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나 돼지고기가 배양육으로 대체되고 우유가 인공우유로 대체되는 것이 앞으로의 식품 시장 흐름인 것처럼, 최고의 기호식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커피도 보다 새로운 형태로 대체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식물 뿌리에 다량 함유되어 있는 성분인 이눌린(Inulin)을 활용한 대체 커피가 개발되고 있다. 풍부한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는 이눌린은 커피나 초콜릿이 갖고 있는 쓴맛과 유사한 맛을 내서 예전부터 커피의 풍미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로 주목을 받아 왔다.
커피의 대체재로 사용될 민들레와 치커리
고기나 우유에서 대체품이 나오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소나 돼지를 사육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각종 환경 오염과 생태계 교란, 그리고 기후 변화 같은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유는 또 어떤가. 젖소의 경우 과거보다 몇 배나 많은 우유를 생산하도록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개량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동물복지와는 거리가 먼 열악한 상황에서 정기적으로 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입하여 착유량을 강제로 늘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커피의 경우도 고기나 우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커피 판매량이 나날이 증가하면서 이를 재배하는 밭을 만들기 위해 산림을 마구 훼손하고 있고, 커피 일변도로 작물을 심으면서 토양 생태계가 엉망이 되고 있다.
특히 커피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기호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 성분 때문에 커피를 쉽게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가령 심장병을 앓고 있거나 아기를 가진 임산부의 경우 커피가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커피가 재배 과정이나 신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를 안고 있다 보니,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기호식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발 방향은 단 한 가지다. 커피의 풍미와 가장 흡사하면서도 건강에 좋은 대체품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먼저 커피의 풍미를 닮았다고 해서 낙점을 받은 소재는 치커리(chicory)다. 국화과 식물인 치커리는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여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도 이를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치커리가 커피의 대체재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유럽에서 말린 치커리 뿌리를 볶아서 커피 대용품이나 커피 첨가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말린 치커리 뿌리를 10분 정도 볶은 후 물에 넣으면 연한 갈색과 구수한 향을 내는 치커리차가 되는데, 풍미가 커피와 비슷한 반면에 카페인 함량이 커피보다 훨씬 낮은 것이 장점이다.
치커리의 또 다른 장점은 식이섬유와 올리고당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는 점이다. 식이섬유와 올리고당은 유산균 같은 장내 유익한 세균들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치커리 섭취를 늘리게 되면 장에서 유익균들의 숫자를 크게 늘릴 수 있다.
또 다른 커피 대체재 소재로는 ‘민들레’가 꼽힌다. 민들레로 만든 커피는 지난해 런던에서 열린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미래에 커피를 대체할 새로운 기호식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페스티벌에 민들레 커피를 출품한 영국의 디자이너이자 발명가인 ‘데이지 뉴딕(Daisy Newdick)’은 “영국에서는 민들레 뿌리를 건조시켜 이를 우려낸 다음, 커피처럼 마시는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라고 전하며 “이 같은 전통에서 착안하여 커피 맛과 유사한 민들레 커피를 만들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민들레 커피를 만드는 과정은 커피와 매우 비슷하다. 땅에서 캐낸 민들레 뿌리를 씻어서 잘게 잘라 건조시킨 후, 이를 볶으면 커피의 원두와 비슷한 색상의 커피 대체재가 탄생한다. 그런 다음 이를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커피처럼 진한 컬러와 맛을 내는 민들레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뉴딕은 “민들레 뿌리를 잘 건조시킨 후 볶은 다음 가루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넣으면 커피처럼 씁쓸하면서도 단맛까지 느낄 수 있다”라고 소개하며 “민들레의 경우 과거부터 각종 약재로 쓰일 만큼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건강한 커피 대체품이 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쌉쌀한 풍미를 지닌 이눌린 성분이 커피 대체재의 핵심
치커리나 민들레가 커피의 대체재로 활용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쌉쌀한 풍미를 지닌 성분인 이눌린 덕분이다. 다당류인 이눌린은 볶을 경우 신맛과 고소한 맛이 동시에 살아나 커피의 풍미와 가장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열을 받을 경우 신맛과 고소한 맛이 상승효과를 발휘하는 현상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이눌린에 함유되어 있는 지방과 유사한 식감을 제공하는 성분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 이눌린은 샐러드드레싱 요리에서 종종 지방 대체재로 사용될 만큼, 지방과 유사한 식감을 포함하고 있다.
이눌린은 치커리나 민들레 외에도 우엉 및 돼지감자 등에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우엉의 경우 전체 탄수화물의 절반가량이 이눌린일 정도로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 외에도 이눌린은 당뇨병 환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성분이다. 천연 인슐린이라 불릴 만큼 혈당 조절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뇨 환자를 위한 커피 대체재로 치커리나 민들레를 소재로 하는 커피가 개발되고 있다.
한편 민들레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식물이다. 땅에서 민들레를 채취할 때 약간의 뿌리만 흙 속에 묻어 놔도, 다음 해가 되면 더 많은 민들레가 자랄 만큼 번식력이 강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민들레 커피 같은 이눌린이 다량 함유된 커피 대체재가 출시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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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1-3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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