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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객원기자
2012-05-09

사과 쌓는 방법 연구하는 물리학자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 많이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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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과 마트에 가서 과일 코너나 야채 판매대를 관찰해보자. 귤이나 감자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수북이 모아두지만 사과나 배는 정성스럽게 층층이 쌓아 놓는다. 서로 부딪혀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물러져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 프랑스와 독일 공동연구진이 '상인들이 면심입방구조로 과일을 쌓는 이유'를 물리학적으로 밝혀냈다. ⓒWikisource.org
각 나라의 과일 판매상들은 둥그런 모양의 비싼 과일을 쌓아올리는 노하우가 있다. 약간의 충격이 가해져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게 버텨야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안정적인 구조는 바닥면을 삼각형으로 해서 위로 갈수록 좁게 쌓아올린 피라미드 모양이다. 물리학 용어로는 면심입방구조(FCC, face centered cubic)라 불린다.

최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산하 고체물리연구소(Laboratoire de Physique des Solides)와 독일 드레스덴공과대학교의 유체역학연구소(Institut für Strömungsmechanik) 연구진이 공동으로 ‘과일 쌓는 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다량의 구체를 상자 안에 던져 넣을 때 자연스레 형성되는 배열을 연구했고, 다른 구조보다 면심입방구조가 선호되는 이유가 기계적인 안정성 때문임을 밝혀냈다.

논문 제목은 ‘구체 빽빽이 포장하기 : 밀집구조에서의 기계적 안정성의 영향(Packing Spheres Tightly: Influence of Mechanical Stability on Close-Packed Sphere Structures)'이며, 학술지 피지컬리뷰레터스(PRL) 최근호에 게재됐다.

상인들은 육각밀집구조보다 면심입방구조 선호

동일한 부피를 가진 동일한 물체를 최적의 밀도로 쌓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방법이 가장 유명하다.

하나는 ‘면심입방(FCC) 구조’다. 바닥면을 최대한 작은 삼각형으로 해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올린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형태의 층이 바닥부터 위쪽으로 A, B, C, A, B, C 순으로 반복된다.

▲ ‘면심입방구조(FCC)’는 바닥면을 삼각형으로 해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리기 때문에 하중이 직선으로 작용해 안정성이 높다. ⓒCNRS

사과나 구슬처럼 둥근 고체 물질을 층층이 쌓을 때는 ‘효율성’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가장 적은 면적에 최대한 많은 상품을 쌓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각 나라의 과일 상인들은 공통적으로 면심입방구조를 선호한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도 1611년 “둥근 대포알을 층층이 쌓을 때는 면심입방구조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다른 하나는 ‘육각밀집(HCP, hexagonally close-packed) 구조’다. 바닥면이 육각형이라는 점이 다르며 두 가지 형태의 층이 A, B, A, B 순으로 반복된다.

이론적으로 면심입방구조와 육각밀집구조는 효율과 안정성 면에서 동일한 결과를 보인다. 그러나 거의 모든 상인들은 면심입방구조를 선호한다. 쌓기가 간단해서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동안 경험으로 체득한 비밀이 있는 것일까.

프랑스와 독일 공동 연구진은 이 같은 질문에서 출발해 ‘사과 쌓기의 비밀’에 도전했다. 지금까지는 “두 구조의 엔트로피(entropy), 즉 높은 무질서 상태를 보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나노 크기의 물질에만 해당된다. 사과처럼 커다란 물체에도 적용이 가능한지는 증명된 바가 없었다.

하중의 방향 때문에 면심입방구조가 더 안정적

연구진은 1미크론(0.001밀리미터)보다 큰 구체 물질을 특정한 크기의 상자 안에 계속 던져 넣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아울러 실제 기계적 실험을 통해 어떠한 배열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지도 조사했다. 그러자 면심입방구조와 육각밀집구조가 동일한 비율로 나타났다.

그러나 구체를 계속 얹어 나가자 두 구조의 차이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육각밀집구조는 하중이 커질수록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무너지고 쌓이고를 반복하면서 점차 면심입방구조의 형태로 변해갔다. 안정성 면에서는 면심입방구조가 월등히 나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 ‘육각밀집구조(HCP)’는 하중이 바깥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높이가 높아지면 무너지기 쉬우며 결국 면심입방구조로 변하게 된다. ⓒCNRS

논문은 ‘하중의 방향’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상자 안에 넣을 때는 하중이 늘어나도 인접한 구체들끼리 단단히 맞물리면서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나 상자를 제거해서 외벽을 없애면 하중을 보상할 인접 구체의 숫자가 줄어들게 된다. 중력이나 마찰력이 충분히 작용하지 않으면 전체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

면심입방구조에서는 하중이 직선을 따라 아래로 옮겨가기 때문에 안정성을 유지한다. 더 높이 쌓고 싶으면 바닥에 깔린 구체의 숫자를 늘리되 바닥면을 삼각형으로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육각밀집구조는 하중이 외부로 향하기 때문에 구체 간의 마찰력이 부족해지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무너진 뒤에는 면심입방구조의 배열이 남는다.

과일 상인들은 수천 년 동안 반복된 경험을 통해 면심입방구조가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하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을 통해 알아낸 면심입방구조의 메커니즘을 공학에 활용할 계획이다. 논문을 통해 “구조물을 특정 지점에서 잘라내거나 마찰력이 다른 소재로 구체를 만들었을 때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적용되는지를 계속 연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구멍이 많은 다공성 물질을 조직화할 때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임동욱 객원기자
im.dong.uk@gmail.com
저작권자 2012-05-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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