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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효원 객원기자
2019-11-07

석유 화학의 쌀 ‘에틸렌’의 재발견 과거 식물 호르몬과 마취제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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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틸렌은 흔히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린다. 석유나 천연가스에서 정제해 얻는 기본 원료로써 그 활용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주변에 흔한 플라스틱, 비닐부터 시작해 합성고무, 각종 건축자재, 접착제나 페인트까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석유계 기초 유분이다.

에틸렌은 사과나 바나나를 후숙시키는 식물 호르몬이다 ©Pixabay
에틸렌은 사과나 바나나를 후숙시키는 식물 호르몬이다 ©Pixabay

에틸렌의 유용성은 유기 화학의 발달과 함께 알려졌다. 처음에는 단지 식물의 호르몬으로 바나나와 사과, 배와 같은 과일이 후숙하도록 만드는 기체 호르몬에 불과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화과를 빨리 익히기 위해 일부러 상처를 냈다. 또 중국의 농부들은 폐쇄된 방 안에 배를 놓고 향불을 피워 에틸렌을 촉진했다는 기록도 있다.

식물 호르몬으로써 에틸렌 가스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러시아의 과학자 드미트리 넬류보프(Dmitry Neljubow)이다. 그는 1800년대 말, 실험실에서 당시 조명으로 사용하던 불빛에서 나온 가스 때문에 완두콩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식물과 에틸렌 가스와의 상관관계 연구는 1901년부터 시작됐다. 이후 1934년 영국의 과학자 리처드 게인(Richard Gane)은 식물이 에틸렌을 생합성하고, 또 이를 감지한다는 결정적 증거를 내놓았다. 사과가 만들어 낸 에틸렌을 분리하는데 성공해 최초로 기체 식물 호르몬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에틸렌을 식물 호르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에틸렌의 검출 자체도 어려웠다. 그러나 에틸렌이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또 다른 새로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1930년대 에틸렌과 식물의 발달을 연구하던 시카고 대학교의 아르노 록하트(Arno Luckhardt)는 에틸렌이 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아르노는 먼저 에틸렌을 쐰 동물이 독성 반응 없이 잠을 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취 효과였다.

에틸렌의 마취 효과는 사실 그보다 훨씬 전인 1849년에도 영국 리즈의 외과 의사였던 토마스 누넬리(Thomas Nunneley)가 34가지 물질의 마취 효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에틸렌을 마취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는 록하트를 비롯한 시카고대학 연구진이 당시 마취제로 사용되던 에테르나 클로로포름보다 에틸렌이 더 효과나 부작용면에서 좋다는 결과를 발표한 1923년 이후부터다.

환자는 깊이 잠에 들었고, 수술 후에도 빨리 깨어나며, 마취 중에도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에틸렌은 높은 폭발 위험성을 가진 물질이다. 이 때문에 1950년대 이후부터는 다른 마취제들로 빠르게 대체됐다.

과거에 에틸렌이 마취제로 활용됐다면, 지금은 ‘에틸렌 옥사이드(Ethylene oxide)’라는 변형된 다른 형태로 의료기기 살균 가스로 쓰인다. 이는 산화에틸렌이라고도 부르는데, 에틸렌을 공기 또는 산소로 산화시켜 만든 것이다.

산화에틸렌은 살균 능력이 좋으면서 금속 부식성이 없는 특징 덕분에 의료기기 멸균 가스로 사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산화에틸렌의 발암성과 백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틸렌이 이렇게 무궁무진하게 이용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에틸렌 화학구조의 단순함 덕분에 수많은 물질로 합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틸렌은 알킨계 가장 단순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  ©Wikimedia
에틸렌은 알킨계 중 가장 단순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 ©Wikimedia

에틸렌은 상온에서는 무색의 기체이나 화학식으로 보면 단순한 탄화수소(C2H4)다. 탄소 2개가 이중결합하고 탄소 하나에는 수소가 2개씩 붙어 있는 알킨계 중 가장 단순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석유를 비롯해 천연가스로도 에틸렌을 뽑아낼 수 있어 공급도 쉽다. 식물이 합성하는 에틸렌도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산업에서 생산되는 에틸렌의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

2018년 기준으로 국내 에틸렌 생산량은 무려 881만 톤에 이른다. 이는 에틸렌 외에도 벤젠, 톨루엔, 자일렌 등 다른 기초유분 가운데 가장 많이 생산되는 양이다. 에틸렌의 생산량은 통상적으로 석유화학산업의 규모를 나타내는 기준으로도 사용될 정도다.

과거에는 식물 호르몬으로 처음 존재 가치를 알렸던 에틸렌이 수술대 위에서 마취제로, 그리고 지금은 석유화학계의 없어서는 안 될 물질로 변모했다. 화학의 놀라운 가치가 다시 한번 증명되는 좋은 사례다.

여전히 에틸렌을 활용한 연구는 활발히 진행 중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석유가 아닌 메탄에서 에틸렌을 전환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석유화학의 쌀, 에틸렌의 전망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효원 객원기자
hanna.khw@gmail.com
저작권자 2019-11-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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