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15도의 열대지역에 위치한 태국은 해안선 길이가 3천2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해양왕국이다. 푸켓, 파타야 등 세계적 휴양지를 비롯해 수도 방콕도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그러나 태국의 해안이 바닷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점토층 위에 지어진 도시 방콕마저 땅이 가라앉으며 곳곳이 물에 잠기고 있다. 20년 후에는 방콕의 절반이 물난리를 겪고 100년이 지나면 방콕 전체가 전설 속 고대도시 아틀란티스처럼 바닷속으로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점점 거세지는 폭풍우다. 남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높이가 매년 4센티미터씩 높아지는 데다가 열대성 폭풍이 심해지면서 파도의 위력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LeFigaro)는 ‘바닷속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방콕(Bangkok s’enfonce peu à peu dans la mer)’, ‘대비하지 않으면 타이만이 사라진다(Golfe de Thaïlande, s’organiser ou disparaître)’ 등의 연속 기사를 통해 태국의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침식 피해 받는 해안이 600킬로미터에 달해
수도 방콕에서 남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어촌 쿤사뭇친(Khun Samut Chin)은 파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바닷물이 매년 30~40미터씩 육지를 잡아 먹으며 밀려들고 있다. 주민들은 말뚝을 박은 위에 대나무집을 짓고 사는데 파도가 밀려들 때마다 육지 안쪽으로 이사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74세 노파 누 위숙신(Nu Wisuksin)은 “바다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한탄하며 “태풍 게이(Gay)와 린다(Linda)가 불어닥쳤을 때 아이를 하나씩 잃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파도가 거세지면 방파제 역할을 하는 퇴적층이 사라지면서 해안 침식이 일어난다. 지난 30년 동안 70퍼센트의 퇴적층이 바닷물에 쓸려가는 바람에 마을은 점점 물에 잠기고 있다. 마을은 송전선 철탑만을 남긴 채 바닷속으로 사라졌고 습지로 변한 들판에는 물고기와 새우가 가득하다. 주민들은 물에 잠긴 마을 도로에서 몸을 반쯤 담근 채 조개를 딴다.관광지로 유명한 사찰 왓쿤사뭇(Wat Khun Samut)도 위기를 맞고 있다. 원래는 숲 속에 지어졌지만 지금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흰색 회반죽으로 장식된 벽은 파도와 바람에 떨어져 나가고 소금기로 인해 벽이 갈라진다. 해수면에 맞춰 바닥을 높이 쌓다보니 창문과 문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러나 딱히 방법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지로 이주한 뒤 아직 남아 있는 300명의 주민들은 바닷가에 맹그로브 숲을 조성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거센 파도가 나무를 뿌리째 뽑아놓기 일쑤다. 어부들은 “10년 전에는 1미터 높이에 불과하던 파도가 지금은 평균 2~4미터”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을사람들이 의지할 것은 오래 전 건설된 방파제뿐이다. 그러나 침식의 속도를 늦출 수만 있을 뿐 막지는 못한다. 이런 식으로 침식 피해를 입는 해안이 태국 전역에서 총 600킬로미터에 달한다.
재난연구센터 소장으로 활동 중인 지리학자 스미스 다르마사로자(Smith Dharmasaroja)는 “앞으로 20년 후에는 바닷물이 1.3킬로미터 안쪽 육지까지 들이닥칠 것”이라 계산하며 “50년이 지나면 2.5킬로미터, 100년이 지나면 6~8킬로미터 안쪽까지 바다에 잠긴다”고 예측했다.
지반 가라앉아 해수면보다 낮아진 방콕
태국어로 끄룽텝(Krung Thep) 즉 ‘천사의 도시’라 불리는 수도 방콕도 바닷물로 인한 피해를 겪고 있다. 태국의 젖줄이라 불리는 차오 프라야(Chao Praya) 강의 하구 삼각주에 건설된 방콕은 17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계획도시로, 지리적으로 세숫대야 모양으로 움푹 파인 방콕 평원에 위치해 있어 해수면보다 1.5미터밖에 높지 않다.
당시에는 비옥한 토지였겠지만 점토층 위에 짓는 바람에 침수가 가속화되고 있다. 바닷물의 높이가 상승할수록 그에 따라 점토층이 매년 1.5~5센티미터씩 가라앉는 ‘가위 효과’ 때문이다. 지난 60년 동안 침식된 높이만 1.7미터에 달한다. 동부 지역은 이미 해수면보다 낮아져서 비가 많이 오면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다.인간의 욕심도 침하현상을 부추긴다. 상업지구에는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공장지대에서는 지하수를 불법으로 퍼올리는 바람에 점토층은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지질학자 타나왓 자루퐁사쿨(Thanawat Jarupongsakul)은 “어린아이의 뼈를 깔고 앉은 비만증 환자”라는 말로 방콕의 상황을 비유했다.
방콕의 위험성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2005년이다. 태국 출라롱콘 국립대 연구진은 타이만의 60퍼센트가 이미 침식되기 시작했으며 방콕도 매년 10~15센티미터씩 침하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방콕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60년 후 물에 잠길 것이라 경고했고, 세계은행은 40년 후 1백만명이 침수지역에 살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우기에는 도심에도 물이 차오르면서 도로의 자동차와 선상가옥 선박이 부딪혀 접촉사고가 나기도 한다. 위생 상태도 엉망이다. 바이러스 가득한 흙탕물이 흘러들면서 역한 냄새가 퍼질 뿐만 아니라 수백만명이 감염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정부의 대응은 홍수 방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강둑을 따라 제방을 쌓고, 도시 주변에 방파제를 짓고, 운파를 파서 물을 우회시키고 배수 및 체수 시스템을 구축하는 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차오 프라야 강의 높이가 2.5미터 상승해도 끄떡없다”며 자랑하지만 도시의 토대인 점토층이 침하되는 것에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르마사로자 소장은 “방콕은 태국의 심장”이라면서도 “심장은 당연히 보호해야 하지만 혹시 너무 늦은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장기적인 대응책이 절실한 형편이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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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4-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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