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왕조는 유럽 대부분의 지역을 6세기 동안 통치하면서 최고의 권력을 휘두른 유럽 최대 가문이다. 그런데 합스부르크가에서 배출된 왕이나 왕비들은 생김새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합스부르크 턱(Hapsburg jaw)’으로 알려진 주걱턱과 위아래 턱뼈가 앞으로 툭 튀어나온 돌악(突顎)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같은 특이한 인상은 거듭된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질환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 중 스페인 왕조의 경우 약 200년간 11차례의 결혼 가운데 9쌍이 사촌 이내의 근친 사이였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근친결혼 정책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태어날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그는 왜소한 몸에 비해 머리가 기형일 정도로 컸으며 구루병에다 정신까지 박약했다. 그밖에도 각종 내장 질환을 앓았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혈뇨로 고생했다. 역시 심한 주걱턱이었던 카를로스 2세는 두 번의 결혼에도 아이를 갖지 못했으며, 결국 합스부르크가는 전쟁이나 반란이 아니라 자손이 끊김으로써 몰락한 왕조로 기록됐다.
주걱턱의 경우 특유의 발음이 새는 말소리를 갖기 쉬우며, 음식을 효과적으로 씹지 못하므로 위에 부담이 되어 위장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주걱턱이면서 안면 비대칭인 경우 통증을 유발하므로 요즘은 심한 주걱턱일 경우 어릴 때 교정을 하도록 권하고 있다.
그런데 합스부르크가와 함께 유럽 최대 가문으로 꼽히는 메디치 가문도 특별한 질환을 앓았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결과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서 가장 유력하고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 메디치가는 공화국의 실제적인 통치자였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주도한 명문가였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갈릴레오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메디치가 어린이 유골에서 구루병 확증 징후 발견돼
이탈리아 피사 대학의 발렌티나 지우프라 박사가 포함된 공동연구팀은 2004년 산 로렌조 성당의 지하 등에서 발견된 메디치가 출신 어린이의 유골 9구를 육안 및 엑스레이로 분석한 결과, 6구의 유골에서 구루병을 확증하는 징후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가슴이나 등뼈가 굽어 곱사등이가 되는 구루병은 보통 심각한 대기오염 및 과밀화로 인해 햇빛 노출이 제한되는 도시 빈민들의 어린이가 잘 걸리는 질병으로 생각되어 왔다. 또한 구루병은 달걀이나 치즈와 같은 식품을 섭취하고 햇빛을 잘 쪼이면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하지만 영양 상태가 매우 양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유한 메디치 가문의 어린이들이 구루병에 걸렸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온 것은 의외다. 메디치가의 아이들을 구루병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연구팀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 원인은 놀랍게도 그들이 누렸던 ‘축복 받은 양육 환경’에 있었다.
연구팀이 메디치가의 어린이들이 구루병에 걸린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유골의 콜라겐 속에 들어 있는 질소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그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관습에 따라 두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떼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것. 당시에는 부드러운 빵과 사과 등으로 죽을 만들어 모유와 섞어 먹였는데, 거기엔 비타민D가 충분히 함유되어 있지 않았다.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메디치가의 어린이들은 태어나자마자 넓은 저택에서 고치에 싸인 누에처럼 포대기에 싸여 생활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처럼 햇빛을 충분히 쪼일 기회를 얻지 못했다. 더구나 그 당시 귀족들은 자기 아이들이 햇빛에 그을리는 것을 몹시 싫어했으므로, 메디치가의 아이들도 집안에서만 생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유를 공급하는 메디치가의 어머니들도 높은 신분과 과도한 화장으로 비타민D 결핍증에 걸려 있어서 출생 전에 모체를 통해 필요한 비타민D를 공급받는 여느 신생아들에 비해 비타민D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신생아들의 경우 여간해서는 구루병에 걸리지 않는 게 상례이나 이번 연구에 포함된 메디치가의 신생아 2명은 모두 구루병의 징후를 나타났다. 또 6세짜리 유골에서는 구루병으로 두개골이 약간 변형된 사실이 밝혀졌다.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종기와 눈병
그럼 세계사를 통틀어 매우 드물게 5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조선의 왕들을 괴롭힌 특별한 질병으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지난해 현직 한의사인 방성혜 씨가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일기’ 등을 참고하여 펴낸 ‘조선, 종기와 사투를 벌이다’란 책에 의하면, 역대 조선의 왕 27명 중 12명이 종기를 앓았다고 한다.
즉위 2년 만에 사망한 문종의 경우 세자 시절부터 심한 종기를 앓아 부친상(세종)도 치르지 못할 정도였다. 실록에 의하면 침으로 문종의 종기를 따니 두서너 홉이나 되는 고름이 쏟아졌다고 한다.
성종도 배꼽 아래 종기가 생겨 민간의 종기 전문가를 부른 그날 사망했으며, 크고 작은 얼굴 종기와 등창을 앓은 정조는 종기 발생 2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그밖에 효종과 순조도 종기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종, 숙종, 중종 등도 재위 기간 내내 종기로 고생을 했다.
조선의 왕들을 특히 괴롭힌 또 다른 질병으로는 눈병을 꼽을 수 있다. 세종대왕은 117일간이나 초정약수 인근에 행궁을 짓고 머물며 광천수로 눈병을 치료했으며, 즉위년 초부터 눈병을 앓은 현종은 중국으로 사신을 보내 눈병에 좋은 약재를 구했을 정도였다.
연산군과 광해군도 종기와 눈병으로 장기간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로 인해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왕위에서 쫓겨난 여러 원인 중 하나인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때문에 고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치적 스트레스가 심해 이런 질환들을 앓게 되었던 것. 종기와 눈병이 특히 많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만 44세인데, 이는 당시 평민들의 평균 수명으로 추정되는 40세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고의 의료 혜택과 유아기 질병을 무사히 넘어 장성한 왕들의 수명이 일반 백성들의 평균 수명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왕들이 수명이 짧았다는 증거가 된다. 당시 양반들의 평균 수명은 51~56세였으며, 궁중에서 생활한 내시들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조사된 바 있다.
-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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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6-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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