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이 어느새 100여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려면 아직 석 달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이미 올림픽이 시작된 것처럼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최근 국내에 도착하면서 지구촌 축제의 서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성화는 앞으로 올림픽 개막일까지 7500명이나 되는 봉송 주자들의 손에 들려 총 2018㎞를 달리게 된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성화가 꺼지지 않고 잘 유지되어야 한다는 점인데, 이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괜한 우려는 아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봉송 도중에 성화가 꺼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 적이 있어서다.
비근한 예로 지난 2014년에 열렸던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성화 봉송 도중에 가끔씩 불꽃이 꺼지는 사태가 발생했었고,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에는 봉송 중인 성화가 괴한에게 탈취되어 꺼질 뻔 한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불꽃이 꺼지지 않는 성화봉 제작을 수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국내에 도착한 성화를 안전하게 옮기는 작업에 성화봉이 처음 사용되면서 자신의 진가를 알릴 기회를 갖게 됐다.
평창 올림픽 성화봉의 별명은 꺼지지 않는 불꽃
올림픽 성화봉은 바람이 불거나 비를 맞아도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모든 올림픽 성화봉이 다 그런 요건을 갖춰야 하지만, 특히 이번 동계올림픽의 성화봉은 기상 상태가 수시로 변하는 평창의 기후 상황에 맞게 제작됐다.
그런 점 때문에 이전의 성화봉 들과는 달리 별명까지도 얻었는데, 바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성화봉의 구조를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왜 이런 별명이 붙여졌는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조직위 측의 설명이다.
이번 동계올림픽 성화봉의 가장 큰 특징은 격벽이 4개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격벽은 불꽃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데, 만약 바람이 불게 되면 불꽃이 격벽 반대 방향의 산소 공급원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성화봉의 불은 꺼지지 않게 된다.
또한 성화봉 상단에 위치한 캡은 일종의 우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 비가 올 때 빗물이 버너시스템 안으로 흘러들어 가지 않도록 외부로 배출시켜 폭우나 폭설이 오더라도 그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성화봉의 총 길이는 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의 고도가 700m인 점을 상징하여 700㎜로 제작됐다. 재질은 철과 알루미늄이 혼용되어 있는 형태이고, 전체적인 디자인은 조선의 백자에서 영감을 얻어 유려한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까지 현대 과학의 힘을 빌려 성화봉을 정성스럽게 만든 이유는 성화를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서인데, 실제로 성화는 우리나라에 도착하여 성화봉에 옮겨지기 전까지 2개의 안전램프에 담겨 귀빈 대우를 받았다.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안전 램프 안에는 파라핀 오일이 들어 있어 최대 52시간 동안 불꽃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 같은 장치 외에도 성화 이송을 위한 인력도 동원되었는데, 조직위는 3인 1조로 구성된 성화 인수단까지 동승시켜서 비행 내내 불꽃을 감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성화는 성화봉에 담겨 전국을 돌게 되는데, 아무리 불꽃이 꺼지지 않게 제작된 성화봉이라 하더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조직위는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두었다고 밝혔다.
조직위의 관계자는 “성화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성화 주자 옆에 항상 성화봉 전문가가 함께 이동하도록 하여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라고 설명하며 “그래도 불꽃이 꺼지는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성화 봉송 대열을 따라가는 버스에 실린 예비용 불꽃 램프에서 성화를 옮겨 레이스를 이어나갈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바다 속과 우주 공간도 성화 봉송 코스 중 하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화 봉송 코스는 성화봉 만큼이나 많은 과학기술이 집약되어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고증을 거쳐 제작된 거북선을 비롯하여 해양레일바이크 및 집와이어 등 다양한 운송수단이 성화 봉송에 동원되고 있는 것.
특히 성화 봉송 사흘째인 3일에는 제주 서귀포시의 수심 3.5m 깊이 바다에서 해녀와 해저 로봇이 공동으로 성화를 봉송하는 행사를 벌여 눈길을 끌었다. 이처럼 바다 속에서도 성화가 꺼지지 않고 탈 수 있는 이유는 성화봉 속에 들어있는 압축된 가스 때문이다.
성화봉 속에 있는 연료는 고압으로 압축되어 있는데, 성화봉의 노즐을 여는 순간 고압의 가스가 뿜어져 나오며 저압인 바다 속이나 대기로 이동하기 때문에 불이 꺼지지 않고 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위 압력이 가스의 압력보다 더 높은 심해에서는 성화가 탈 수 없다.
한편 지난 2014년에 열렸던 소치 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서 성화가 봉송되는 행사가 열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당시 소치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성화를 소유즈 우주선에 태워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전달했고, 성화를 전달받은 러시아 우주인은 성화봉을 들고 우주공간으로 나가 유영을 하면서 자국의 올림픽 개최를 축하했다.
다만 당시 우주 공간을 유영한 성화봉에는 실제 불꽃은 붙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인들과 우주정거장의 안전을 고려한 조치였다는 것이 훗날 러시아 우주국과 소치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공개로 밝혀졌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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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11-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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