 14개가 중요한 차이를 나타냈다. 이러한 차이는 나노입자의 생물학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쳐 세포와의 상호작용이 달라질 수 있다.
연구팀은 파라크린의 차이 말고도 여성과 남성의 양막 줄기세포에서 액틴(actin) 필라멘트의 조직과 분포, 형태에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액틴은 근육을 구성하거나 수축에 필요한 단백질로, 이 필라멘트는 작은 덩굴손처럼 입자 주위를 감아서 감싸는 행동을 한다.
마무디 박사는 “이러한 차이는 나노입자를 투여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나노입자를 통해 약물을 전달한다고 할 때 세포의 흡수율이 다르면 치료 효과도 다르고, 안전성이나 임상 데이터에서도 중요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리화학적 및 기계적 차이에 대한 심층연구 필요
인체 양막 줄기세포는 센다이 바이러스를 사용해 핵심 요소들을 핵에 전달함으로써 훨씬 더 견고한 줄기세포 상태로 만들 수 있다. 이 재프로그램 기술은 줄기세포 생물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나, 연구팀은 이 방법도 남성과 여성 세포 간 차이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세포는 남성세포보다 9배나 더 높은 비율로 반응했다.
연구팀은 또 나이든 사람의 섬유아세포를 포함해 다른 종류의 인체 세포에 대한 나노입자 흡수 상태를 시험해 남녀 세포 간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이번에는 남성 섬유아세포가 여성 세포보다 나노입자 흡수율이 높았다. 연구팀은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모양과 소포체 구조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마무디 박사는 “세포 타입도 중요하다”며, “화학요법 약물을 인체의 병소로 전달할 때 환자의 성별은 물론 목표로 한 세포의 유형이 약물 전달과 흡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 세포 사이의 물리화학적 및 기계적 차이점에 대해 심층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다양한 세포들과 세포 내 차이점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궁극적으로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성별-특화적 방식으로 환자들에게 향상된 치료법이 제공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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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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